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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한 주간이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채점에 막바지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7회에 걸쳐 게재한 기사를 많은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광화문 촛불" 통통배 선장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기사에서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학생들의 권리와 의무 관련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입니다. 법률적인 용어들이라 조금 위화감을 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집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너무도 당연한 헌법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가 요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참석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행동을 했으니까요. 겨우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를 시발로 그동안 눌렸던 대한항공 직원들의 분노가 주말 서울 시내를 뜨겁게 달굽니다. 오늘도 집회가 있습니다.

조현민 전무는 "업무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다고 방송에서 들었습니다. 업무를 방해하였으니 재판에 넘겨 법률적 책임을 묻겠다는 절차적 내용입니다. 업무방해 – 기소의견 – 재판 – 1심 판결 – 항소 – 상고, 대법원 판결. 물론 피고는 자신의 부와 권력으로 최고의 묘수를 장고할 것이며 원고인 검찰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형량을 고심하겠지요.

학교 현장
 
무대를 법원에서 학교로 돌려보겠습니다. "선생님! 저 공고로 전학 가고 싶어요. 수업이 너무 어려워요. 따라갈 수가 없어요" 중간고사 마치고 들어간 첫 수업에서 2학년 문과 학생 중 한 명이 예고 없이 날린 한 방입니다. 영어 포기에 대한 선언입니다. 20명 남짓한 친구들이 보고 있는 수업 현장에서 공교육 8년 3개월(초3~고2 5월)의 영어수업에 대한 포기 선언을 이리 한 것입니다. "왜 포기하려는데?" 하는 말이 입가를 맴돌다 그냥 삼켜집니다. 사실 이 문과반에는 이미 영어포기자가 2/3를 넘습니다. 다섯 명 남짓한 학생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과외방 같은 수업을 계속해도 머릿속은 맑지 못합니다.

책임 소재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시각에서 영어포기자에 대한 책임 소재를 추적해볼까 합니다.

엄마

초등학교에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영어 과목은 중학교 1학년이 될 무렵, 즉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에 이미 부지런한 엄마 손에 이끌려 가까운 학원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집니다. 학원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됩니다. 동네 학원 vs. 어학원. 동네 학원에서는 학교 시험공부를 주로 관리해주고 어학원에서는 장차 있을 수능을 대비한 선행학습을 위주로 지도합니다. 따라서 동네 학원은 복습 위주의 단어와 본문 암기를 주 종목으로 하고 어학원은 선행지문 독해를 죽자 살자 강조합니다.

중학교 시험이야 단어 외우고 본문 두 단원 정도 일 년에 네 번 치는 시험을 위해 암기하면 90점은 넘게 나오니 당연히 학생도 엄마도 만족합니다. 학교는 빠져도 학원은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점수 때문입니다. 엄마는 희망합니다.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90점 넘어서 영어 과목에서 1등급이 나오기를.

중학교식 교과서 암기로는 고등학교 내신에서는 딱 50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모의고사 문제가 50% 이상 시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기사에서 말씀드렸듯 1학년 모의고사 문제는 미국 고등학교 1학년 수준입니다. 교과서와는 몇 년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상위 5~10% 정도 학생들이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엄마가 자녀 영어학습의 첫 단추를 잘 못 꿰인 것은 맞지만 달리 대안이 있었을까요.
학교

고등학교 3년 열심히 수업 듣고 중간·기말 고사 준비하고 모의고사 분석하고 오답 정리 잘 해오고 듣기 수업 빠지지 않고 졸지 않고 선생님 말씀 침 피해가며 잘 들으면 영어는 상위 등급을 맞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 고3 교실에 "대강"을 들어갔습니다. 담당 교사가 연수로 대신 강의를 들어갔습니다. 제가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가운데 1학년 3월에 본 모의고사 등급에서 지금 2년이 지난 3학년 4월 모의고사와 비교하여 등급이 올라간 학생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학생을 지목했습니다. 저에게 눈길을 주는 학생으로.

