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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관광명소가 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헤밍웨이를 위시한 미국 작가들이 파리에 정착한 연유가 궁금하여 우리는 영어서적을 파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이동했다. 서점은 센강 옆 뷔셰리로(Rue de la Bûcherie) 37번지에 있다. 셍미셸-노트르담(Saint-Michel Notre-Dame) 역에서 내려 걸어가니 젊은이들이 서점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배낭을 짊어진 동양 학생도 보였다. 낡은 5층 건물의 1층과 2층에 자리 잡은 고서점은 사실상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낡은 5층 건물의 1층과 2층에 자리 잡은 고서점은 사실상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낡은 5층 건물의 1층과 2층에 자리 잡은 고서점은 사실상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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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자 그다지 넓지 않은 서너 개의 방에 다닥다닥 붙은 책장들과 그 안에 빈틈없이 꽂힌 헌 책들이 보였다. 빛바랜 벽지와 낡은 책장, 그리고 오래된 종이의 퀴퀴한 냄새가 도리어 반가웠던 이유는 긴 세월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켜온 데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관광객들을 따라 2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거기도 책장들이 다닥다닥 진열되어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창가의 독서실 또는 낭독회장 비슷한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위를 눈짓하셨다. 통로 벽 위에 쓰인 표어는 "낯선 이를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라는 내용이었다.
 
서점 안 통로 벽 위에 쓰인 표어는 "낯선 이를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라는 내용이었다.
▲ 서점 안의 표어 서점 안 통로 벽 위에 쓰인 표어는 "낯선 이를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라는 내용이었다.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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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뭉클해진 순간 아빠와 눈길이 마주쳤다. 같은 감동이 전해진 것이다. 문인, 작가 지망생, 인생 낙오자 그리고 망명자들이 낯선 도시에서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기웃거렸던 이 서점 2층 뒷방엔 1인용 소형침대도 놓여 있었다. 파리를 여행 중인 작가나 그 지망생 가운데는 돈이 떨어진 경우가 많아, 이를 딱하게 여긴 서점 주인이 여기서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전통은 미국인 조지 휘트먼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현재의 자리에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란 서점을 열었다가, 실비아 비치가 1919년부터 1941년까지 경영했던 서점의 이름을 이어받기로 했다. 바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무료숙박의 조건은 2층 출입문 근처 아주 작은 공간에 놓인 타자기로 자기소개서를 간략히 쓰고,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서점의 일손이 달릴 때 조금 도와준다는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서점의 책들 사이에서 잠을 자고 간 작가와 그 지망생은 모두 4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서점안에 마련된 타자기 무료숙박의 조건은 2층 출입문 근처의 아주 작은 공간에 놓인 타자기로 자기소개서를 간략히 쓰고,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서점의 일손이 달릴 때 조금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안에 마련된 타자기 무료숙박의 조건은 2층 출입문 근처의 아주 작은 공간에 놓인 타자기로 자기소개서를 간략히 쓰고,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서점의 일손이 달릴 때 조금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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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말이다. '세 단어(Shakespeare and Company)로 된 한 편의 소설'이라고 조지 휘트먼이 말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단순한 책방이 아니지. 그의 말처럼 '책방으로 변장한 사회주의 낙원(a socialist utopia masquerading as a bookstore)'이었던 셈이야. 그런데 이 말을 한 휘트먼은 죽고 지금은 그의 딸 실비아 비치 휘트먼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

"네? 딸 이름에 서점을 처음 열었던 실비아 비치의 이름이 들어가 있네요."

책방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던 내가 말했다.

"그래. 실비아 비치를 존경했었던지 딸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더라. 아빠는 말이다. 그 시절을 살아보진 못했지만 '잃어버린 세대'가 활동하던 1920년대가 묘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든 우디 앨런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럼 1920년대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가보시면 되잖아요. 우버를 부를까요?"

"아니, 멀지 않은 곳이니 걸어가자."

서점을 돌아 뒷골목으로 접어들자 그리스, 터키, 베트남 간이음식점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곳의 간판을 보니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아모리노(Amorino)' 젤라토 가게였다. 우연히 발걸음을 돌린 곳에 이런 집이 나타나다니 그냥 지나칠 수 있나!

나는 젤라토를 장미꽃 잎처럼 담은 콘을 두 개 사서 하나를 아빠에게 건넨 뒤 실비아 비치가 서점을 열었던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39년 전이면 아빠는 젤라토 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걸으셨으리라.

