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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집을 짓는 데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설계자와 시공자가 파트너다. 설계는 건축가가 맡고, 시공은 도편수가 맡는다.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는 한 채의 집을 짓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완성할 때까지 같은 목표를 향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존재다. 말하자면 삼각형의 꼭짓점이다. 똑같이 집을 잘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각자의 지점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건축주의 언어는 하염없이 막연하고 모호하다. 예를 들면 '모던하고, 미니멀하고, 심플하고'를 반복하는데 그게 정작 어떤 이미지인지 설명할 수는 없다. 매일매일 어디선가 보고 들은 이미지들만 끝도 없이 펼쳐놓기 일쑤다. '이런 거 멋지지 않아요?'를 남발하면서.

부엌 쪽에서 찍은 사진. 정면 왼쪽 방이 실측도의 <방2>고, 오른쪽 유리문은 대문과 통하는 중문이다. 오른쪽 방은 앞 사진에서 본 <방3>이다.
 부엌 쪽에서 찍은 사진. 정면 왼쪽 방이 실측도의 <방2>고, 오른쪽 유리문은 대문과 통하는 중문이다. 오른쪽 방은 앞 사진에서 본 <방3>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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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언어는 숫자에서 시작해서 숫자로 끝난다.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결기가 느껴질 정도다. 방과 가로세로 사이즈와 바닥부터 천장까지, 숫자의 각이 나오지 않는 한 그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 또 있다. 바로 선이다. 건축주의 모호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듣고 있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춤을 춘다. 집 하나를 둘러싸고 그가 도면 위에 그은 선들의 개수를 세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시공자의 언어는 할 수 있다 또는 할 수 없다이다. 매우 간명하다. 건축주의 모호함과 건추가의 도면 위의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제아무리 건축주가 꿈을 읊조리고, 건축가가 선을 그어도, 현장의 사정상 그럴 수 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발은 굳건하게 땅을 딛고 서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언어의 밑바닥에는 매우 엄정한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예산이다. 돈이 풍족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100만 원을 가진 사람은 200만 원의 집을 꿈꾼다. 늘 돈이 부족하다. 1000만 원을 가진 사람은 풍족할까? 아니다. 그는 1500만 원의 집을 꿈꾼다.

역시 돈이 부족하다. 예산의 규모가 어느 수준이냐가 다를 뿐, 늘 예산은 쪼들린다. 그 한정된 예산 안에서 건축주의 모호한 꿈과 건축가의 무수한 선과 시공자의 구현 가능성을 이루어내야 하니, 한 채의 집을 짓는 행위는 그 과정이 바로 아트다.

'한옥을 짓는 데 무슨 설계?'

처음 한옥을 짓기 위해 건축가를 알아본다고 했을 때 적잖이 들었던 질문이다.

"한옥은 양옥과 달리 어림잡아 짓는 거 아냐?"

그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다."

따라나오는 질문은 또 이랬다.

"집 사는 것보다 그 돈이 더 들겠네."

그때마다 나는 또 대답했다.

"배보다 배꼽이 크지는 않겠지만, 이 집에서 엄청난 배꼽을 보게 될 것이다."

액면으로 보자면 다 쓰러져 가는 한옥을 사면서, 나는 대충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각오를 했다. 100년 가까이 지탱해온 이 집을 제대로 고쳐서 앞으로 100년을 버티는 집으로 만들겠노라고. 그런 다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비록 집은 작지만, 이 집을 지어가는 과정 속에 나라는 사람을 투영하고 다름 아닌 '나'를 구현하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가치관, 보고 들은 모든 것의 총합을 이 집에 부여하고 싶었다. 내가 곧 집이며, 집이 곧 나인 그런 공간을 꿈꿨다.

2017년 여름부터 2018년 여름까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매우 명확한 과정을 통해 나의 한계와 현실을 잘 인식하면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싶었다. 집이 부실하면 내가 부실한 셈이니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 내 삶의 의미 있는 순간이길 바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타협하지 않고, 꼼꼼하게 따져가며 짓고 싶었다.

그러자면... 다 필요없고!! 무조건 파트너를 잘 만나야 했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옮겨 다닐 때마다 이 집에서 평생 살겠다는 마음으로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해왔다. 나름 전문업체를 골라서, 엄격하게 고른다고 골랐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이번에는 창고 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정면이 대청이고, 왼쪽이 <방1>, 오른쪽이 <방2>다. 이렇게 실체가 있는 집과 현황실측도의 도면과 비교해보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워낙 작은 집이라 같은 자리에서 몸만 돌리면 집 전체를 다 찍을 수 있다.
 이번에는 창고 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정면이 대청이고, 왼쪽이 <방1>, 오른쪽이 <방2>다. 이렇게 실체가 있는 집과 현황실측도의 도면과 비교해보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워낙 작은 집이라 같은 자리에서 몸만 돌리면 집 전체를 다 찍을 수 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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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아파트 단지 인근 인테리어 업체들과 일하며 나는 늘 포기와 타협의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차라리 불성실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상황이라면 싸워서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정성껏, 성실하게 작업해 놓은 것이 맘에 들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 하나만 눈 딱 감으면 저 분들이 두 번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넘어간 것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눈 딱 감고 넘어간 탓에 생각보다 두꺼운 선반의 둔탁함이, 포인트 타일의 남발이, 신발장 높이의 어긋남이 살면서 얼마나 거슬렸는지 모른다. 조명과 콘센트의 애매한 위치 역시 그랬다.

나는 이번만큼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겠다고 결심했다. 꼼꼼하게 따지고 아쉬움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러자면 파트너가 중요했다.

