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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2년 겨울에 서울 왕십리의 한 인력사무소에서 만났던 따뜻하고 배려 깊은 이름 모를 아저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 당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터라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감사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분이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시면서 어떻게 지내시는 지 알 길이 없지만, 2010년도에 종영된 KBS의 'TV는 사랑을 싣고'같이 추억의 인물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부활해서 기적적으로 그 아저씨를 찾아준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인력사무소에 나가다

그분을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집안 사정으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척집, 친구 집에서 며칠씩 잠을 자며 이동해서 사는 유목민에 가까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혼자 느끼는 눈칫밥을 먹은 지 6개월 정도가 되어 가자 나는 그 불편함에 지쳐 갔고, 결국 독립을 결정했다.

고등학생이 혼자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찾은 곳은 바로 고시원이었다. 고시원의 한 달 비용은 15만 원이었는데 그곳은 내가 잠 잘 수 있는 침대가 있었고, 공동사용구역에는 반찬은 없지만 항상 밥이 되어 있어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고시원의 작은 방은 비록 밖으로 연결되는 창문도 하나 없는 답답하고 작은 공간이었지만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고시원비도 내야 했고, 학교를 다닐 차비도 필요했으며 가끔은 밥도 사먹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는 학교를 다녀와서 저녁에 쇼핑타워 음식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말에는 인력사무소에 나가서 일용직 일을 하며 생활해 나갔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용직 일을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는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사실, 평일 저녁에 하던 배달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3500원이라 일주일 열심히 일해도 벌 수 있는 돈은 채 10만 원이 안 됐다. 하지만 인력사무소를 통한 일용직 일은 하루에 5천 원 수수료를 떼고 6만 원을 벌 수 있는 내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였다.

인력사무소는 거의 선착순으로 일거리를 줬는데, 늦어도 새벽 6시쯤에는 나가야 안정적으로 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 6시에 인력사무소를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해 겨울의 찬바람은 유독 나에게만 더 차갑고 무서웠다. 평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면 너무 몸이 피곤하고, 우울해져 잠을 한숨도 못 자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인력사무소에 나가야 했다.

사연 있는 아저씨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아저씨의 거짓말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아저씨의 거짓말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 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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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느 주말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려 금요일 밤에도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고, 결국 토요일엔 일을 나가지 못했다. 주말에 이틀 다 일을 나가지 않는다면 그 다음 주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일요일엔 꼭 일을 나가야 했다. 일요일에도 새벽 4시에서 5시쯤 잠깐 졸았을까? 눈을 떠보니 6시 30분이었다. 급하게 세수를 하고 인력사무소를 가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일을 받고 떠난 상태였고, 나와 같이 조금 늑장을 부린 서너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등산복 차림을 하고 있는 아저씨 옆에 앉았다.

"학생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일을 하러 왔네?"
"아, 그냥 뭐 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나에게 말을 거는 아저씨에게 일일이 이것저것 설명하기가 귀찮아 거짓말로 둘러댔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 채 20분 넘게 지나가는 데도 일은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심심했는지 나를 보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사실 2주 전에 직장에서 쫓겨났어. 근데, 아직 집에 얘기를 못했지 뭐야. 그래서 평일 아침에는 옷을 싸와가지고 여기서 일하고 들어가고, 오늘은 등산한다고 거짓말 하고 또 여기 오는 거야. 집에 아들 하나가 있는데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거든. 그 애 대학은 보내야 하는 데 걱정이야. 학생은 뭐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이런 일까지 해?"

"아.. 사실 저도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집안 사정 때문에 이 앞에 고시원에 혼자 살고 있어요. 평일 저녁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고시원비랑 학교 가는 차비랑 생활비 쓰려니까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린 나이에 이렇게 생활력이 강한 거 보면 꼭 크면 잘 살 거야!"

내 얘기를 듣던 아저씨는 아들 생각이 난다며 내 손을 꼭 부여잡고 따뜻한 말로 격려해주었다. 나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업 실패 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처음 만나 잠깐 나눈 대화지만 우리는 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따뜻했다. 재미있게 대화를 하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훌쩍 넘었다. 일요일이라 일도 적은 지라 '아! 오늘은 일을 못 하겠구나'라고 절망하고 있을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드디어 일자리가 들어온 것이다.

