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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편집자말]
이 글이 선정적으로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정폭력을 가정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내 지난날의 이야기다. 구태여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어딘가에 있을 나 같은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소리내기 위함이다. -기자말

경마장에 갔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 세 식구는 지레 뿔뿔이 흩어졌다.
 경마장에 갔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 세 식구는 지레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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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12시, 아빠가 없는 거실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엄마가 끓여준 국수를 호로록 먹으며 TV를 본다. 밥상을 치우고 나면 오빠와 나는 비스듬하게 누워서 '출발 비디오 여행'을 마저 시청하며 살짝 잠이 들곤 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해가 지면 불안해졌다. 경마장에 갔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 세 식구는 지레 뿔뿔이 흩어졌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지는 도박판에서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돌아올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어떤 포인트에서 화를 낼지 알 수 없으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것뿐이었다.

아빠는 나를 가장 사랑했고, 나를 가장 빈번하게 때렸다. 이유가 없어도 맞았고 이유가 있으면 더 심하게 맞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물을 엎지른다고 맞았고, 발소리가 크다고 맞았다. 말대꾸한다고 밥상에서 싸대기를 맞기도 하고, 아예 밥상을 엎기도 했다.

학교를 땡땡이쳤던 어느 날,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빠는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10분쯤 발로 밟았다. 오빠는 한번 맞으면 심하게 맞았다. 중학생이 되자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대학에 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취를 시작했다.  

엄마는 돈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아빠는 주식과 경마를 오가며 가산을 탕진해갔다. 엄마는 마지막 남은 전세금을 움켜쥐고 위태롭게 버텼다. 그러자 그는 저녁마다 돈 내놓으라며 몇 시간이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며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엄마는 바싹 말라가고, 아빠는 독이 바짝 올랐다. 그는 새벽 기도를 하려 나서던 엄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리 지르며 손을 올리던 아빠의 팔목을 낚아챈 것은 오빠였다.

"이제 그만 하이소."

오래 벼른 말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세 식구는 아빠가 잠든 틈을 타 집을 나왔다. 새벽의 일이 분했던지 그는 초저녁부터 아들과 다시 몸싸움을 벌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경찰이 들렀다가 갔다. 표면적으로는 소강상태였지만, 어둠 속에 살기가 깔려 있었다.

20년간 공고하게 유지된 가부장의 권력에 금이 갔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뤄볼 때 칼부림을 하든 방화를 하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살기 위해 짐을 쌌다. 3개월 뒤 부모님은 이혼했다. 아빠가 찾아올까 두려워 숨어살았다. 단칸방이지만 그가 없는 집에서 난생처음 안락함을 느꼈다. 

헤어질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은 독재자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부친이 도박 중독이었던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정폭력만으로는 이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을 가정폭력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아빠가 성질이 더럽다고만 여겼지,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한 번, 횟수로 따지자면 반년에 한 번쯤 맞았을까?

피가 난다거나 멍이 든다거나 외상이 남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건 내가 알던 가정폭력과 달랐다. TV에 나오는 사건처럼 피투성이가 되도록 심하게, 2~3일이나 일주일 간격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빠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함께 사는 법을 익혀왔다. 간헐적인 구타는 아빠의 말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했다. 집 안에서 그는 왕이고, 그의 기분이 곧 법이었다. 그 법을 따르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자산인 전세금을 내놓으라던 그 무리한 요구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독재자가 구축한 억압적인 평화 속에서 말이다.   

종종 나의 가정사를 부러워하는 이들을 만난다. 결정타가 없어서 폭력적인 아버지와 연을 끊지 못한 경우다.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어렸을 적 아버지는 공포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자기도 맞고 어머니도 맞았지만 죽을 만큼 맞지는 않았고, 아버지가 경제적 책임을 다했다거나 혹은 무능력하더라도 최소한 집안 경제를 파탄에 빠트리지는 않을 정도라면, 그 시절의 부모들은 혼인관계를 유지했다. 이혼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은 독재자들 탓에 경미한 가정폭력은 밖으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내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익숙한 것은 먼저 내 경험을 털어놓고 나면 그제야 너도나도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가정폭력이라고 이름 붙이지도 못했다.

한두 번이라서, 비정기적으로 맞아서 그랬던 걸까? 경찰이 올 정도는 아니라서? 병원 가서 진단서 끊을 정도는 아니라서? 때리고 나면 아버지가 그 다음날 잘해줬기 때문에? 술만 먹지 않으면 멀쩡한 사람이라서? 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맞은 건 아닐까? 아버지의 말대로 어머니가 먼저 잘못한 건 아닐까? 모든 물음의 끝에는 이 한마디가 기다린다.

"그 정도는 아니라서."