대답은 같습니다. 등급이 오르지 않았다는 대답입니다. 당시 3등급은 지금도 3등급이고 당시 8등급은 지금도 8등급입니다. 등급상승 대신 등급 유지를 위해 학교에 나옵니다. 3등급 학생이 3학년이 되도록 2등급으로 올라가지 못한다면. 7등급 학생이 여전히 7등급이라면. 당연히 포기자가 나오는 구조입니다.

점수가 낮으면 상승의 욕구보다 포기의 좌절감이 큽니다. 공업고등학교로 전학을 희망하는 위의 학생은 등급이 하락한 경우입니다. 중학교에서는 A등급이었는데 지금은 6.5등급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책임인가요. 학교 관리자의 책임일까요. 교사도 사람입니다. 잘 할 수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무기력합니다. 어느 교사도 학생의 성적을 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이 교사 책임일까요. 흥미로운 건 학생들이 엄마나 교사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기특한 현상입니다.

대학입시
 
지난 기사에서 언급하였듯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수업은 미국 초등학교 교재"로 하고 "입학시험은 미국 고3 수준"으로 시험을 봅니다. 고등학교 수업을 간략하게 짚어보겠습니다.

 
 
1학기
2학기
고1
수업
교과서
교과서
시험
교과서+모의고사*
교과서+모의고사
고2
수업
교과서
교과서
시험
교과서+모의고사
교과서+모의고사
고3
수업
EBS**
EBS
시험
EBS + 모의고사
EBS + 모의고사

<표1. 수업내용 vs. 시험범위>  

* 예를 들어 5월 중간고사 시험 범위는 교과서와 4월에 시험 본 모의고사 문제(28문항: 1문항은 일반적으로 한 문단으로 구성됨)가 시험 범위로 들어가는 방식

** EBS 교재에서 70% 연계하여 대입 시험이 출제됩니다. 동네 서점은 이 교재로 인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학교 교무실에서는 영어 교사들이 EBS 교재 연구를 위해 EBS 인터넷 강의를 듣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영어를 전공한 교사들도 어려운데 전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부담이 상상이 안 됩니다.

2학년 말까지는 수업은 교과서로 합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중학교 교과서와 그 위계가 연계되어 적당한 정도의 난이도 상승이 있고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수준으로 인식합니다. 교과서에 기반을 두고 내용 중심으로 시험이 출제되면 학생들은 만족스러워합니다. 수업시간에 학습한 내용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이해를 테스트하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모의고사 문항은 한 문항에 해당하는 한 문단의 내용이 아래처럼 보통 140~150개 단어로 이루어집니다(아래 문단 총 단어 수: 164개 – 시중 참고 교재에서 발췌). 독자 여러분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제한 시간 넉넉하게 2분 드리겠습니다.

다음 빈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When two cultures come into contact, they do not exchange every cultural item. If that were the case, there would be no cultural differences in the world today. Instead, only a small number of cultural elements ever spread from one culture to another. Which cultural item is accepted depends largely on the item's use and compatibility with already existing cultural traits. For example, it is not likely that men's hair dyes designed to "get out the gray" will spread into parts of rural Africa where a person's status is elevated with advancing years. Even when a(n) ________________ is consistent with a society's needs, there is still no guarantee that it will be accepted. For example, most people in the United States using US customary units (e.g., inch, foot, yard, mile, etc.) have resisted adopting the metric system even though making such a change would enable US citizens to interface with the rest of the world more efficiently. * metric system 미터법

① categorization ② innovation ③ investigation ④ observation ⑤ specification


이런 문항을 모의고사에서 시험을 본 다음 한 달 정도 후에 이 문제를 변형한 문제로 중간·기말 고사를 칩니다. 이제는 중학교 방식의 암기가 안 통합니다. 간혹 100점이 여럿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지 않은 새로운 지문으로 시험을 치면 등급은 또 자신의 원래 등급으로 내려갑니다. 대학 당국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서두에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언급하였습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대부분, 적어도 50% 이상은 영어 성적으로 인해 불행합니다. 어머니도 교사도 대학 당국도 책임이 없는데 불행한 학생들은 오늘도 영어를 포기하고 제빵학원 등록을 고민하거나 아예 절망에 몸을 맡깁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가능하면 인용 없이 우리 독자들과 제가 상식선에서 합의할 수 있는 가상의 지점을 정해놓고 그 부근을 중심으로 기사를 씁니다. 일명 "통통배 내부"라고 할까요.

