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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우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우선적인 의제로 올려 놓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 '경계인' 송두율 교수 그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우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우선적인 의제로 올려 놓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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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에 너무 집착하면 곤란합니다. 비핵화를 최우선 의제로 설정하지 말고 일단 큰 범위 내에서 평화체제를 먼저 협상안에 올려 놓는 게 좋습니다."

'경계인'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74, 사회학)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정착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비핵화 문제는 따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평화체제를 논의하면서 그 속에서 풀면 된다"고 밝혔다. 각론은 나중에 하고 총론을 먼저 협상하라는 뜻이다.

송 교수는 "'북한에게 백기항복을 받아서 모든 핵을 한 곳에 모아놓고 1~2년 내에 폐기처분하자'는 주장이 있다"면서 "하지만 협상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인데 어떤 머저리가 아직 협상을 시작도 안 했는데 그것을 선포하겠냐"고 말했다.

"왜 협상을 해야 합니까? 나는 저 사람의 속내를 모릅니다. 상대방도 내 진심을 모릅니다. 그럴  때 결국 둘이 서로 의심하면서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회학에서는 이것을 '이중적 모호성'(double contingency)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대화가 필요한 겁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당신이 먼저 들어줄 때 내가 당신 요구를 수용한다'는 식으로 하면 해결이 안 됩니다. 과정을 무시하고 하루아침에 일사천리로 비핵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송두율 교수는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남북 사이의 문제였다"면서 "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의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직접 미국의 이해관계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과정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남한이 할 수 있는 일, 북한이 할 수 있는 일,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남북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대가치와 현실화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남북이 너무 과대망상에 빠지거나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인 3각' 경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너무 빨라도 늦어도 안 되는 겁니다. 남북이 그래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송두율 교수에게 '내재적 비판적' 시각으로 정세 분석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23일(현지 시간) 송 교수의 베를린 자택에서 진행했으며 2회로 나누어 싣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북한 발표,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고 밝힌 것"

- 북한이 21일 발표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핵실험 중단▲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중단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옵니다만.
"첫째, 강력한 경제제재가 효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둘째, 북측이 핵억지력을 확보하고 그 자신감에서 이런 발표를 했다고도 분석합니다. 미국 본토를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이제는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서로 정반대 해석입니다. 셋째, 일부에서는 북측이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살라미 전술'이라고 하지요. 보여줄 것만 하나하나 보여주고 협상 상황에 따라 뒤로 돌릴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겁니다."

- 어떤 분석이 맞을까요"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한 게 아니고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게 맞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과정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하게 되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 북한이 협상 카드를 전부 다 보여주진 않겠지요?
"북한은 반세기 이상 미국과 힘겹게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엔 핵무력화와 경제성장 등 병진노선을 폈습니다. 그런 북한에게 '이제 핵을 다 포기하겠으니 우리를 인정해 달라'고 말하길 기대하는 건 비논리적입니다. 어떤 머저리가 협상 카드를 전부 다 보여주겠습니까? 협상에서는 흥정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협상의 최저가가 있는데 다 내놓겠어요?"

- 국제사회 따돌림 속에서도 북한이 그토록 핵에 집착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요?
"북한에서  '우리가 왜 핵을 가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집체작으로 작성한 논문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답변을 적어 놓았더군요.

'경제발전을 위해 핵 억지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재래식 무기경쟁을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국제무기거래상들과 경쟁할 수 있겠는가, 제한된 기술과 재원을 거기에 쏟기보다는 핵을 통해서 전쟁을 억제하려고 한다.'"

송두율 교수는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이 이번 남북회담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택 뜰에서 송두율 교수는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이 이번 남북회담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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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인가 보군요.
"2003년 3월에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베를린에서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북한 학자도 초청했는데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여 베이징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대신 논문을 보내온 겁니다.물론, 핵을 통해서 전쟁을 억지하는 게 시대역행 아니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고, 이스라엘 등 타국에 있는 핵도 눈감아주는 기존의 핵무장보유국도 있다'면서 재반론을 폅니다."

-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핵무력이 더 강화되었지요?
"2011년 그가 등장한 이후 본격적으로 핵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핵실험도 6차례나 했습니다. 수소탄이라고도 하는데 꼭 그것이 아니어도 그에 가까운 핵무력을 가졌다고 봅니다."

- 두 차례의 회담이 신통치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남북정상회담에서 뭔가 잘못 진행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비핵화를 너무 무리하게 전제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선후관계에 맞춰 협상하면 됩니다."

