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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생이 지난 1월 쓴 글.  '난 사람이 좋아서 마음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인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A학생이 지난 1월 쓴 글. '난 사람이 좋아서 마음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인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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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대전의 한 여고에서 한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이 벌어졌다. 이 학생은 마지막까지 "사람이 좋아서 마음 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인데..."라며 힘겨워했다. 인권시민단체에서는 '동성 교제를 터부시한 학교와 지역사회가 저지른 타살'이라며 자성과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지난달 11일, 대전 모 여고에 다니는 A학생이 약물 과다복용 후 병원치료를 받아오다 끝내 숨졌다. A학생은 지난해 중순께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과호흡으로 병원치료를 받아 왔다.

논란은 A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쏠리고 있다. A학생의 유가족은 '학교폭력에 의한 피해'라며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대전시교육청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A학생이  남긴 일기 속에는...

A학생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단톡방 메시지와 일기에는 동성 친구를 사귀면서 주변의 시선에 힘들어한 정황이 담겨 있다. A학생은 지난해 12월 말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글을 통해 '죽고 싶다'며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문과반에 나랑 ○○이랑 사귄다고 소문이 났는데..."
"나 진짜 죽고 싶어. 내가 ○○이랑 사귄다고 얘기하고... 그래서 과호흡이 심해지고..."

글을 보면 A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건 지난해 중순 무렵부터다. 그런데 이 일로 고민과 갈등이 깊어진다. 주변 친구들이 '서로 사귄다'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느낀 탓이다. 당시 자해를 한 정황도 담겨 있다.

"사실 어제 새벽에 손목에 칼을 댔는데..."

올 1월 말경에 주고 받은 문자 내용과 일기에는 심각한 고민의 내용이 들어 있다.

"난 사람이 좋아서 마음 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인데. 힘들다. ... 내가 죽어버려야 끝날 것 같다... 끝내고 싶다"

다행히 A학생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지난 1월 말, 병원 담당의사가 '담임 교사와 상담해 보라'고 권유하면서부터다.

담임교사와 상담했지만... "너무 무섭고 힘들다"

A학생은 고민 끝에 당시 담임교사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그런데 쓴 일기에는 '힘들다'와 '죽을까'라는 글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사람을 좋아한 것밖에 없는데 너무 무섭고 힘들다. "
"죽을까? 죽을까? 죽을까?... 너무 힘들어, 너무 너무 힘들어... 힘들다 힘들어..."
"난 조심했는데, 조심하지 않았으면 전교생이 알았을 거야, 나도 조심했다고..."

A학생은 다른 친구와 나눈 글에서 담임교사가 "중고등 학생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며 "담임쌤이 동성애를 극혐하는 사람이 아니란 게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쌤이 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며 "쌤이 (동성 친구와 교제한다는) 소문이 더 퍼지면 위험하다며 조심하면서 살라고 했다"고 괴로워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학교 측도, 학생들도 동성 간 교제를 그저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 관계자도 "지금까지 동성 교제에 대한 교육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기 "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없고..."

3월 들어 새 학년이 시작됐다. 하지만 A학생은 같은 달 31일 일기 첫 문장을 "어쩌면 마지막 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없고...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유일하게 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준 것 같으니 말이다."

자신의 부주의로 아웃팅(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강제로 밝혀지는 일)되면서 사귀던 친구가 힘들어졌다며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A학생은 이날 일기를 쓴 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 일기는 실제 '마지막 일기'가 되고 말았다.

A학생의 아버지 "최소한 부모에게 연락만 했어도..."


지난 달 11일 치러진 A학생의 장례식장
 지난 달 11일 치러진 A학생의 장례식장
ⓒ A학생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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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생의 아버지는 "(학교)친구들이 딸이 원치 않는 소문을 퍼트려 정신적 피해를 주는 폭력을 행사했다"며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학교 측에 대해서도 "딸아이가 이런 고민을 해 온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아이가 상담을 했을 때 최소한 부모에게 연락만 했어도 아이의 죽음을 막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학교 관계자는 "지난 1월 학생과 상담을 한 담임교사에 따르면 당시 동성 간 교제 문제가 주된 내용이 아니었다고 한다"며 "어찌 됐든 이 일로 학교 분위기가 매우 침체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일단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지역 인권시민단체의 인식은 해당 학교와 시 교육청의 인식과는 다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고, 그나마 있던 인권조례마저도 폐지"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교육 현장과 사회 분위기가 결국은 한 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대전의 경우 성적지향 차별금지를 담은 학생인권조례가 없고, 충남의 경우 그나마 있던 인권조례마저도 폐지됐다"며 "동성 간 교제도 이성교제와 마찬가지로 성적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인권단체 관계자는 "대전시교육청과 학교당국이 우선 할 일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동성 간 교제에 대한 편견이 없도록 교육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할 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참고인과 진정인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민감한 사안이라 빠른 수사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고 꼼꼼하게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A학생의 유가족들은 청와대 게시판에 학교폭력 여부를 밝혀 달라고 청원하는 글을 올렸다.


태그:#여고생, #대전시교육청, #동성교제, #극단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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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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