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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찾은 인천 서구 주안5공단의 한국지엠 2차 협력사.
▲ 한국지엠의 2차 협력사. 지난 10일 찾은 인천 서구 주안5공단의 한국지엠 2차 협력사.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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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한국지엠의) 호샤 사장님이 와서 '같이 갑시다'라고 얘기했는데, 딱 1년 후부터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네요."

허망한 표정이었다. 그는 "저희 입장에서는 경사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지엠의 2차 협력사, ㈜프라피아(아래 프라피아)의 권승호(53) 대표. 그에게 세르지오 호샤 전 한국지엠 사장의 방문은 일국의 대통령이 온 것과 같았다. 지난 10일 인천 서구의 주안5공단에서 그를 만났다. 사장실 한쪽 벽에는 호샤 전 사장이 회사를 찾았을 때,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권 대표는 활짝 웃고 있었다.

프라피아는 자동차부품 업계에서 젊은 축에 드는 회사다. 이제 만 10년차다. 그가 자동차부품 제조업에 뛰어든 건 지난 2009년이다. 제네럴모터스(GM)가 금융위기로 파산했을 때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권 대표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업계 경력은 짧았지만 제품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투자금을 확보했다. 회사의 주요 생산제품은 엔진과 내-외관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이다. 경우에 따라 1차 협력사의 물량도 위임을 받아 대신 생산해 납품을 했다. 이 덕에 회사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요즘 그는 술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권 대표는 "매일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을 잊기 위해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폐업을 결심한 사장님들이 부럽다고 했다. 사업을 정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처지다. 문을 닫는 순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가족과 직원, 3차 협력사 등 수백 명의 생계가 그에게 달렸다. 대책이 없다는 그는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과 같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권 대표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걱정도 크다. 그의 말이다.

"내용을 아는 집안 가족들은 위로가 안 되니까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 한다. 오히려 평상시처럼 대하는데, 조마조마해 하는 게 보인다. 좌절하지 말았으면 하는 그런….제가 회사 대표니까 간혹 저한테 의지하는 식구들이 '나는 왜 도와주지 않나' 이런 식구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일제 그런 부탁도 없다."


"사업 접는 순간 신용불량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권 대표에게 한국지엠 경영 정상화 사태는 너무나도 급작스러웠다. 미처 대응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사세가 기운 게 내가 농땡이를 치거나, 경영을 못했거나,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지 않냐"고 한탄했다. 그의 주변에는 이미 폐업을 했거나, 수순을 밟고 있는 곳들이 많다. 다시 그의 말이다.

"대우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20~30년 되신 선배들이 계신다. 그분들은 아이엠에프(IMF)와 미국발 금융위기도 겪어가면서 여태까지 유지를 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하신다. 더 나빠지기 전에 접겠다고... 하지만 우리 같이 젊은 회사의 경우는 상황이 또 다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거래량에 따른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 차입을 받는 거다.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모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10일 찾은 한국지엠 2차 협력사의 대표 사무실에 세르지오 호샤 전 사장이 회사 방문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전 사장 방문 기념사진. 지난 10일 찾은 한국지엠 2차 협력사의 대표 사무실에 세르지오 호샤 전 사장이 회사 방문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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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피아는 2차 협력사 치고 탄탄한 구조를 지닌 회사였다. 1차 거래처가 10곳이나 됐다. 하지만 회사의 거래처 중 70%는 온전히 한국지엠에만 의지를 했다. 그의 회사도 인원 감축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지엠을 따라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를 통해 관리직 30%가 회사를 떠났다. 남아있는 직원은 30명 정도. 2014년과 비교하면 1/5로 줄었다. 당시에는 150여 명가량이 근무했다. 이는 2014년 이후 한국지엠의 판매가 줄면서 거래량도 줄어든 데 따른 자연 감소였다.