- 북미정상회담이 좀 걱정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통큰 협상이라고 해서 트럼프가 비핵화를 1~2년 안에 하라고 압박하면 그것은 조금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담보가 없이 북한이 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임기 내에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무리하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유엔 제재는 안보리에서 미국 제의로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묶는 일'은 쉬운데 '푸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절차와 과정이 있으므로 오래 걸린다는 점을 북한에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핵은 어떻게 하고 미래의 핵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기는 언제로 해야 하겠습니까? 비핵화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비핵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현재 핵을 없애자는 것입니까? 미래의 핵을 없애자는 것입니까?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핵문제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건 체제 보장 및 경제 지원"

- 북한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전한 담보겠지요. 바로 체제 보장 및 경제 지원입니다. 대사관 설치 등 외교관계 개선도 희망하겠지요."

- 북한은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더군요.

"제네바협약이 파기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10년 안에 동유럽처럼 무너질 것으로 보고 미국이 이행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미국은 제네바협정 때 경수로 발전소의 건설을 지원해 주기로 사인해 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10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 같아서 그리 했다고 하니 이것은 사기를 친 셈입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협약을 아예 폐기처분해 버렸습니다. 특히 대북계좌를 동결 당하는 등 북한도 몇번 속아봐서 그런 우를 범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그런 진실을 언론 등에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중적 애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자기 카드를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애매성이 사라진다. 그것은 일시에 또는 단계적으로도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서 비판을 받겠지요. 허풍만 떨었다고 말입니다. 북한은 잃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강경일변도로 나간다고 지적하던 미국 언론들이 지금은 회의적으로 그를 비판합니다."

- 오바마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까지 받지 않았나요?
"오바마 대통령 8년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합니다. 북한의 핵무력만 키워놓고 자신이 떠맡았다면서 불평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을 그냥 내벼려 둬도 결국 항복할 것이라는 전략을 폈습니다만 실패한 겁니다. 사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노벨평화상을 오바마에게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상을 환수해서 트럼프대통령과 남북정상에게 줘야 한다는 농담도 들었습니다."

-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제 역할을 하는 건가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할 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한반도를 격랑에 빠트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요. 그런데 사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처럼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반응을 하고 재반응을 하고 또 반응을 하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겁니다."

- 트럼프 대통령을 그리 평가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시아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 신경을 안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 탐재 잠수함까지 등장하여 미국 대륙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마바 대통령이 여기까지 오게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지요.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던 일을 트럼프 대통령이 떠맡은 셈입니다."

"평창올림픽 남북대화 계기 만들었고 이후 판 커져"   

남북정상회담을 3일 앞둔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끊긴 철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남북정상회담을 3일 앞둔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끊긴 철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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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이 큰 역할을 했지요?
"북한과 미국이 서로 관찰하던 중에 평창올림픽이라는 매개체가 생긴 겁니다. 이를 통해 북측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표했고,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결되었지요."

- 결국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같이 움직여야겠지요?
"북극 쇄빙선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꼼짝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쇄빙선은 물을 갖고 다니다가 이를 출렁거리게 만듭니다, 이 때 생기는 힘으로 얼음을 깨는 겁니다. 이처럼, 남북한도 함께 움직여야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전쟁 분위기였지만 결국 남북이 돌파구를 스스로 만든 겁니다. 구심력을 동원해서 평창이라는 충격을 통해서 국제관계도 흔들어 놓았지요."

- 그러다가 판이 커진 것 같습니다.

"남북의 두 정상이 기회를 잘 잡고 있습니다. 남북이 움직이니 중국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도 방문하면서 판이 더 커졌습니다. 일본은 소외감이 들다보니 아베 신조 총리가 급하게 남북회담 전에 미국까지 쫓아갔던 겁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닌데 기회를 잘 잡았습니다."

- '비핵화'가 최대 쟁점입니다만.
"그런 측면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비핵화를 왜 그렇게 추상적으로 이해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북이 왜 핵 억제력을 펼쳐왔는지, 핵 개발의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에 따른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이것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인지, 국제사회의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핵에 집착한 이유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도 살펴봐야 합니다."

- 서로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군요.
"북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게 아닙니다. 북측의 논리가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처지를 바꿔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핵무장을 하는 데에도 인적 물적 자원이 듭니다. 두뇌가 있어야 하고 돈이 들어갑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뎌내는 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그들이 왜 모르겠습니까?"

