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영화 포스터

<레디 플레이어 원>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주의!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2005) 이후 13년 만에 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을 내놨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덕후의 영화'다. 2045년 한 소년이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 들어가 모험을 하는 내용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카메오가 등장한다.

'오버워치', '스펀지밥', '건담', '스트리트 파이터', '샤이닝' 등 시대, 매체, 국가를 가리지 않고 온갖 대중문화에 대한 오마주가 등장해 그 숫자를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각종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전투신까지! <레디 플레이어 원>은 확실히 보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눈여겨볼 요소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영화 평론가 브라이언 탈레리코(Brian Tallerico)는 영화의 '압도적인' 특성과 멈추지 않는 액션은 대중문화 팬들을 흥분시키겠지만, 스토리에는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토리는 단순히 주인공이 게임에 들어가 우승하여 세상을 구한다는, 매우 간단한 플롯을 따르고 있다. 게다가 일부 조연들은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갑자기 등장해버리는 등, 허점도 존재한다. 다만 이건 원작 소설에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이며, 오히려 영화에서 스필버그 감독이 이 문제들은 나름 극복하려 했던 시도들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화려함 속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포장해놨다.

무너진 노동계층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인 웨이드가 사는 곳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빈민가다. 영화에서 빈민가는 컨테이너 집들이 쌓여있는 쓰레기장 같은 장소로 묘사된다. SF 영화 특성상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구조는 오늘날 빈민촌과 다르지 않다. 밀집된 건물들과 좁은 집, 그리고 더러운 거리, 그 특징들은 미국 대공황 당시의 빈민가와 상당히 유사하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배경이 오하이오주라는 것이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오하이오주는 과거 제조업의 중심이었지만 미국이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IT붐이 일어나면서 몰락한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핵심 지역이다.

영화에서 지역 주민들은 간신히 연명하며, 그중에는 웨이드와 웨이드를 키워주고 있는 이모 앨리스도 포함된다. 앨리스 이모의 남자친구인 릭은 새 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쏟아부으며 게임 아바타를 구매하는 등, 심각한 게임 중독에 빠져있다.

오늘날 이미 무너져가는 오하이오주의 더욱 암울한 미래를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면서 스필버그 감독은 관객들에게 첫 번째 경고를 날린 것이다.

사악한 대기업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IOI'라는 기업이 등장한다. 오아시스와 연동되는 수트 등 각종 기기를 판매하는 기업인데, 오아시스에 밀려 늘 2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겉모습과 다르게 IOI는 엄청난 악덕 기업의 면모를 보인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신용불량자들이 된 사람들을 사병을 동원하여 납치하여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나중에는 오아시스를 차지하기 위하여 방해되는 주인공들을 처치하기 위하여 폭탄을 설치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거나 개인정보를 긁어모아 도심에서 총격전을 벌이기까지 한다. 규제의 힘이 약한 온라인 세상이 팽창하자 관련 기업들이 국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오아시스를 차지하여 돈을 버는 것이며,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IOI의 수장인 놀란 소렌토는 오아시스가 제공하는 각종 대중문화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법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목숨까지 우습게 보는 전형적인 엘리트 블랙기업가다. 스필버그는 IOI에 의해 뒤집어진 사회를 보여주면서 소수 대기업의 독점, 심해지는 빈부격차를 지적하고 있다. 만약 해당 문제들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암울한 2045년은 우리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현실도피

2045년, 사람들은 오아시스에 사실상 살고 있다. 오아시스에서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휴가를 가고, 일을 하고 있다. 오아시스에서 쓰이는 가상화폐가 현실 세계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지고, 현실 세계가 황폐화되면서 사람들은 온라인 세상으로 도피한 것이다.

오아시스에서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현실 세계에서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게임 속에서는 존경의 대상이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웨이드만 해도 오아시스에서는 유명한 플레이어지만 현실에서는 빈민촌에 사는 '루저'다.

암울해진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오아시스의 가상 세계 속에 자신들을 고립시켰다. 게다가 게임에서 죽으면 모든 돈과 아이템을 잃는다는 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게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가 파산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결국 아무리 오아시스에서 발버둥을 치더라도 현실 세계를 피할 수는 없다. 현실 때문에 극 초반부터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틸컷. 극 중 파치발 역(타이 셰리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영화의 결말에서 '진짜는 진짜 세계에 있다'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바로 이것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아무리 온라인에서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가짜 세계'이며, 진짜 삶은 '진짜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비록 영화 막판에 제시된 메시지지만 스필버그는 영화 초반부터 오아시스의 문제들을 보여주면서 그 메시지를 관객들이 직접 찾도록 만들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로 영화를 보러 갔다가 교훈을 얻고 나온 셈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다.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오늘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은 상당히 가까워져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웨이드가 내리는 선택들은 우리가 내려야 할 선택들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희찬 시민기자의 페이스북 계정과 스팀잇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스필버그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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