내 입장에서 한옥을 짓는다는 건 가늠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 세계는 온갖 불신이 난무하고 눈을 멀쩡히 뜨고 있어도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코드 뭉치로 보였다. 앞선 글에도 밝혔듯 시공자에 대한 신뢰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은 건 설계자, 곧 건축가였다.

'누구에게 이 집을 맡길 것인가.'

처음 나의 계획은, 집 짓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몇몇 이름 있는 건축가를 만나보고 그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었다. 포트폴리오도 따져보고, 집을 짓는 행위에 대한 그분들의 지향도 들어보고, 내가 짓고 싶은 집에 대해 잘 이해하는가도 확인하면서 고를 생각이었다. 후보 리스트도 나름 만들어뒀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나는 처음 만난 건축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기껏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리스트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세상의 많은 일은 논리적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같이 밥을 먹었다. 반찬이 많이 나온 집이었다. 내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에 그의 젓가락도 자주 닿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뭔가를 설명할 때 주어와 술어가 정확했다. 중언부언하지 않았고, 집 짓는 과정을 설명할 때 자신의 언어가 아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했다.

처음 만난 지 30분 만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누구를 더 만나볼 필요가 없었다. 집은 공식으로 짓는 게 아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취향의 공유다. 나는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 그는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면, 그 간극을 좁히는 건 결국 포기와 타협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활짝 웃으며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말했다면 그의 손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단계마다 미리 의논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짤막한 답이 좋았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무척 더웠던 8월의 주말 오전 경복궁역 인근 카페에서였다. 그가 들고 나온 계약서용 도장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내 취향이야.'
앞으로 지지고 볶을 한옥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현황실측도>다. 고즈넉한 한옥의 사진과 도면 속 공간은 분명 같은 집인데,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실측도의 사선으로 채워진 부분, 그러니까 맨 처음 사진 정면의 장독대와 오른쪽 끝에 보이는 하늘색 문이 달려 있는 부분은 불법 증축 공간이다. <방3>의 한쪽도 길가 쪽으로 공간을 냈는데, 그것도 부법이다. 다시 말해 다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시 말해 집의 사이즈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실측도 이미지에서 각 공간 사이즈는 제외했다.
 앞으로 지지고 볶을 한옥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현황실측도>다. 고즈넉한 한옥의 사진과 도면 속 공간은 분명 같은 집인데,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실측도의 사선으로 채워진 부분, 그러니까 맨 처음 사진 정면의 장독대와 오른쪽 끝에 보이는 하늘색 문이 달려 있는 부분은 불법 증축 공간이다. <방3>의 한쪽도 길가 쪽으로 공간을 냈는데, 그것도 부법이다. 다시 말해 다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시 말해 집의 사이즈는 더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실측도 이미지에서 각 공간 사이즈는 제외했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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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결정이 옳았다는 또하나의 징표를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뒤. 바로 앞의 연재(관련기사 : 주택 구매의 파트너는 단언컨대 OO이다 http://omn.kr/qzy5) 글에 밝힌 대로 나는 '현황측량'이라는 걸 했고,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그 측량의 결과를 보내왔으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노라고 밝힌 바 있다.

문맹자인 나를 위해 해독해준 것도 바로 이 건축가였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집의 온갖 곳의 높이와 가로세로 사이즈를 측량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현황실측도'라는 걸 만들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나와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은 그가 이 집을 둘러싸고 행한 첫 번째 행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것이 내가 지지고 볶을 한옥의 실체다. 사람으로 치면 엑스레이 사진같다고 해야 할까.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직선들로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빈 집에 들어가 앉았을 때 느낀 그 아련하고 애틋한 마음도, 집에 쌓여 있는 80년이 넘은 세월의 고색창연함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적나라한 공간의 실상만 담긴 실측도를 처음 본 순간, 글자 그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번 올린 적 있는 사진을 다시 올린다. 작은 집이라 앵글을 달리 찍어봐야 비슷하다. 이 사진을 올린 건 아래 <현황실측도>와 비교해보시라는 의미다. 대청에서 바라본 집 모습이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현황실측도>의 '방3'과 '창고'이고, 왼쪽이 대문, 오른쪽이 주방이다.
 한 번 올린 적 있는 사진을 다시 올린다. 작은 집이라 앵글을 달리 찍어봐야 비슷하다. 이 사진을 올린 건 아래 <현황실측도>와 비교해보시라는 의미다. 대청에서 바라본 집 모습이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현황실측도>의 '방3'과 '창고'이고, 왼쪽이 대문, 오른쪽이 주방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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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의 집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낡고 오래된 집 마당을 바라보며 나는 꿈을 꿨다. 여기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보태 나만의 무엇을 만들면 되겠다고. 그렇게 온통 막연함으로 점철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측도는 이런 느낌은 다 사라진, 텅 빈 도화지 같았다. 이미 채워진 곳에 무엇을 넣고 빼느냐를 고민하는 것과 텅 빈 도화지에 처음부터 뭘 시작해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었다.

건축가에게도 이 집이 낯설겠지만, 나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건축주랍시고 정리된 생각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집을 사려고 생각했을 때 챙겨야 했던 건 통장과 은행의 사정만은 아니었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것처럼 대략 난감하고 퍽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사람은 참 오묘한 존재다. 이런 낯선 상황에 느닷없이 던져진 것이 싫지 않았다.

'오호라, 이게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의 정체란 말이지! 어디 한 번 시작해볼까!'

팔을 걷어부친 건 꼭 날이 더워서만은 아니었다.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국면이 바야흐로 내 앞에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때는 2017년 8월이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 텅 빈 도화지가 어떻게 채워질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드디어 닻을 올렸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한옥수선, #현황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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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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