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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3일 합의 직전, 삼보일배 투쟁을 앞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년 3월 13일 합의 직전, 삼보일배 투쟁을 앞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윤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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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이었다. 57일의 투쟁 끝에, 2018년 3월 13일, 알바꼼수 저지와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던 서경지부 연세대 분회가 학교 당국과 합의했다. 학내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의 싸움이 성과를 일궜다는 데에 의의가 있지만 아쉬운 부분 역시 있다. 전체 31명의 인원 중 노조 측에서 16명의 충원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는 10명의 인원 충원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연세대 당국이 앞으로도 일자리 감축과 구조조정, 알바투입 등을 점진적으로 진행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하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설립된 것은 2008년도로, 학내 동아리 '살맛'에서 직접 노동자들을 찾아가 노조 설립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후 10여 년 동안, 학교는 꾸준히, 신자유주의 흐름에 발맞춘 대학 기업화의 선두주자로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소홀히 하거나 후퇴시키려 했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 연세대학교는 2017년 하루 7시간 근무하던 정년퇴직자 자리를 겨우 3시간짜리 초단기 아르바이트로 전환한다. 이로써 31명의 청소경비노동자 인원이 줄어들었다. 16명의 청소노동자는 업무강도를 높이거나 3시간 알바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학교는 15명의 경비노동자는 무인시스템으로 대체하거나 업무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할거라 밝혔었다. 점진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소리였다.

학교는 구조조정의 이유로 등록금 동결과 최저임금 상승과 맞물린 청소노동자 임금인상으로 인해 돈이 없음을 들었다. 1월 23일 확대운영위원회 때, 김동노 전 기획실장은 이에 대해 대놓고 "제로섬 게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학생들의 연대를 막고 여론을 학교 당국의 편으로 돌리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의 설명 중 다수는 진실의 일부만을 파편적으로 발췌하거나, 규정 일부를 의도적으로 오독한 것이었다. 우선, 등록금 동결은 당연한 일이다. 2017년 연세대 평균 등록금은 4년제 대학 중 전국 1위, 901만 원이다. 그럼에도 운영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 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연세대의 적립금은 무려 5307억 원이었고,  최근엔 그 중 1500억 원 가량의 적립금을 적자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가증권에 투자하기도 했다. 청소·경비 노동자 임금 인상에 따라 드는 연 비용이 13억 원임을 생각하면 거대한 액수이다.

이에 학교 측은 적립금의 사용 용도가 지정되어 있어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할당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청소노동자 지원 예산을 마련할 의지만 있으면 적립금 사용 용도를 변경해 기타 적립금에 '청소노동자 지원 기금'을 마련하면 되었고, 이미 수많은 타 대학에서 이를 시행한 전적이 있었다. 결국, 학교 당국의 설명들은 대다수 '눈 가리고 아웅'이었고, 학생과 노동자 사이의 이간질이었고, 다 거짓말이었다.

비정규 노동자의 삶, '우리의' 삶이다

이번 정국에서는 학교가 한 발 후퇴했지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역시 불의의 사정으로 양보한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한국노총의 연대를 깬 선 합의가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학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금 구조조정을 진행하려 할 것이다. 5천억 원 가량의 적립금에 대해 함구한 채, 우리는 돈이 없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좋다고, 재학생들의 등록금이 오를 것이라고 다시금 주장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싸움 역시 끝나지 않았다. 현재 일차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후에도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이 이어진다. 연세대학교가 그렇고, 수많은 타 대학들에서 역시 그러하다.

자본주의 사회 속 축적과 재생산이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이 사회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관심 갖는 이들이 줄거나, 자신의 처지가 더 한탄스럽다며 '불행 배틀'을 하거나, 현 정권에 방해된다는 정치적 이유로 비난하는 이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중요한 원칙이 있다. '사람'이 먼저이다. 10만 명 가량의 대학 내 노동자들, 그중 특히 열약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곧 대다수 '우리'의 삶이다.

그들의 삶의 환경 개선이 곧 주변 이웃들, 가족들, 나아가 나 자신의 노동환경의 개선의 씨앗이 된다. 현재 대학생으로 재학 중인 수많은 연세대, 그리고 타 대학의 학생들은 곧 취직 서류를 내고, 아마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회사에 채용될 것이다. 부당한 처우와 임금에 항의하거나, 또 굴복하면서 꾸역꾸역 다니던 회사를 불의의 사정으로 그만두게 될 것이다.

임신과 출산 때문일 수도 있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명예퇴직의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후의 생존을 걱정하는, 혹시라도 있을 딸,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리는 용역회사를 거쳐 대학 내 비정규직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미화 노동자가 되어 열약한 처우 속으로의 재취업을 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오인하거나, 맞서기를 두려워한다. 높은 등록금을 유지하는 한편, 3분의 1 가량의 수수료를 챙겨먹는 용역회사를 낀 채, 학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을 시키며 몇천억 원 가량의 적립금을 쌓아놓는 기업화된 '대학', 그런 대학을 만들어낸 이 사회가 적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동행해야 한다. 존경 받는, 존중 받는 대학 속 구성윈으로 남기 위해서라도, 가장 낮은 환경 안의 이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연세대, #청소노동자, #적립금, #비정규직,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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