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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한옥을 사서 짓게 된 것이 얼떨결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이야기는 몇 차례 했다. 보통은 뭘 할 것인가를 정하고 난 뒤 공간을 알아보는 게 순서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순서가 약간 어긋났다.

막연히, 조직을 떠나 뭔가를 한다면 공간이 필요하겠거니, 생각하며 반쯤은 몽상처럼 또 반쯤은 현실적으로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리다가 이 집을 만났다. 덜커덕 집을 사버린 뒤 서울시 한옥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수리의 범위를 고민하느라 역시 또 이 안에서 뭘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20대 중반부터 줄곧 책을 만들어온 나는 언젠가부터 책을 만들기 싫어지면, 편집자를 그만둔 뒤 작은 책방을 하겠노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빈 집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책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지 않았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을 오래오래 계속 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늘 그만둘 때를 떠올리며 살았다. 몇 년만 버티면 된다, 몇 년만 더 하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조직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치사한 일들도, 인간에 대한 환멸도, 지향점이 묘하게 어긋나는 애매모호한 상황도 그냥 모른 척 외면하거나 견디며 지냈다. 왜냐. 나는 곧 이 일을 떠날 거니까.

그런데 집 한 채를 덜컥 사버리고 난 뒤, 내 안에는 전혀 다른 꿈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

좋아하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책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떠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실은 나는 떠날 생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된 대문 안에 어떤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나는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역시 집 짓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오래된 대문 안에 어떤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나는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역시 집 짓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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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럴까 저럴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 건축가와 지지고 볶으며 공간의 성격을 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어떤 형태로 집을 수리할 것인가를 정한 뒤, 구체적으로 내부 공간을 디자인할 때가 되었다. 살림집으로만 쓸 것인가, 아닌가를 정하는 일부터가 내부 공간 설계의 시작이었다.

나는 결정했다. 아무래도 책 만드는 일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내가 원하는 책을 내 손으로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나로 하여금 이런 결심을 하게 한 동기가 있다.

뜻밖에 나는 지난 2~3여 년 동안 퇴사와 이직, 다시 퇴사를 반복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사연은 제각각일지언정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때로는 아쉽고 때로는 화나고 때로는 서글프다. 그런데, 퇴사와 이직, 퇴사를 거듭하는 내내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몇 장의 계약서가 줄곧 따라다녔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내가 하던 일은 새로운 기획을 저자에게 제안하고, 저자의 집필을 기다렸다가 원고가 완성되면 편집을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진행한 기획은 그것이 누구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든 대개 회사를 그만둘 때 두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매우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긴 하지만, 저자들 입장에서는 회사를 그만두는 편집자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출간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을 함께 받아들이기는 대략 난감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기획한 사람이나 저자나 모두 서로의 입장을 존중, 양해하고 물러난다. 그런데 몇 장의 계약서가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의 갈짓자 행보로 대부분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 다독이며 저자들께 죄송한 마음만 품고 지냈다. 

그런데 이 한 장의 계약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뜻밖에 퇴사를 하게 되었노라, 계약서의 당사자인 저자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분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계약도 없던 걸로 하자고 하셨다. 내가 다닌 회사의 명망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의 첫 단추부터 같이 시작했는데, 한 사람이 그만두면 안 하는 게 나을 거라는 말씀이셨다.

집필의 동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다 내 탓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한 뒤 나는 서둘러 다시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집필의 동력이 다시 발동하기도 전에 나는 덜커덕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 조직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이 분은 역시 또 같은 이유로 나를 택하셨다.

나는 다 쓰러져가는 한옥 마당에 앉아 내가 책임져야 할 계약서와 내가 원하는 삶을 맥락없이 읊조리고 있었다. 계약서는 쓰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책을 만들자고 이야기를 해놓은 분들도 여럿이었다.

