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단발머리에 장난기 가득한 큰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오드리 토투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2001년에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재능과 외모는 영화 <아멜리에>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스물네 살의 젊은 배우는 아멜리에 뿔랑이라는 배역으로 단숨에 스타가 된다.

쟝 피에르 쥬네 감독은 가장 기괴한 데뷔작 중 하나인 1991년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1995년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는 할리우드의 부름을 받고 1997년 <에일리언 4>의 연출을 맡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4년 후 <아멜리에>를 완성했고 영화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사소한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아멜리에>의 세계관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녀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풀어낸다. 찰나의 디테일, 개인에 따라 중요할 수도 사소할 수도 있는 것들을 내레이션과 영화적 리듬(편집)으로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각각의 이야기를 하나의 뿌리로 모아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내레이터는 그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그 인물을 설명하는데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묘사는 <아멜리에>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형제도 친구도 없이 자란 아멜리에는 파리 18구에 위치한 '레 두 물랑' 카페(실제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장 피에르 쥬네 감독의 단골집이자 이제는 관광명소가 된 카페이다)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TV를 틀어놓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중에 영국의 다이애나 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멜리에는 놀라서 화장수 뚜껑을 떨어뜨리고 화장실 타일 하나가 뚜껑에 부딪혀 떨어져 나온다. 뚫린 벽 구멍에서 언제 숨겨 놓았는지 알 수 없는 한 소년의 어린 시절 물건(구슬, 사진, 자전거 피규어 등)이 담긴 깡통 상자를 발견한 아멜리에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잊고 상자 안의 추억에 집중한다. 이 상자 안에 영화 <아멜리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들어있다.

아멜리에는 상자의 주인을 찾아 그것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수십 년 전 자신의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을 찾아낸다. 아멜리에는 이제 할아버지가 된 소년에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상자를 돌려주고, 옛 추억을 선물 받은 노인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자기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아멜리에는 삶의 충만함을 느끼고 수호천사처럼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아멜리에가 벌이는 '깜찍한 이벤트'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 결핍된 사람들이다. 아멜리에는 그들의 마니또가 되어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결핍을 채워준다. '그녀만의 방식'이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형제도 친구도 없었던 아멜리에는 남다른 상상력을 가진 아이였다. 상상하는 것은 그녀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자 외로움을 극복하는 도구였다.

그녀는 섬세한 관찰력과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통해, 그 대상에 맞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웃들에게 행복을 전달한다. 아멜리에의 깜찍한 이벤트들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극 중에서 얼마나 탁월한 각본가이자 연출가, 혹은 배우 같은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아멜리에는 관리인 아줌마의 편지를 훔쳐서 편지를 재구성하고, 아빠의 도자기 인형을 가져와 스튜어디스 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하기도 한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라파엘에게 육체의 힘을 초월하는 영상들을 편집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는 장면이나, 건강 예민증 환자와 집착남을 연결시켜주는 모습은 참으로 기발하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니노의 스크랩북을 아멜리에가 돌려주는 과정이다. 증명사진 기계 아래에 버려진 증명사진들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니노와 아멜리에는 통성명 없이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고도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아멜리에의 이웃 라파엘은 르누아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을 매년 한 점씩 그리면서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다. 늘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관찰을 통해 다른 것을 발견할 때이다. 그것이 라파엘의 일상이고 아멜리에가 꾸미는 이벤트이며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하는 과장된 설정도 개연성이 존재하는 한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연성에는 배우의 연기도 포함된다. <아멜리에>에서 오드리 토투의 연기는 아멜리에라는 캐릭터의 엉뚱한 행동을 사랑스럽고 동화적으로 잘 포장했다.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랑스러운 영화
<아멜리에>는 오드리 토투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아멜리에의 짧은 단발머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당시 한국에서도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후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가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는 전 세계인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론 하워드 연출에 톰 행크스 주연. 그리고 그의 상대역으로 오드리 토투가 낙점됐다. 그녀에게는 활동 무대를 넓힐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을 것이다.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드리 토투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달랐다. 관객은 오드리 토투를 어색해했다. 그녀가 맡은 역이 프랑스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영화 속 그녀가 영어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오드리 토투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아멜리에라는 캐릭터를 생각한다. 자신과 잘 맞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에게 대단한 행운이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해서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도 그 인물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불행이기도 하다.

오드리 토투는 절대 불행한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아멜리에> 이후로도 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국내에서는 <코코 샤넬>과 <무드 인디고>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다만 <아멜리에>의 영광이 너무 컸던 데다가 할리우드 진출작에서의 활약이 미미해서 아쉬움이 있다.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영화 <아멜리에>의 한 장면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아멜리에>는 따뜻한 유머와 철학이 담겨 있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전체적으로 노란 필터를 썼음에도 생동감 있는 색상이 돋보인다. 또한 얀 티에르센의 아코디언 음악은 색감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동화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원제를 직역하면 '아멜리 뿔랑의 굉장한 운명'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아멜리에>를 보고 나면 나에게도 왠지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포근한 기대를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 장 피에르 쥬네 프랑스 영화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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