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TV프로그램에서 귀농, 귀촌 등의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어촌으로 떠나 지역주민들의 일손을 돕기도 하고, 그 지역의 특산물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는 등의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지금은 종영한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 <아빠 어디가>, 그리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1박2일>같은 프로그램은 대체로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

 tvN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농촌을 배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담은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tvN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농촌을 배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담은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 tvN


그리고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버린 프로그램이 있다. 나영석 PD의 작품인 <삼시세끼>다. 2014년 시즌1을 시작으로 2017년 <삼시 세끼 – 바다목장편>까지 총 7편 모두 TVN 대표예능으로 자리잡았다. <삼시 세끼>는 말 그대로 출연자들이 직접 요리를 해서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식사에 필요한 재료는 직접 충당한다. <어촌편>과 같은 경우 출연자가 낚시 또는 통발로 해산물을 잡아온다. 그리고 집 앞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기도 한다. <농촌편>은 당연히 농사일이 중심이다.

<삼시 세끼>의 키워드는 자급자족이다. 도시를 떠나서 잠시나마 고민과 번뇌를 잊고 한 끼의 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묘한 힐링을 경험하게 된다. 너무나도 많은 고민과 걱정을 달고 사는 현대인에게 온종일 세 끼 식사만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휴식이 아닐까.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 세끼 식사만을 위해 노력하는 '휴식'

이번 달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위에 언급된 내용과 부합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일본의 동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넓은 의미의 스토리 구조는 원작과 비슷하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영화 전반부의 일본적 정서를 한국적 정서로 탈바꿈하려 노력한 모습이 눈에 띈다. 원작 속 에피소드를 가져오면서도 무작정 사용하는 것이 아닌 적절히 각색을 통해 스토리 진행을 매끄럽게 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스틸 사진

<리틀 포레스트>의 스틸 사진 ⓒ 메가박스㈜플러스엠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편의점 알바와 암용고시 준비를 병행하는 취준생이다. 평소 식사는 대부분 편의점 도시락. 남자친구는 합격하고 본인은 불합격한 것에 자존심이 상해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내려온다. 혜원은 수능이 끝나기 전까지 엄마(문소리 분)와 함께 고향에 살았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얼마 후 엄마는 홀연히 떠나버린다. 혜원도 이후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을 하다 몇 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추운 겨울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며칠 뒤에 떠나기로 하지만 일주일, 한달, 그러다 고향에서 1년 동안 머물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때문에 두 영화를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도 관객에게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두 <리틀 포레스트>의 키워드는 음식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직접 요리를 한다. 그리고 음식을 통해 에피소드를 전개해 나간다. 물론 음식의 종류는 다르다. 두 작품의 공통으로 등장하는 음식은 밤조림이다. 그 외에는 각기 다른 음식들이 등장하는데 비교를 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두 영화는 각각 힘을 준 부분이 다르다. 원작이 농촌 생활과 음식에 초점을 맞춰 옴니버스같은 느낌을 준다면, 한국판은 인물간의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해서 스토리 진행에 중심을 힘을 실었다. 때문에 원작을 먼저 접한 관객이라면 음식에 대한 비중이 줄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는 한국판이 원작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된다. 원작과 한국판 모두 주인공과 엄마의 설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한국판에서는 혜원과 엄마의 관계를 강조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음식은 대부분 혜원의 유년시절 엄마가 해준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은 직접 요리를 하며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엄마를 미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결국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혜원의 마지막 숙제이기도 한 셈이다. 엄마 역할은 배우 문소리가 연기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엄마의 모습은 문소리와 너무나도 유사해보여 몰입도가 올라갔다.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수박


주인공의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두 작품은 차이점을 보인다. 원작의 주인공 친구들이 단순하게 에피소드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혜원의 친구들은 혜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혜원 초등학교 동창인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은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 남녀 간에 '썸 아닌 썸'의 달달한 기류도 흐른다. 영화 속의 세 남녀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춘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팍팍해진 삶, '작은 숲'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영화 속 혜원은 도피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상에 찌들어버린 혜원은 이미 지쳤다. 영화 속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항상 허기가 진다는 대사는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다. 잠시만 머물겠다는 계획과 달리, 혜원은 고향에 머물며 영혼의 허기를 채워나간다. 상처받고 팍팍해진 자신을 치유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돕곤 했다. 나쁜 점만 있던 것은 아니겠지만, 어린 나이에 나는 시골이었던 우리 집이 별로 좋진 않았다. 학교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첫 차를 타야했고, 주말이면 부모님을 도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가 농촌 생활을 너무나도 미화했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한 장면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한 장면 ⓒ 영화사 수박


4년 정도 자취를 하다 보니, 언제나 나를 반겨줄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자주 가진 못하지만, 본가로 들어가 집밥을 먹고, 가만히 있는 것만 해도 힐링이 된다. 도시락도 배달음식도 질린 자취생들에게 가장 그리운 것이 집밥이다. 혜원에게 고향은 지겹도록 떠나고 싶은 곳이었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치유되길 바라며 혜원의 대사로 글을 마친다.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 엄마에겐 그게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춘천지역 주간지 <춘천사람들>에서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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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글쓰기 동아리 Critics를 운영하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있습니다. 춘천 지역 일간지 춘천사람들과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차후 참 언론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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