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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세트포인트(set point)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른다. 늙고 병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담보로 하지만, 다행히 병이 들고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도 행복은 다시 찾아온다. 긍정심리학자들에 의하면 '1년'이라고 했다. 사고를 당해 육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더라도, 1년이 지나면 대부분 사람들의 행복은 그 이전 상태로 복구된다. 또 거꾸로 로또에 당첨되는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더라도 그 행복 또한 1년이 지나면 이전의 상태로 내려온다. 이것을 행복의 세트포인트(set point)라고 한다. -김진세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이봄, p.300


이 길에 들어서기 전, 산티아고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여행 가이드라기 보다는 여행 에세이였다. 같은 장소와 길을 걷기 때문에 그 내용이 한결 같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 각자 개성이 있었다. 그것은 공간은 같지만 자라온 환경, 직업, 나이, 혼자이거나 아니면 동행이 있느냐 등에 따라서 순례자들이 상황을, 각각의 색깔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힘든 걷기에 대해 토로했다. 그림자처럼 '긍정 에너지'도 뒤따랐다.

긍정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행복의 세트포인트도 짧았다. 행복의 세트포인트가 짧은 사람일수록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말이다. 나 또한 앞선 순례자들처럼 힘들 때마다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변하지 않은 진실 하나를 발견했다. 순례길을 걷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이었기에 돈과 시간과 체력 그리고 용기가 허락해야했다. 이 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것은 용기이다.

용기를 내서 순례길에 올라섰으면서도 매번 나약함과 맞닥뜨려야 했다. 레온 알베르게에서 4인실을 독실처럼 사용하고 있는 내가 그 다음날 눈을 떴을 때도 그랬다. 아침 공기는 한기가 들 정도로 차가웠고 창밖은 여전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발바닥은 여전히 아팠다. 나는 힘을 내야 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차노휘 화이팅!"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 마을을 지날 때,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시가 있는 벽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 마을을 지날 때, 산티아고까지 298km 남았다는 표시가 있는 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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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고 있다!

긍정 에너지로 나를 담금질 하고 담금질 했다. 단련된 마음은 몸을 이끌었다. 다리를 약간 절었지만 7시간 넘게 걸어서 목표했던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가 보이는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시간이면 35km 정도는 걸었을 것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대략 25km였다. 하지만 내게는 어느 때보다 더 뿌듯한 걷기였다.

레온을 떠나며(레온의 이른 아침 풍경)
 레온을 떠나며(레온의 이른 아침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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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걸음이 느릴 것 같아 레온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오전 5시 30분) 길을 나섰다. 제주 올레길도 그렇지만 산티아고 순례길도 도시에서 길 잃기가 쉬웠다. 구글맵에 레온을 빠져 나가는 산티아고 길 루트를 입력했다. 왼발에 힘이 덜 들어가게 스틱으로 조절하면서 눈은 구글맵을 보며 걸었다. 스마트폰 자체 빛만으로도 걸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도시는 광장마다 물청소하는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신 듯한 젊은 친구들의 술주정으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고건물 전등과 가로등은 여명에 묻힌 도시를 황금빛으로 살려내기에 충분했다. 걸음이 느릴수록 풍경에 눈이 깊게 박히는 법이다. 잠시 멈춰 스마트 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황금빛 속으로 침잠된 마음은 축복을 받은 것처럼 환희로 가득 찼다.

오전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뒤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이 나를 따라 잡았다. 그들의 힘찬 발걸음에 괜스레 주눅부터 들었다. 그러지 않기로 마음 먹어도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늘은 잿빛 구름이 포복 차림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맞은편에서 불어온 바람은 손을 시리게 했다. 한차례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우선 걸음을 멈추고 배낭 커버만 씌웠다. 슬금슬금 불안이 끼어들었다.

'이를 어쩌냐, 차선책을 세워야 하냐? 오늘은 10km만 걸을까?' 

무지개와 크루아상
 무지개와 크루아상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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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구름이 머리 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불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레온 근교 공업지구를 벗어나 비르헨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에 도착했을 때였다. 검은 구름이 서서히 벗겨지더니 무지개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앞서 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그곳에 바가 있었다. 바에 들어가 크루아상과 우유 섞은 커피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던 나이 드신 외국인 부부가 옆자리에 앉더니 일부러 고개를 들어 '부엔 카미노!'라고 말하며 내게 웃어보였다. 그때 보았다. 그녀의 밝게 웃는 주름진 얼굴에 어린 생기를. 그리고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지 의식을.

그녀도 걷고 나도 걷고 그 바 안의 모든 사람들이 걷고, 배낭 짊어지고 바를 지나쳐 가는 이들도 걷는다는 것을. 같은 도착지를 향해 모두들 걷고 있었다. 공통분모가 있었다.

식수대
 식수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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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걷고 있다.

어제의 그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걷고 있었다.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얼마나 많은 감사를 해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앞서 간 이들의 감사와 생기가 이 길 위에 뿌려졌는가. 모두들 보이지는 않지만 한두 군데 아픈 곳이 있었다. 비록 몸은 불편하더라도 마음만은 저리 밝지 않는가. 그것은 순례길 위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이었다.

성당 종탑에 둥지 튼 황새
 성당 종탑에 둥지 튼 황새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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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실 웃음이 터졌다. 다행히 혼자 걸어서 실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도, 자갈길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감사한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였다. 뒤에 오는 이가 나를 따라 잡아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나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소등

어느 동네 길거리에 있는 스탬프. 바구니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비스킷과 사탕, 장미가 있다. 여권 스탬프에 도장도 찍고 과자와 장미까지 선물 받았다.
 어느 동네 길거리에 있는 스탬프. 바구니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비스킷과 사탕, 장미가 있다. 여권 스탬프에 도장도 찍고 과자와 장미까지 선물 받았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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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은 몇 가지 더 있었다.

발베르데(Valverde)를 지났을 때였을까. 길거리에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 찍는 곳이 있었다. 한쪽에는 메모를 남길 수 있는 공책이, 그 옆 바구니에는 비스킷과 사탕과 장미꽃이 있었다. 비가 올 듯해 배낭 커버를 씌웠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순례자 여권을 꺼내 스탬프를 찍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스페인 노인이 내게 비스킷과 장미를 주었다.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하자 그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기꺼이 그와 사진을 찍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공립 알베르게 접수를 마치고 발바닥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때, 전에 데미안이 말했던 한국인 중년 남자들이 들어왔다. 그동안 걸으면서 서너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같은 알베르게에 묵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이 파스타를 요리해서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와인도 곁들였다. 나는 그 보답으로 설거지를 했다.

이곳 알베르게에 한국인 아홉 명이 머물고 있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네 명이 한 조가 된 한국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표정 하나 없었다(뒤에 알게 된 사실은 레온 알베르게 4인실 옆방을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묵념하듯 아는 척을 했지만 도저히 말 걸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국민을 경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류된 길 위에서의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보류' 됐을 뿐이다. 조만간 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순례길이었다.

나는 다음날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중년 남자들이 2층 침대를 배정 받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힘들어서 다른 사설 알베르게로 옮긴 것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보다 걸음이 느려서 누구보다 더 일찍 출발해야 하는 나는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잠시 모든 것을 소등해도 되었다. 다음날을 '순례길 위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을 위해서 말이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 (San Martin del Camino) 공립 알베르게
 산 마르틴 델 카미노 (San Martin del Camino) 공립 알베르게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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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프레그리노, #행복의 세트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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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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