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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가 침몰하며 부숴진 모습으로 거치되어 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가 침몰하며 부숴진 모습으로 거치되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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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꽃 분분히 지던 날,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남행열차를 탔습니다. 수백송이의 노란개나리꽃들이 까닭 없이 이울었다는 소식을 진즉에 접하고도 나는 입때껏 팽목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음울한 바다를 목도하며 한 방울의 눈물, 한 마디의 비통도 보태주지 못했던 게지요. 세 번의 봄이 가는 동안 나는 반쯤 감은 눈으로 짐짓 진실 쪽을 기웃거리거나 몇 마디의 설익은 말로 밀린 죄를 쓸어내곤 했습니다.

"목포신항으로 갑시다."
"세월호! 거 징하게 아프긴하요 잉, 근디 인자 고만보내야 쓰것소만!"

나는 택시기사의 말에 마른기침을 삼키며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신항으로 가는 도로는 한산했습니다. 바다는 긴 수평선 위에 화물선 몇 척을 펼쳐놓고 오후의 졸음에 빠져있었습니다. 멀리 녹슨 세월호가 봄 햇살을 받으며 비스듬히 누워있네요.

'저걸 어찌 보나' 아내의 탄식에 발걸음이 느려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담벼락을 따라 걸었습니다. 노란리본들이 봄바람에 속절없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수천 수 만송이의 개나리꽃들이 가는 봄을 애면글면 붙들고 있었던 게지요. 열여덟 해맑은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노란커튼을 밀치며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슬픔도 세월도 잊은 채 노란 수다들을 자꾸만 허공으로 풀어내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개나리꽃은 흔하디흔한 꽃입니다. 젖은 땅 마른땅 가리지 않고 어디든 발 디딘 곳이 제집이고 제 살 터입니다. 꺾이고 밟혀도 저희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강인한 삶을 뿌리내립니다. 이웃들과 격의 없이 울타리를 내 주며 도담도담 봄을 피워 올리는 게지요. 목련 장미가 잠깐 왔다 가는 꽃이라면 개나리꽃은 가장 먼저 피고 가장 늦게 집니다.

너무 흔하고 사소해서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지만 사실 개나리꽃만큼 오랫동안 봄을 지키는 꽃도 드뭅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목련의 우아함과 장미의 화려함에 쏠릴 때 개나리꽃은 늦봄을 고적하게 지키다가 찔레꽃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집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랍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면 진달래, 개나리꽃이 생각나고 어머니의 곡절 많은 전생이 떠오릅니다. 목련, 장미가 귀족의 꽃이라면 개나리나 진달래, 찔레꽃은 여인들의 곡진한 정한을 담고 있는 서민들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개나리는 개살구, 개떡, 개망초, 개밥풀꽃 등 '개'씨 계보를 잇는 볼품없는 족속입니다. 어느 앵커가 표현했듯이 '개'라는 접두어가 붙는 순간 이미 본류에서 벗어난 변두리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게지요. 보따리 같은 생들을 이고 상처와 가난의 땅을 넘어오던 이 땅의 민초들, 그 고달픈 인생살이가 노란 꽃잎에 오롯이 묻어있습니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노랑저고리 같은 봄을 이고 보릿고개를 넘어가던 어머니의 한숨인들 어찌 서려 있지 않았을까요. 개나리꽃은 어느 왕족의 가느다란 목처럼 고결하지도 않고 올림머리를 한 장미처럼 근엄하지도 않습니다. 애잔한 봄빛으로 와서 이웃들의 삶속으로 번집니다. 밟히면 밟히는 대로 꺾이면 꺾이는 대로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토담한 담벼락에 살붙이고 어우러져 함께 피는 모습이 우리네 민초들의 삶과 무척 닮았습니다.

'왜'라는 물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

목포신항 모습
 목포신항 모습
ⓒ 김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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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배에 탄 아이들은 후미진 변두리에서 피어난 개나리꽃들이 아니었을까요. 화려한 향기의 중심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변두리 삶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피워 올린 소박한 꽃들이었던 게지요. 그래서 죽은 자나 산 자나 저리 '징'하게 짓밟히고 업신여김당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에겐 '왜?'라는 최초의 물음조차 허락되지 않았지요. 흔하디흔한 개망초, 개꽃, 개밥풀꽃들, 그 하찮은 족속들이 임금의 응답을 요구했으니 이런 불경죄가 또 어디 있었을까요. 하여 사가(史家)들은 푸른 커튼 뒤에서 불온한 사초들을 모의했고, 어전의 첨병들은 그 수상한 사초들을 활자로 윤색해서 날마다 파발로 전송했지요. 어느새 '흔하고 사소한 죽음'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온 아이들, 그 노란 넋들을 붙들고 유족들은 차디찬 길바닥에서 몇 번을 까무러졌을까요.

네루 간디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가가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나요. 카톡을 하며 재잘거리다가 문득 죽음을 맞이한 그 아이들의 절규에 응답했나요.

아, 지난겨울 그분의 눈물을 잠깐 보긴 했습니다. 절절한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그 눈물이 마음에 걸리네요. 호리병에 담아 보관했다는 네로황제의 눈물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날마다 조금씩 살점을 도려내고 송곳으로 뼈를 긁는 심정"이라는 부모들의 고통을 그분은 아셨을까요. 혹여 가시(眞實)를 삼킨 장미의 눈물은 아니었는지요. 아님 수상개화(樹上開花)였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족(蛇足) 없는 그날의 승정원일기가 궁금해질 뿐입니다.

세월호가 차츰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해 왔습니다. 나도 이쯤에서 그만 묵언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택시기사의 말처럼 세상일은 세상에 맡기고 그 아이들을 그만 보내줘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돌아서면 어느새 아이들이 부릅니다. 내 아이의 눈빛을 닮은 그 아이들이 부릅니다.

'엄마, 너무 캄캄해요. 나가고 싶어요.'

누군가 써 놓고 간 쪽지편지들이 철망에 나부끼고 있네요. 까맣게 타들어 간 손톱으로 꼭꼭 눌러 쓴, 어쩌면 유서(遺書) 같은 그 노란 글귀들이 자꾸만 봄빛에 글썽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준비한 추모행사에서 추모 메세지가 담기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은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준비한 추모행사에서 추모 메세지가 담기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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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강자가 약해져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바뀌어요.'

네 번의 봄이 가는 동안 유족들이 길바닥에서 쓴 결론이었지요. 단지 자식을 잃었을 뿐인데 그들은 어느새 거리의 전사가 되어 있네요. 하루하루 소박한 삶을 꿈꾸던 그들이 매일매일 죽고 있었네요. 죽을힘을 다해 살고 있네요. 그러나 천 번의 봄이 오고 만 번의 꽃이 핀들 그 아이들이 살아올 수 있을까요?

'아이들아! 지금 우리가 강해지려는 것은 너희들이 살다간 세상으로 다시 너희 같은 너희들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캄캄한 벽을 긁던 너희들의 절망에 세상이 응답할 때, 웅크린 거짓이 돌올하게 드러날 때, 그때 너희들은 죽어서도 사는 것이란다. 없어도 있는 것이란다. 비로소 별빛이 되는 것이란다. 한꺼번에 다 바뀔 수는 없지만 그 착한 세상을 위해서 엄마아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지금 희망 쪽으로 전진 중이란다. 그때까지 봄이 가도 목포는 사계절 꽃피는 봄이란다. 밟히고 짓눌려도 결국 봄을 지배하는 꽃은 개나리꽃이 아니더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겪는 자의 마음을 헤아려보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현대수필> 2018 봄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세월호,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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