어제 고3 심화반 2시간 블록 수업이 있었습니다. 중간고사 준비하느라 고생한 학생들을 위해 진도를 나가면 예의가 아니다 싶어 어제는 학생들 개개인의 독서 능력 테스트를 동의를 구하고 실시했습니다. 진도를 먼저 나가고 할까요, 아니면 테스트를 먼저 할까요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테 스 트 했습니다.

테스트는 4개의 이야기를 각각 읽고 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읽은 내용을 덮어놓고 내용 이해를 위한 다섯 문항의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측정은 20문항을 푼 시간과 내용에 대한 채점으로 설계하였습니다.

사실 본 테스트는 David Beglar(Temple Univ. Japan)와 Alan Hunt(Kansai Univ. Japan) 두 교수가 일본 대학생 76명을 대상으로 2014년에 발표한 논문 "Pleasure reading and reading rate gains"를 복제한 실험입니다. 어제 제 연구는 15명의 학생이 참가하였고 본 반에서 이번 중간고사 100점 11명 가운데 5명이 나왔으니 괜찮은 학급 구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 결과 가운데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만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같이 100점을 맞은 학생 두 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표 2. S1 vs. S2 중간·모의고사 성적 및 읽기 시간, 읽기 능력 비교>

 
중간고사
모의고사
어제 실시한 연구
읽기 시간
맞은 점수*
S1
100점
98점
15분 59초
20
S2
100점
69점
35분 13초
16
S1-S2
0
29점
20분 정도
4

* 총 문항 20문항

표2가 설명하는 함의는 이렇습니다.

중간고사 점수는 100점으로 같습니다. 이 부분이 중학교와 유사한 부분입니다. 교과서와 모의고사 변형문제를 열심히 공부하면 100점도 가능한 방식의 시험입니다.

모의고사 점수는 29점 차이 납니다. S1이 1등급인데 S2는 4등급입니다. 이 점수는 대학입시와 직결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읽기 시간에 가보면 그 차이가 더 극명해집니다. 4개의 지문을 읽고 20문항의 문제를 푸는데 위 학생은 16분 정도에 20개를 다 맞았는데 아래 학생은 2배가 넘는 시간을 쓰고 4문제나 틀렸습니다.

두 학생의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위 학생은 독서를 많이 하였는데 아래 학생은 문제를 많이 풀었다고 합니다. 책임 소재가 참 애매합니다. 어머니의 조정 때문인지 학생의 선호 때문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입시를 준비하는 우리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에게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사회부총리도 그러하고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아직 학생들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입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적정 배분, 수시와 정시의 분포도 조절, 생·기·부와 학·종의 관계 개선 등 여러 의제가 넘쳐나지만 정작 행복 추구에 대한 언급은 아직입니다.

오늘도 교실은 포기자가 줄을 섭니다. 학교 관리자들은 수업 중 조는 학생들을 단속하라고 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접근입니다. 총체적으로 교육이 잘못되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두 손 놓고 있습니다.

중간고사를 마쳤으니 이제 저라도 영어독서클럽 회원 모집을 위해 1학년 교실을 누비고 다닐 작정입니다. 고3 졸업할 때까지 어차피 등급 전환이 불가능하니 책이나 읽자는 것이 제 마케팅 소구점입니다. 한 30명 모집하여 1년간 공을 들여볼 생각입니다. 혹시 또 압니까. 이 학생들 대부분이 모의고사에서 등급 상승이 이루어질지. 통통배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태그:#영어포기, #영어독서, #내신성적, #모의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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