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에 갔을 때다. 공항에 도착해서 켠 스마트폰에 이런 내용의 문자가 왔다. "[외교부] 후쿠시마 원전 주변 반경 30km (철수 권고)"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3월 11일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7년이 흘렀다. 원전 사고는 후쿠시마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평화롭던 마을은 폐허가 됐다. 3세대가 함께 살았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후쿠시마는 공포의 대명사가 됐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최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이 22세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도 누군가의 노력이 없다면 잊히기 마련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피해 정보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영화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나섰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이에 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일본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은 불안하고 참혹하다. 그래도 희망을 갖자는 것이다. 그중 세 편을 소개한다.

원전사고 공포의 극대화, 역설적으로 말하는 <희망의 나라>

 영화 <희망의 나라>에서 이즈미는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장을 보러 간다.

영화 <희망의 나라>에서 이즈미는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장을 보러 간다. ⓒ Marble Films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희망의 나라>(2012)는 대지진으로 원전사고가 발생한 나가시마 현의 이야기다. 사고 후 분리된 가족을 중심으로 현실감 짙은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무겁게 다뤘다. 원전사고 피해 주민들의 허탈함과 슬픔을 전하고 사고 대처에 무능력한 정부, 방사능 공포 분위기를 억누르는 언론의 무책임함을 꼬집는다. 방사능의 공포에서 무감각해진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원전으로 부흥했던 나가시마 현에 규모 8.3의 지진이 일어났다. 원전 사고로 나가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반경 20km가 출입금지로 지정되고 야스히코(나츠야기 이사오)네 집 마당에 출입금지 펜스가 쳐진다. 그러나 바로 옆 이웃 주민은 20km 반경 내에 산다는 이유로 피난 명령이 떨어진다. 야스히코는 아내와 남는다. 대신 아들인 요이치(무라카미 준)와 며느리 이즈미(카구라자카 메구미)에게 다른 곳에서 살라고 한다.

작품 배경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후쿠시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돌아올 희망을 저버린 피난민들, 지시에 따라 달라고만 말하는 경찰 관계자,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 모유에서 세슘이 검출됐다고 말하는 한 여성 등이 나온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난다.

임신한 이즈미가 방진복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마트에서 채소에 방사능 측정기를 갖다 대고 집안을 모두 비닐로 묶어놓는 장면은 공포의 극대화다. 의사는 방사능 공포증이라고 진단을 내리면서 "과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영화는 방사능 피폭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인 <희망의 나라>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방사능에서 피할 수 없는 등 희망이 없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통제 구역을 배경으로 두 젊은 남녀가 "입뽀(한걸음)"라고 반복으로 외치면서 전진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소노 시온 감독은 이 영화의 배경지의 이름을 나가시마로 지은 이유에 대해 일본에서 방사능 피폭이 있었던 지역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나가사키, 히로시마, 그리고 후쿠시마다.

'쌀'로 관통하는 희망의 메시지, <집으로 간다>

 영화 <집으로 간다> 포스터

영화 <집으로 간다> 포스터 ⓒ Horipro Inc.


구보타 나오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간다>(2014)는 후쿠시마의 희망을 좀 더 강하게 그렸다. 방사능 피폭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예전에 부흥했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면서 흩어졌던 가족이 재결합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도 더한다.

사와다 소이치(우치노 마사아키)는 후쿠시마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원전 사고 후 모든 것을 잃고 지금은 다른 도시의 가건물에서 가족과 살고 있다. 소이치는 무기력하고 답답함 속에 산다. 아내 사와다 미사(안도 사쿠라)는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 소이치의 동생 사와다 지로(마츠야마 켄이치) 어린 시절 도쿄로 건너가 살던 중 고향인 후쿠시마로 돌아온다. 그는 옛집에서 홀로 벼농사를 지으며 산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쌀이다. 유독 쌀을 씻는 장면이나 쌀밥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쌀은 주식이자 풍요로웠던 시절의 후쿠시마를 상징한다. 후쿠시마는 원전으로 부흥했다. 그러나 원전이 후쿠시마에 들어온 것은 불과 몇십 년 전이다. 쌀은 진정한 후쿠시마로 돌아가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염된 땅에서도 벼가 자라나는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사람도 힘겨운 현실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지로의 엄마 사와다 토미코(다나카 유코)는 치매를 앓고 있지만 벼농사 짓는 법은 까먹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이 재배한 쌀은 방사능 오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주인공들의 건강에도 해가 될 것이다. 작품은 그럼에도 이토록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의 간절함을 그렸다.

소이치도 옛 자신의 땅을 찾아 잡초를 뽑기 시작한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소이치의 가족은 다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재결합을 향한 것이다.

구보타 나오 감독은 영화 일부 촬영을 원전 사고 20km 반경 내에서 찍었다. 감독은 "결국 후쿠시마 땅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촬영 당시) 정말 말할 수 없는 무서움이 있었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푸른 자연이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는 뭔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떠나지 못한 동물을 돌보는 남자 <나 홀로, 후쿠시마>

 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 포스터

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 포스터 ⓒ 싸이더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피해를 본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버려진 가축들과 반려동물들도 있다. 이들을 돌보는 한 남성이 있다. 마츠무라 나오토다. 건설회사에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뒤 버려진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간혹 기부를 받기도 한다. 가족도 없는 그는 동물 수백 마리에게 먹이 주는 것을 자신의 본업으로 삼는다.

<나 홀로, 후쿠시마>(2014)는 다큐멘터리로 나카무라 마유 감독이 직접 8개월간 한 달에 1~2차례씩 후쿠시마 도미오카 마을로 가 나오토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도미오카 마을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12km 떨어진 곳이다. 촬영 당시 부분출입가능지역으로 출입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였다. 그러나 나오토는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 방사능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들릴 정도로 수치가 높은 지역이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미 나오토의 일화가 소개됐으나 일본에서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도쿄신문과 교도통신에서 짤막하게 다룬 정도다. 동물을 살아있는 상황을 보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형언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고 나카무라 감독은 말한다. 본인이 직접 나선 이유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의 한 장면. ⓒ 싸이더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혼자라서 외로울 법도 하지만, 나오토는 묵묵히 동물들을 돌본다. 그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작품은 이런 나오토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줘 후쿠시마의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전한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무관심한 정부다. 소도 포유류이므로 방사능 피폭 정도를 연구하면 가치가 있지만 정부는 관심이 없다. 가축을 살처분할 생각만 있다. 둘째는 제대로 되지 않는 제염 작업이다. 나오토는 농림수산성 앞에서 정부가 세금만 축내고 있다고 항의한다.

방사능 피폭에도 불구하고 나오토가 후쿠시마에 관심을 갖는 모습은 헌신적이면서도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반면 풍요로운 정부가 무능함은 재난 상황에 대한 사회 대응 시스템의 부재를 말한다. 고통은 재난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재난 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는 새로운 공포를 생산한다.

집으로 간다 나홀로 후쿠시마 희망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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