"이씨 아저씨 차례지? 여기 가게 이사하는 데 두 명 와달라고 하는데요. 옆에 총각이랑 같이 온 건가?"

"네 맞아요. 제 조카예요, 둘이 가서 일하고 올게요."

아저씨는 꼭 일을 해야 한다는 나를 배려해서 함께 일을 갈 수 있게 도와줬다.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린 아저씨들도 있어서 눈치가 보였지만, 정말 그 아저씨가 내 삼촌이라도 되는 양 방긋 웃으며 함께 일을 하러 갔다.

'운수 좋은 날' 맞이한 대형사고, 나를 구해 준 아저씨의 거짓말

우리가 간 곳은 서울 시내 한 잡화점의 이사현장이었다. 오늘 마음 맞는 아저씨를 만나서일까? 그 날은 정말 운이 좋았다. 원래 일하려고 한 2명의 사람이 오늘 연락도 없이 펑크를 내서 우리가 땜빵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일을 오전 7시부터 진행하기로 했는데, 우리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어서 기존에 있었던 일꾼들이 일을 절반정도는 해놓은 상태였다. 우리가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짐도 다 싸져 있고 청소도 많이 되어 있어서 우리는 짐을 옮기기고 뒷정리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너무 '운수 좋은 날'이면 비극도 함께 있는 것일까? 운명의 장난처럼 큰 참사가 일어났다. 일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옮길 상자가 몇 개 남지 않아 나는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여러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옮기고 있었다. 유리로 된 액자와 말끔해 보이는 그릇이 담긴 상자가 남았는데 그것들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두 개를 한꺼번에 들어 이동했다. 그 순간, 나는 발을 헛디디면서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와장창!

상자 안에 있는 유리, 그릇들이 깨지는 무서운 소리는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내가 넘어져서 괜찮은지 물으러 왔지만, 나는 내가 아픈 것보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이 얼마짜리일지, 그걸 어떻게 물어내야 할지가 훨씬 더 걱정되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저씨 어떡하죠? 저기 안에 있는 거 엄청 비싼 거겠죠?"

나는 다급해지고 무서워져 떨면서 아저씨에게 횡설수설했다. 그때,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직원과 담소를 나누던 가게 사장이 떨어져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급히 뛰어 왔다.

"뭐야, 이거! 누가 떨어뜨렸어? 일당직(인력사무소 잡부)들이야? 이거 상자 물건 망가졌으면 일당 받기는커녕 물어내야 돼!"

가게 사장은 크게 호통 치며 겁을 줬다. 내가 무서워서 다리를 벌벌 떨고 있는 찰나에 옆에 있는 아저씨가 말했다.

"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헛디뎌서 이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저녁까지 짐 정리하는 거 돕고 하루 더 일하는 걸로 해서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저씨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본인이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둘은 몇 분 동안 대화를 하더니 결국 아저씨가 오늘 저녁에 새로운 가게에 가서 짐정리와 청소를 돕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 짓기로 하였다. 원래 우리의 역할은 짐을 싸서 보내고 원래 가게 자리를 청소하면 끝나는 것이었는데 아저씨는 가게 사장을 따라 늦게까지 일을 추가적으로 더 하기로 한 것이다.

그 후, 일이 끝날 때까지 가게 사장이 우리가 일하는 것을 감시하는 바람에 눈치를 보느라 나는 아저씨와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아저씨의 눈을 계속 쳐다보자 아저씨는 말없이 빙긋 웃어줬다.

그 후로 만나지 못한 아저씨, 찾을 수는 없지만 선행 알려지길

나는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일당을 받아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짧은 손편지를 써서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주말마다 인력사무소를 몇 개월간 더 나갔지만 결국 아저씨를 만날 수 없었다. 인력사무소 직원분께 갈 때마다 아저씨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아마도 아저씨는 새로운 직장에 취직을 했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인력사무소에 안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아저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2002년도 겨울 서울의 왕십리쪽 인력사무소에 나왔다는 사실과 나와 동갑인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 전부다.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맛있는 밥을 한 끼 대접하면서 감사의 큰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도 나는 그 아저씨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통해 그분의 따뜻한 선행이 알려지길 바란다.  


태그:#감동, #인력사무소, #선행, #따뜻한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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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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