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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개헌 이후 31년 만에 다시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헌은 생각보다 훨씬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 한 사람의 국민으로 언제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걱정없는 삶을 꿈꿀 수 있는지 개헌은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만드는 헌법'이라는 기획을 통해 여러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장애인, 농민, 노동자, 성소수자, 사법피해자, 취준생 등 각자의 위치에서 '내가 생각하는 헌법, 내가 바라는 개헌의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기사로 써서 보내주세요. '내가 만드는 개헌'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경험을 고발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미투 운동 전후로 세상이 나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최소한 성폭력을 묵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던 문화는 사라질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어떤 모양이든지 크고 작은 권력에 기대어 일상으로 행해졌던 폭력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만, 미투 운동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라는 소망 가운데 그 효과가 '모두'에게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어 씁쓸하다.

이 땅에 있는 200만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결혼이주여성과 주한 재외동포들을 생각하면 미투 운동은 대한민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1항과 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되고 이러한 국제법과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명문 규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든 결혼이주여성이든 모든 외국인은 그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2007년 헌재도 외국인 기본권 이정했지만...  

고용노동부가 '외국인근로자 사업장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내부 지침을 내놓은 데 대해 이주노동자 인권대책위 등이 2012년 7월 25일 오후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인권유린이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용노동부가 '외국인근로자 사업장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내부 지침을 내놓은 데 대해 이주노동자 인권대책위 등이 2012년 7월 25일 오후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인권유린이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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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2007년 8월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일부 사항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고했다. 위헌 이유는 산업연수생 관리 지침이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기 때문이었다. 해당 판결로 헌재는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렸던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에 철퇴를 가했다.

2007년도 헌재 판결은 산업연수제가 이미 폐지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우리 헌법은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판결은 근로의 권리에 관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명확히 한 판결이었다. 외국인도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있다는 2007년 판결은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2011년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위헌 확인 청구에 대해 헌재 전원재판부는 외국인도 직장 선택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직장 선택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만큼 단순히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외국인도 제한적으로라도 직장 선택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헌재는 외국인도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반복해서 판결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사건 청구인들은 대한민국에 적법하게 체류하는 기간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기를 희망했다.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관계를 계속하기 위해 직장 선택의 자유를 인정받기를 원했다. 2007년 헌재 판결이 산업연수제가 위헌적 토대 위에서 이익 집단의 배를 불려 왔었던 악한 제도였음을 확인해 줬기에 이주노동자들은 세상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연시하던 야만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기를 희망했다. 외국인의 기본적 주체성을 인정한 헌재 판결에 따라 법과 제도가 새롭게 정비되기를 바랐다.

그런 청구인들의 기대와 달리 2011년, 헌재는 외국인도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밝혀 놓고도 사업장 이동 제한은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함으로써 자기모순에 빠져버렸다.

"3년 체류 기간 동안 3회까지 사업장 이동을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게 허락한 대통령령이 청구인들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이에 대해 청구인을 비롯한 관련 단체들은 당시 헌재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 눈치를 보았다고 규탄했었다. 헌재 판결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제보다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무시하고 권익을 짓밟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

성추행한 사장 고소 취하한 이유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치옴난은 한국에 올 때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가는 행운을 얻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그 다음은 3년 동안 일할 곳으로 배정된 곳이 제주도였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주위 사람들은 돈 주고도 가 봐야 할 곳이 제주도라면서 자기 일처럼 축하해 줬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에서 시작한 제주 생활은 평생 씻기 힘든 악몽이 되고 말았다.

나이가 비슷한 캄보디아 여자와 같이 산다는 사실 말고는 제주 생활은 위로가 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논밭에서 일하는 걸 예사로 알고 자랐던 치옴난에게도 농장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콩을 꺾고 배추밭에 농약 치고 김 메는 일 따위는 견딜만했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환갑을 넘긴 사장이 시도 때도 없이 치근대는 일이었다.

이동권을 제한 받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동권을 제한 받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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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옴난은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사장은 젊은 여자 둘이 생활하는 비닐하우스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쉬는 시간에 둘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서는 엉덩이를 툭툭 치고 어깨를 끌어당기며 입술을 내미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둘은 떨어져 있다가는 사단이 날 거라는 걸 예감했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사장은 농약을 칠 때면 분무기 줄을 잡을 사람이 한 명 밖에 필요 없다는 핑계로 둘을 떼어놓았다. 마스크도 없이 농약을 치는 일도 힘들었지만 분무가 끝나고 돌아오는 트럭 안에서 사장 옆자리에 앉는 일은 더욱 고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장은 둘에게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움켜쥐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참다못한 둘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노발대발했다. 둘이 경찰서로 달려가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경찰서에서 사장에게 잘못을 추궁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지역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의 지원을 받아 두 사람이 사업장 변경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사업장 변경 후 둘은 제주를 떠나 용인으로 갔다. 사장에게서 멀리 떠날 수 있어 안도했다. 치옴난은 성추행 피해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장이 똑같은 짓을 다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에게 할 것이라는 걸 떠올리면 끝까지 사장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가 자신에게 사업장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성추행에 그냥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에서 '사람'으로"

6.13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에 설치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 마련 작업에 들어갔다.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내 삶을 바꾸는 개헌, 국민헌법'이라는 제목 아래 주목받는 안건들을 정리하고 의견을 받고 있다.

그 중 외국인과 관련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에서 '사람'으로"라는 안건이 눈에 띈다. 현행 헌법은 제2장 제목을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하여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11조 평등권 등 개별 기본권 조항에서도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밖에 평등권,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양심·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에서도 모두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이라는 단어 때문에 고용허가제 헌법 소원 등에서 보듯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이 땅에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등에 있어서 일정 부분 제한받아도 되는 존재로 치부돼 왔다. 헌법 제6조2항에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해 놓고도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이지, 당연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국적이 다르다고 제한해도 될까? 성폭행을 당해도 임의로 사장의 마수를 벗어나면 불법체류자가 되도록 만드는 법이 온당할까? 물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기본권 부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기본권의 내용에 따라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논의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200만을 넘어 앞으로 더 늘어날 체류 외국인들과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좀 더 진지하게 이 부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는 누구나 어느 곳에서든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새로 마련된 헌법에는 차별과 법률 공백지대가 없는 세상, 이주민도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인권보호가 당연한 나라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서 국민의 권리는 사람의 권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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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고기복의 <이주노동자 이야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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