- 서로 맞서기만 하면 안 되겠지요.
"협상을 해서 안 되면 그 다음은 전쟁 아닌가요? '코피작전'을 갖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면 그 전에 다 해결되었습니다. 쌍방 무력으로는 한민족의 공멸을 초래합니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말을 쉽게 못할 겁니다. 일본도, 중국도 걱정을 합니다. 중국은 중국몽이란 야망을 갖고 있는데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논리적인 주장을 펼쳐야겠지요."

- 의제 설정이 무척 중요하군요.
"남북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여 협상해야 합니다. 무작정 비핵화를 의제에 올려놓기보다는 우선 평화체제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핵화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국제적으로 연결된 게 많습니다.
"맞습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려면 국제법적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사실 북과 미국-중국의 협상이었지요. 한국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장을 하여 빠졌습니다. 사실 비핵화도 미국과 북한이 논의할 문제입니다. 통일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진전시켜 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당장 비핵화를 안 하고 속임수를 쓴다고 비판만 하면 안 됩니다. 굴러 떨어지는 호박을 잡는다든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식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정세분석과 대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해도 한국이 더 목소리를 내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를린장벽'. 한 여성 관광객이 촬영을 하고 있다.
▲ 베를린 장벽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를린장벽'. 한 여성 관광객이 촬영을 하고 있다.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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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한국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형식적인 협약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에 할 수 있는 것을 우선 해야 합니다. 1970년에 브란트가 에어프르트에 갔고 1972년에 '동서독기본조약'을 가동시킨 일도 우선 동서독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갖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겁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주변서 다 보고 있었거든요. 아주 특이한 동서독 관계 속에서 상호 '이익대표부'를 우선 설치한 겁니다. 정치든 경제든 동서독의 현실 속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증진시키는 데 합의를 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우선 만들었고 30년 후에야 해결되었습니다."

-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루 아침에 북한이 비핵화를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이상일 뿐입니다. 그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어린이에게 수학을 가르친다고 합시다. 1+1은 2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1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조합입니다. 일종의 다양성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속에는 많은 함의가 들어있습니다. 1+1=2라는 식으로 암기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은 북한 남한 똑같이 되는 게 아닙니다. 통일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통분모를 찾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다양성의 통일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의 개념을 잘 파악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네가 나와 똑같지 않다'면 통일 이야기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하면 대화가 안 된다는 논리가 지배하면 곤란하겠지요."

- 통일에서도 과정이 중요하겠지요.

"몇천만이 70년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았는데 어떻게 당장 하나로 통일될 수가 있겠습니까? 과정의 논리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과정(Process)의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가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관계와 과정에서 나온다는 불교의 '연기' 사상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합니다."

- 통일 방법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연방제일 수도 있고, 연합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통일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권한을 나눠가질 수도 있습니다. 더 느슨하게 연합국가로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지금 한국은 너무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 문제점이 많습니다. 중앙과 지방이 권한을 나눠가져야 합니다. 통일되면 평양, 서울 중 어디를 수도로 할 것이냐부터 따지는데 하나의 중앙정부만을 우선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사고하는 것 같습니다."

- 북한의 개혁 개방도 점점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북한은 앞으로 경제건설에 중점을 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핵문제 못지 않은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도 그것에 기반하여 풀어나가야 합니다. 유엔 제재를 푸는 문제, 남북 경제협력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합니다. 중국의 언론도 최근 북한의 잠재력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어떤 경제를 전개해야 하는가? 한국식으로 세계경제에 다 열어놓을 것인가? 통제할 정치적 힘은 있는가? 북한이 체제가 무너진다는 걱정 때문에 개방개혁을 못한다는 분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으로서는 자신들이 문을 안에서 열쇠로 닫은 게 아니라 오히려 밖에서 잠궜다고 생각합니다. 북은 우리식대로 개혁개방하겠다는 것입니다."

- 개혁 개방 모델도 필요하겠군요.
" '베이징 컨센서스'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반대 개념입니다, 시장자유에 근거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0년대에 아시아에서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한국도 당시 금융위기에 빠졌지요. 거기에 관해 중국은 한마디로 당의 영도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그것에 시장적 경제적 요소를 접목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사람도 배부르면 자유를 갈망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경제는 개방하되 당주도 정치권력은 유지하는 전략을 폈습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중국의 방법은 그래서 달랐습니다. 소련은 경제와 정치를 동시에 다 개혁하려다보니 둘 다 실패한 겁니다."