설비도 줄였다. 고정비를 줄이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였다. 목표는 절반이었지만, 1/6 정도에 그쳤다. 자동차 산업 전체가 사정이 어렵다 보니 구매를 원하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률도 당연히 떨어졌다. 현재 40%를 가동하고 있지만, 20~30%만 돌려도 충분하다. 권 대표는 "재고 부담을 갖더라도 불량을 줄이고, 생산성 높이기 위해 주문량 이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15억 원을 기록하던 월 매출은 이제 2억 원을 겨우 넘는다. 현재 그의 회사는 두 달치의 전기세와 각종 공과금이 밀려있는 상태다. 이달 급여 집행도 불투명하다. 프라피아의 월급날은 25일. 지난달도 예정일보다 5일 뒤에 지급했다. 1차 거래업체에게 3개월~6개월 단기 어음을 받고, 그의 신용으로 할인을 받아 가능했던 일이다. 권 대표는 "불나방 같은 짓을 하고 있다"면서 "상황이 이렇게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면 은행에서 과연 그 어음마저도 끊어줄까"라고 걱정했다.

"사태 당사자들, 해결 의지 보이지 않아"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그의 속은 타들어간다. 권 대표는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당사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면서 "뭔가 해결하려는 의지가 안 보인다"고 개탄했다. 특히,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그가 느끼는 정부의 태도는 2009년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한국지엠과 협력업체를 살리기 위해 인천시와 정부가 나섰고, 지역상생펀드가 조성됐다. 그의 말을 옮겨 본다.

"노조도 강경하고, 한국지엠도 (노조를) 어르고 감싸면서 해결을 보자는 모습이 아니고, '해봐라, 너희가 동의 안 하면 난 떠나면 돼'라는 식으로 보인다. 어떻게든 살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부족한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데, (양측이) 대치하면서 시간만 가고 있다. 2009년 이후 서서히 지엠이 살아나고, 물량이 늘어나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인천시, 정부, 그리고 한국지엠 모두가 합심을 해서 해결을 했다. 그때는 '일어나야 한다, 살아야 한다' 이런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그러한가. 만약에 정부와 지엠에서 진정 의지가 있다면 이대로, 이렇게 막 방치를 하지는 않을 거다."


설령 극적인 노사 합의를 통해 사태가 해결된다 해도 걱정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회사가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고, 판매할 신차도 없다는 것. 권 대표는 "타결을 본다해도 상황이 끝날까 싶다"면서 "저렇게 난리가 난 회사의 차의 품질은 온전하겠으며 소비자들은 이미 마음이 떠나버렸다"고 탄식했다.

"한 줄기 빛 찾았지만, 버틸 여력 충분하지 않다"

지난 10일 찾은 인천 서구의 한 한국지엠 2차 협력사 대표 사무실 책장에 여러 인증서들이 놓여있다.
▲ 한국지엠 2차 협력사 대표 사무실에 놓여있는 여러 인증서들. 지난 10일 찾은 인천 서구의 한 한국지엠 2차 협력사 대표 사무실 책장에 여러 인증서들이 놓여있다.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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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그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경우다. 지난해 현대기아자동차의 2,3차 협력업체에게 부여하는 에스큐(SQ)인증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회사 방문 후 1년 만에 태도가 180도 달라진 호샤 전 사장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권 대표는 "같이 가겠다는 얘기는 온데 간데 없고,알아서 살아라, 우리만 믿으면 안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본격 납품이 시작되는 시기는 빨라야 2019년이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는 "좁고 길다란 통로를 찾았는데, 이를 관통해서 과연 빛을 볼 수 있을지..."라고 말을 줄였다.

영업직원들은 매일같이 자동차가 아닌 다른 제조업 일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매출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들어오기까지 그는 최소 6개월을 예상했다. 6개월로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권 대표는 "희망 사항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거다"라며 "저한테 스스로에 대한 최면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라볼 수 있는게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일을 따온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남은 직원들의 급여도 30% 줄이기로 했다.

권 대표는 부동산에 공장 부지 매각도 의뢰했다. 주안5공단은 인천 지역에서 그나마 평당 호가가 높은 축에 들어간다. 또, 다행히 그의 회사는 대로변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고, 어느 정도 규모도 있는 편이다. 공장과 땅이 팔리면 은행의 남은 담보 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다음 단계를 모색할 계획이다. 그는 공장 이전을 고려 중이다. 아니, 해야 한다. 현대기아차 공장이 아산, 혹은 울산 등에 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라며 "전에는 그래도 플랜 비(B), 씨(C)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은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슬하에 자녀는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아들 하나. 한창 일해야 하는 시기다. 아들녀석 공부도 더 시켜야 한다.


태그:#한국지엠, #2차 협력사, #권승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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