[아빠의 이야기] 명사의 반열에 오른 작은 서점 주인들

딸이 건넨 젤라토를 먹으며 걷고 있는 동안 문득 영국 <가디언>지에 실렸던 '세계 최고의 서점 10곳'이란 기사가 생각났다. 1위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 있는 '아틀란티스 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2위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어떻게 저런 작고 허름한 서점이 세계 2위가 되고, 세계적 관광명소로 부상하게 된 걸까?

조지 휘트먼은 자신의 서점을 '책방으로 변장한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데, 여기에 '사회주의'란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보고 어떤 한국인은 조지 휘트먼이 공산주의자였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한심한 노릇이다. 또 어떤 신문은 노잣돈이 떨어진 작가나 그 지망생들에게 잠을 재워주는 전통을 응용해 '파리에서 무료 숙박하는 법'이란 기사를 싣기도 했다. 천박한 얘기다.

39년 전 파리를 취재할 때 만난 호리호리한 몸매의 서점주인 조지 휘트먼은 동양에서 온 내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젊었을 때 대공황이 일어났소.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직도 안 되고 해서 답답한 마음에 무전여행(hobo adventures)을 시작했거든. 히치하이크나 기차 무임승차를 하면서 미국을 종단하고 멕시코를 거쳐 중미를 여행했는데, 어딜 가든 사람들이 다 친절하고 너그러운 거요. 시절이 엄청 어려웠는데도 말이지. 어떤 면에서 우린 다 홈리스(노숙인)이고 방랑자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경영철학을 물었소? 간단하오. 이 책방 경영철학은 내가 무전여행을 할 때 받은 환대를 갚는다는 뭐 그런 거요."

그런 생각이 서점의 빈 공간에 거저 재워주는 형태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가 몸으로 실천해온 서점의 세 가지 키워드는 '나그네' '방랑' '책'이다. 현대의 이야기임에도 과연 그럴까 싶을 정도의 어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난 이 책방을 작가가 쓰는 소설처럼 만들었소. 방 하나하나가 소설의 매 장(章)이요. 그래서 새 장을 여는 것처럼 새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책으로 들어가듯이." 

보스턴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사람이었지만 휘트먼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문학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1919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책방을 처음 연 실비아 비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차대전 중 파리로 건너와 불문학을 공부했던 실비아 비치는 어머니가 준 3천 달러를 밑천으로 뒤피트랑로(Rue Dupuytren) 8번지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란 서점을 열었다. 미국을 떠나 파리로 건너온 '잃어버린 세대'가 자주 드나들던 서점은 그 2년 뒤인 1921년 자리를 옮긴 오데옹로(Rue de l'Odéon) 12번지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였는데, '잃어버린 세대'의 한 사람이었던 헤밍웨이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 시절 책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데옹로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책방 겸 대본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다. 찬바람이 부는 날 대형 겨울 난로를 피워놓은 이곳은 따뜻하고 쾌적했다. 테이블과 책을 꽂은 선반들과 창가에 진열된 새 책들과 죽었거나 살아 있는 저명 작가의 사진들이 벽에 죽 걸려 있는...

그 서점은 현재 무슨 액세서리 가게인가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서점 주인이었던 실비아 비치는 이 넓지 않은 공간에서 '문학의 밤'이나 '저자와의 만남' 등 여러 행사를 주관했고, 그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작가들의 편지를 맡아두었다가 전해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가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해 애쓰고 있었을 때는 그의 작품을 출판해주기도 했다. 가게 자리의 2층 벽에는 "1922년 이 집에서 실비아 비치 양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했다"는 팻말이 지금도 붙어 있다.

영문학 사상 가장 독특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는 <율리시스>를 출판한 이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유명세를 탔고, 그 후 서점이 경영난에 빠졌을 때는 앙드레 지드나 폴 발레리, T. S.엘리엇, 헤밍웨이 등 20세기 구미 문단을 주도하던 당대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실비아 비치는 단순한 서점 주인이 아니라 사람과 책, 작가와 독자, 다양한 국적을 지닌 문인과 그 지망생을 엮어주는 '비치 살롱'을 운영했던 것이고,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네트워커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파리의 전설이 되고, 작은 서점 주인에 지나지 않던 실비아 비치나 조지 휘트먼은 세계적 명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옛 서점들이 사라져가는 삭막한 현대에 인간 냄새 물씬한 한국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출현을 기대하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서점은 피난처다. 길을 잃고 일상생활의 거센 요구를 피해 들어왔다 꿈과 영감의 원천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안식처"여야 한다.

"다음 코스는 '잃어버린 세대'가 자주 다니던 카페죠?" 

1920년대의 피난처에 들어와 있는 나를 현실세계로 불러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그:#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 #파리여행, #강재인, #파리관광,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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