나는 내 말의 책임을 져야 했고, 기꺼이 그 책임을 지고 싶었다. 샘도 많고 욕심도 많은 나는 다른 누가 그 책들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내 손으로 다듬던 원고가 다른 이의 손에서 책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가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책 만드는 일을 그냥 쭉 하는 것말고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오래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회사를 꾸리는 것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혔고 이제 뒤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한옥의 구석구석은 그래서 살림집과 출판사 사무실을 겸하는 공간으로 정비되었다. 건축가는 가뜩이나 작은 집에 살림집과 출판사 사무실로 쓸 공간, 게다가 남편의 작업실까지 꾸리느라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아마도 다음 번 연재쯤에 소개할 이 집의 공간은 그래서 매우 단순하면서도 각자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나갔다.

원래는 집이 완공되면서 출판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너무 많이 겪어왔다. 나는 뭔가 하나라도 확실하게 진행하는 게 낫겠노라 생각했다.

나 때문에 이미 몇 차례 집필, 중단, 재개, 중단을 한 저자께 내 뜻을 알렸다. 저자는 명망 있는 조직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맨 땅에서 시작하겠다는 내 손을 기꺼이 맞잡아줬다. 1인 출판사의 불안과 연약함에 대한 어떤 염려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매우 오묘하다. 나는 지난 네 번째 연재글에서 한옥을 짓게 된 것이 두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 권의 저자가 바로 지금 나의 한옥을 지어주는 목수님이라는 이야기도 했던가. 그분이 지은 작은 한옥 한 채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이가 바로 그 분이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직접 한옥을 지어 살기도 하신 파우저 선생님은 약 4년여 동안 흔들리는 편집자를 믿고 기다려주셨다. 출판사를 시작하는 데 선생님의 믿음이 큰 힘이 되었다.
▲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한국에 오래 살면서 직접 한옥을 지어 살기도 하신 파우저 선생님은 약 4년여 동안 흔들리는 편집자를 믿고 기다려주셨다. 출판사를 시작하는 데 선생님의 믿음이 큰 힘이 되었다.
ⓒ 로버트 파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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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오래전 만든 책 한 권이 지금의 나를 이끌어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인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셨던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 그분이 경복궁 옆 동네 서촌에 지은 '어락당'이라는 한옥 한 채를 지으셨고, 그 집을 지은 목수님이 책을 쓰셨고, 나는 그 책을 만들었으며, 그 책을 통해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과도 마음이 통했다.

그때부터 미국인이면서 일본 대학에서는 일본어로, 한국 대학에서는 한국어로 강의를 해오신 매우 독특한 경력의 선생님께 '외국어 전파담'에 관한 책을 함께 만들자고 의기를 투합한 지 어언 4년여. 돌고 돌아 드디어 선생님의 책이 곧 세상에 등장한다. 내가 시작한 출판사 '혜화1117'의 첫 책으로.

미국인이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한국의 독자들과 직접 교감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한글로 원고를 쓰시겠노라 다짐하셨다. 평생 외국어와 더불어 사신 분이 풀어내는 '외국어 전파'의 역사에 관한 원고를 읽으며 나는 오랜만에 책 만드는 재미를 깊이 만끽했다.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은 고단했으나 즐거웠다. 미국의 저자와 한국의 편집자가 시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SNS메신저 창을 통해 서로의 밤낮을 달려가며 원고에 관해 숱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앞으로 평생 책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하겠다는 나의 결정에 안도했다.

벽체와 지붕을 들어낸 집은 뼈대만 앙상하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떠올리며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보태고 있다.
 벽체와 지붕을 들어낸 집은 뼈대만 앙상하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떠올리며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보태고 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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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짓는 내내 나는 이 집을 어떻게 짓느냐보다 이 집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늘 되뇌인다. 철거가 끝난 집은 아직은 뼈대 앙상하다. 갈 길이 먼 집일지언정, 나는 이 안에서 좋아하는 분들과 더불어 좋아하는 책을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책을 매개로 즐거운 시간을 쌓아가는 남은 날들이고 싶다. 그런 날들의 첫 단추가 로버트 파우저 선생의 책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 인연은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이 재미 있는 일을 왜 그만두려 했을까.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로버트파우저, #외국어전파담, #혜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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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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