집 안에서 때린 사람이 있고 맞은 사람이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을 두고, 가정폭력을 가정폭력이라고 부르기까지는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한 걸까. 가정폭력에 관한 책<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정폭력의 존재, 실태, 구조를 아무리 완곡하게 설명해도, 다시 말해 '경미한' 사례를 예로 들어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놀라면서도 이들은 '우리 집도 그렇다'고 말한다. 이 같은 경험과 인식의 격차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나의 가족사'를 주제로 해 학생들에게 리포트 숙제를 내주면, 절반 이상이 '아버지는 구타자'라고 써낸다.

이 수치는 가해자, 피해자, 조사자의 폭력 개념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가정폭력 실태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한국 여성 대부분은 평생에 한두 번 이상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정폭력(아내에 대한 폭력)의 경우, 그중 절반 이상은 '종종', 3분의 1은 반복적, 규칙적,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무엇이 우리의 경험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가
 무엇이 우리의 경험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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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경험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가

실제로 가정폭력을 경험하고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경미한 사례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가해자 남편을 피해 목숨을 걸고 쉼터로 탈출하거나 아니면 죽어서 발견되거나 하는 극단적인 사례만을 다룬다. (내 사례가 경미하다고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극단적으로 보여서 유감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웬만한 외상이 있지 않고서야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계에서 가정폭력을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언어적, 정신적, 성적, 경제적 학대 및 사회적 격리를 포함한 광범위한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이 아닐까? 바로 미투 운동처럼 말이다.

미투 운동의 의의 중 하나는 성폭력의 사회적 기준을 다시 세웠다는 점이다. 성폭력을 '성을 매개로 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모든 가해행위'라고 정의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강간만을 심각한 범죄로 볼 뿐 성희롱이나 성추행에는 비교적 관대하게 취급해왔다.

강간조차도 성관계에 합의했는지가 쟁점이 아니라,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다.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하자 달라졌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나와 성폭력 피해를 발언하는 여성들은 스스로 사례집이 되어, 그간 성적 불쾌함을 느꼈던 모든 행위에 성폭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지금까지는 남성들이 문화 권력과 법적 잣대를 통해 성폭력의 범위를 최소화해왔다면, 여성들이 사례를 통해 울타리를 부수고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것도 성추행이고 저것도 성폭행이라면 나도 거기에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오금 저린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계를 포함해 종교계, 정치판, 학교, 회사... 권력과 위계가 있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남자라면 누구든 성폭력에 관한 자신의 기준을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다. "연애 감정이었다", "격려의 의미였다", "합의된 관계였다"는 가해자의 변명에 공감한다면, 미투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버지는 내가 생애 최초로 만난 가부장제의 얼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얼굴을 안다. 우리는 말하는 고통을 딛고서 함께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가 생애 최초로 만난 가부장제의 얼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얼굴을 안다. 우리는 말하는 고통을 딛고서 함께 위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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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만난 가부장제의 첫 얼굴

가정폭력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적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2010년 여성가족부의 '전국 가정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부부폭력률은 53.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전국의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부모의 폭력을 목격했다고 답한 것과 일치한다. 2명 중 1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니, 가해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60대 언저리의 이 남성들은 출신 지역, 교육 수준, 직업,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에 골고루 포진해있다. 그들은 미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극히 정상이다. 집 밖에만 나가면 점잖고 교양 있는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분노 조절은 오로지 집 안에서만 '의도적으로' 실패한다. 가부장제가 응원하는 폭력적인 문화 속에 이들의 욕설, 폭언, 정신적, 신체적 학대가 일상적인 것으로 둔갑해왔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가정폭력에 대한 피해를 증언하는 게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주 작은 경험부터 사례를 축적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가정폭력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기준을 정하고 정의하고 대처하는 힘을 되찾아오는 과정이다.

지금도 네이버 지식인에 '가정폭력'을 검색하면 자신의 경험이 가정폭력인지 아닌지를 묻는 십 대들의 글이 주를 이룬다. 요즘도 이웃에서 남자가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지속되어야 경찰에 신고할지 고민스럽다. 누군가에게는 가정폭력이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럽더라도 함께 말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개인적인 기억들이 보편의 서사가 될 때 갖는 힘을 우리는 미투 운동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저자는 말하는 자의 고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프리모 레비는 평생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에 시달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특권'을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배려와 관용. 나는 이 부정의를 참을 수 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고통, 폭력, 슬픔이 연구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역사의 산물이라는 인식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아버지는 내가 생애 최초로 만난 가부장제의 얼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얼굴을 안다. 우리는 말하는 고통을 딛고서 함께 위로받을 수 있을까.  


태그:#가정폭력, #미투, #아주친밀한폭력, #나는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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