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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게 될 판문점에서 남북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정상회담 하루 앞둔 판문점 2018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게 될 판문점에서 남북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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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북핵 위기 30년 역사가 종지부를 찍게 될지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커진다.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군사력 증강 대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새로운 노선도 꺼냈다. '사회주의 정상국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어서 향후 남북경협도 관심을 모은다.

주목을 끄는 건 한국과 미국의 반응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결정에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한다"고 화답해 모처럼 남북미 간 평화의 언어가 오고간다.

관계 개선의 문턱을 넘다가도 세 나라의 정책적 혼선으로 '합의-긴장' 국면이 반복됐다는 역사적 경험을 생각해 볼 때 이 같은 분위기는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다. 당장 '평화체제'와 '북미 수교' 카드가 피어오르는 상황에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긍정적 신호가 나온다.

그러나 분단 70년의 역사는 우리 사회에 파고든 '분단 병(病)'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사회 곳곳에는 군사적 대치뿐 아니라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억제와 강압으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 단어가 넘쳐흐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북한의 핵동결선언에 대해 "칼든 강도가 칼은 숨기고 협상하자고 하는데, 상대방은 칼을 포기했다고 우기는 격"이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이미 두 번에 걸친 체제 붕괴 위기에서 남북 위장평화쇼로 북을 살려준 정권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또다시 국제제재로 붕괴위기에 처하자 세번째 살려주려고 남북 위장평화쇼를 하는 것이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등 정상회담을 폄하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식민지·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음'

캘리그라피스트 강병인 작가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원 하는 대형 붓글씨를 쓰고 있다.
 캘리그라피스트 강병인 작가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원 하는 대형 붓글씨를 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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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제국주의, 타자화 된 언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낳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식민지와 한국전쟁은 남북의 적대를 강화시킨 원천이었다. 상호 적대성은 일상적인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되기에 충분했다. 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강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빨갱이' '위장 평화' 등의 언어는 한국전쟁이라는 경험이 자리해 있다. 

상호 적대관계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남북한은 오랫동안 반대자 탄압은 물론 국가주의적 동원과 통제를 발달시켰다. 일종의 '분단 트라우마' 탓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부는 정권차원의 위기를 봉합하고, 폭력과 억압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의문사와 간첩조작, 고문 등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은 물론 일상적 삶에서 끊임없이 적을 호명했다. 1987년 민주사회로 진화되면서 노골적인 국가폭력은 크게 줄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북한과 국가권력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은 일제부터 한국전쟁, 산업화로 형성된 한국인의 생활상을 이렇게 정리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산업사회로 달려가면서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인륜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역사는 제 몸통마저 다 빼앗기며 꺾이고 말았고, 민족정신도 황폐화되고 말았다. 산과 들은 멋대로 파헤쳐지고 오염되었으며, 강도 제 물길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있다. 전통이 무너지고, 민족의 강토와 민중의 영혼이 병들고서 겨레의 삶이 온전할 수 없다." - 2012년 6월 <프레시안> 인터뷰 중

장 이사장은 휴전선의 철조망을 시민의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봤다. 강대국의 놀음에 남북이 갈리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전쟁까지 치른 우리 역사는 해방 70년을 향해 가는 오늘에도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전쟁의 위협과 사회세력 간 대결 등 민중의 가장 큰 고통이 분단과 제국주의로부터 비롯되기에 분단 병이며, 제국주의 병이다"라고 지적했다. 

민족 공통의 문화 개발해야

오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장이 공개됐다. 이번 정상회담장에 두 정상이 앉을 의자는 한국전통가구의 짜임새에서 볼 수 있는 연결의미를 담은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며, 등받이 최상부에 한반도 지도 문양을 새겼다.
▲ 남북정상회담장 정상용 의자에 새겨진 '한반도' 오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장이 공개됐다. 이번 정상회담장에 두 정상이 앉을 의자는 한국전통가구의 짜임새에서 볼 수 있는 연결의미를 담은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며, 등받이 최상부에 한반도 지도 문양을 새겼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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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트라우마의 유형과 치유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이병수 당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분단 트라우마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처럼 남북 적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몇몇 소수자의 고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면서 반복되는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지닌다"라고 설명했다.

정권이 자의적으로 벌인 특정 사건뿐 아니라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목함 지뢰 사건처럼 남북 상호간 우발적 사건을 계기로 트라우마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실제 포탄 세례를 경험한 연평도 주민들 겪은 공포감과 죽은 병사 가족들의 절망,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불안감, 적을 몇 배로 응징해야 한다는 전쟁 불사의 이야기들, 나아가 남한 국민 전체가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히 작동하고 있다.

이병수 연구원은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되어온 남북의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민족적 공통성의 중요한 자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라며 "특히 남한의 한국학과 북한의 조선학은 단일 체제 속에서 얻을 수 없는 다양한 문학과 철학과 역사학을 창출했고, 민족적 공통성을 위한 풍부함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전향적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홍준표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오로지 자신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현상은 분단이 우리의 무의식 구조에 뿌리박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북의 이념대립과 군사적 충돌로 분단 병을 앓고 있는 시민들이 사회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상호존중과 배려를 강조하면서도 타자를 적대적으로 간주하는 모순적 태도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알게 모르게 분단 병이 우리 삶을 지배해왔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비핵화'라는 숲에 매몰돼 분단으로 야기한 일상적인 문제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상대의 허물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 요즘, 70년 간 우리 사회가 앓은 '분단 병(病)'을 치유할 때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분단이데올로기, #분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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