- 북한이 중국 모델을 참고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북한도 중국과 소련의 선례가 있으므로 충분히 방법을 찾을 겁니다. 중국은 새로운 권위주의 통치를 펼칩니다. 시진핑 주석이 전권을 휘두릅니다. 세계화를 미국화, 서구화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길도 있다는 것을 북한도 알 겁니다.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되 당의 영도력을 그대로 유지한 중국의 사례를 말하는 겁니다. 중국이 소비경제규모로 이미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 북한의 성장 가능성도 높겠지요?
"우수한 두뇌와 엄청나게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 값싼 노동력까지 있어 잠재력 큰 것입니다. 연평균 15% 경제성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인데 군사기술을 훔쳐서 미사일을 쐈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 통일이 되려면 남과 북의 경제 격차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남북이 다같이 성장해야 통일이 됩니다. 형제 간에도 경제격차가 있으면 멀어집니다. 가난하지만 자존심 많기로는 북한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협력에 있어서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비록 이명박 정부 때 금강산관광을 없애고 박근혜 정부 때 개성공단도 없앴지만 남북이 서로 자기속에 들어있는 타자를 경험해 본 겁니다. 서해를 개성공단처럼 더 확충할 수도 있을 겁니다. 비무장지역이 남북경제협력의 거대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후속 회담이 정상회담 이후에 뒤따라야 되겠지요."

"문재인 대통령, 사사로운 평가에 흔들리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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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보수 수준은 어떻습니까?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까기 끌고 나오는데 정말 창피합니다. 그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에 남북 관계를 너무 망가트려 놓았습니다."

-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평화조약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이 거론됩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눈높이에서 회담하는 것 자체가 바깥세계에서 북한을 새롭게 인식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는 지난번 중국에 가서 환대를 받았습니다. 30대 지도자가 중국의 새로운 황제라는 시진핑 주석을 만나 당당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런데 '시진핑이 가르치고 김정은이 이를 받아 쓴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 한반도 문제를 보도하는 독일 기자들 수준은 어떤가요?
"좀 그렇습니다. 북한을 보도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독재', '김정은', '왕조국가', '폐쇄국가' 등입니다. 중국, 일본을 공부한 언론인이 있으나 한국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요즘에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독재자 김정은'에서 '실권자 김정은'으로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 한반도 운전자론도 종종 보도됩니다만.
"문재인 운전자론에서 김정은 운전자론으로 흘러갔다고 지적한 보도가 있었나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사로운 평가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문 대통령이 지금 잘 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같이 운전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중요한 기회겠지요?
"이번 기회를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이 세계화 파도를 타면서 자기를 지키는 흐름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가 사춘기를 스위스에서 몇년 보냈기에 선대와는 달리 세계를 볼 것입니다. 북한도 세대교체가 되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것으로 봅니다."

- 남북 정상에게 당부를 전한다면.
"남에도 북에도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는 어렵습니다. 북미 관계가 진전되면 중국이 먼저 유엔 제재결정을 느슨하게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여러 방향에서 미국에 의해서 포위되고 있습니다. 북까지 이에 동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완충역할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미국이 압록강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 중국의 부담은 커집니다. 북이 가진 전략적 가치 때문에 중국은 북과의 관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시진핑의 평양방문 등도 거론된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정착까지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충격을 던질 수 있다는 구상까지 가능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회담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 독일서도 한반도 상황에 관심이 많겠지요?
"며칠 전 같은 건물에 사는 전 주한독일대사 자이트씨를 계단에서 만났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너무 빨리 돌아가니까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네요. 내일은 쾰른에서 한국 문제에 관심 있는 독일 언론인과의 토론회도 있어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정착까지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누구인가?

송두율 교수는 "독일에서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 씨(오른쪽).
▲ "독일에서도 관심 많습니다" 송두율 교수는 "독일에서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 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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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출신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1972년)했고,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 분야 교수 자격(1982년)을 받았다. 뮌스터대학, 베를린자유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베를린 훔볼트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재독 반유신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의 결성(1974년)을 주도해 초대 의장을 맡았다.

서울대 초빙교수로 초청(1991년)되었으나 방북 및 반정부 활동 전력이 문제가 되어 무산되기도 했다. 37년만에 귀국(2003년)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9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 혐의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2008년)했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베를린, #경계인, #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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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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