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 고개 숙인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결과에 아쉬워하자 보프 더용 코치가 위로하고 있다.

▲ 아쉬움에 고개 숙인 노선영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 박지우와 팀을 이룬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결과에 아쉬워하자 보프 더용 코치가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선영(29·콜핑팀)이 마지막 올림픽에서 또 한번의 깊은 상처와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노선영은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여자 팀추월 부문에 김보름(25·강원시청), 박지우(20·한국체대)와 함께 팀을 이뤄 출전했으나 3분03초76의 기록으로 7위에 그쳤다. 결국 한국은 4위까지 주어지는 준결승행 티켓 확보에 실패했고 폴란드와 7~8위 결정전만 남겨두고 있다.

결과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팀플레이'가 실종된 국가대표팀의 민낯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팀추월(team pursuit)은 400m 레인을 6바퀴(2400m) 돌아 가장 뒤에 있는 선수의 기록을 비교하는 경기 방식이다. 경쟁팀이 상대 주자를 따라잡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 그래서 팀워크가 더욱 중요하다.

나머지 2명이 빨리 들어와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처지는 '약자'를 가장 배려하면서 앞선 동료들이 함께 밀어주고 끌어줘야 하는 종목이 바로 팀추월이다. 다른 단체 종목이나 기록 경기에서도 이런 장면은 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경쟁만이 아니라, '이겨도 함께 이기고, 져도 함께 지는' 공존과 협동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데 팀추월 종목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봤지만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앞줄 왼쪽부터), 박지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기록을 살피고 있다. 그 뒤로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최선을 다해 봤지만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앞줄 왼쪽부터), 박지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기록을 살피고 있다. 그 뒤로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난 팬심에 기름 부은 선수 인터뷰

하지만 이날 여자 팀추월 부문에 나선 한국 여자대표는 정작 제대로 된 '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선영은 이날 레이스 막판 김보름과 박지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큰 격차로 뒤처진 채 레이스를 마쳤다. 그런 팀 동료와 거리가 멀어진 상태로 김보름과 박지우 두 선수만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팀추월에서는 혼자서 뒤처진 주자가 없도록 대형을 유지하고, 순서를 바꿔 가며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경기 중 한국팀의 모습에서는 팀플레이의 기본 전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기록이 문제가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나선 국가대표팀이라는 이름의 무게와는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스케이팅에 문외한인 일반팬들조차 SNS에 '이건 아니다'라는 반응을 쏟아낼 만큼 경악을 금치 못할 장면이었다.

설상가상 김보름과 박지우의 경기 후 인터뷰가 가뜩이나 성난 팬심에 기름을 부었다. 인터뷰에서 김보름은 "중간에 잘 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뒤와 격차가 벌어졌다. 그래서 기록이 아쉽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지우는 "김보름이 팀추월에서 에이스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런데 뒤를 더 못 봤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결과가 아쉬운 여자 팀추월 대표팀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왼쪽부터), 김보름,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결과가 아쉬운 여자 팀추월 대표팀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박지우(왼쪽부터), 김보름, 노선영이 레이스를 마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두 선수는 인터뷰에서 같은 팀원인 노선영의 이름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김보름 선수는 "팀 추월은 선두가 아닌 마지막 선수의 기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안 좋은 기록이 나왔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격차가 벌어진 책임을 노선영에 전가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정작 뒤처지는 선수를 함께 끌어줘야 할 '팀플레이의 기본을 망각한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해명이 없었다.

또한 김보름이 인터뷰를 하면서 실소를 터뜨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본인 스스로 경기 결과에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같은 동료인 노선영이 경기 직후 큰 상실감에 인터뷰까지 거절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상황이라 더욱 논란이 됐다. SNS에서 이 부분에 관해 지적이 쏟아지며 '마지막까지 팀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올림픽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팀워크가 와해된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팬들은 분노했다. 경기 후 성난 팬들의 비난 댓글에 김보름은 결국 자신의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겪은 노선영 선수촌 입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이 4일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수촌에 도착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았다.

▲ 우여곡절 겪은 노선영 선수촌 입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이 4일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수촌에 도착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았다. ⓒ 연합뉴스


'팀워크 파탄' 드러낸 경기, 올림픽에서 반복되지 않으려면...

노선영은 평창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월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어이없는 행정 실수로 4년 동안 준비해온 올림픽 출전이 하루아침에 무산될뻔한 위기도 겪었다. 

당시 노선영은 자신의 SNS에 "빙상연맹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꿈을 짓밟았다"고 성토하며 "더 이상 국가대표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다"면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많은 팬들도 노선영의 상처와 박탈감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다행히 여자 1500m에서 러시아 선수 2명의 출전이 불발되면서 예비 2순위이던 노선영이 출전권을 승계하며 극적으로 월드컵 막차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노선영은 2016년 골육종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노진규(전 쇼트트랙 대표)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노선영은 동생의 몫을 대신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겠다며 각오를 다져 왔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충분한 훈련을 치르지 못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팬들은 노선영을 응원했다. 응원의 이유는 처음부터 메달의 유무를 떠나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에 대한 공감이자,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한 청춘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지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출전한 올림픽은 노선영에게 또 한번 지우기 힘든 상처로 남게 됐다. 노선영은 팀추월 경기 내내 외롭게 혼자 달렸는데, 힘들 때 가장 의지가 되어주어야 할 팀동료들은 경기 이후에도 그의 곁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노선영과 두 선수가 서로 거리를 두고 따로 노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것은 노선영이 대표팀 복귀 후에도 팀 내에서 '왕따'를 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노선영은 지난 1월 <스포츠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10일 월드컵 4차 시기 이후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팀추월 남녀 대표팀은 단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노선영, 다시 훈련가는 길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노선영이 29일 오후 훈련을 위해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으로 복귀, 밥 데 용 코치가 다독이고 있다.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상실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게 됐다.

▲ 노선영, 다시 훈련가는 길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노선영이 29일 오후 훈련을 위해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으로 복귀, 밥 데 용 코치가 다독이고 있다.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상실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게 됐다. ⓒ 연합뉴스


과거에도 빙상연맹에서는 메달획득이 유력한 선수만 별도로 훈련을 시키는 등 특정 파벌 밀어주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노선영 선수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번 '팀추월 참사'는 예고된 비극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단지 특정 선수의 인성 문제를 넘어, 성적지상주의와 '밥그릇 챙기기'로 얼룩진 한국 빙상계의 구조적인 적폐가 여지 없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번 팀추월 경기는 이번 평창올림픽, 나아가 한국 빙상경기 역사상 최악의 장면 중 하나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제갈성렬 SBS해설위원도 경기 후 "팀 추월에서 최악의 모습이 연출되고 말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가 바라는 올림픽, 우리가 응원하고 싶은 국가대표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다. 선수 개인의 인성을 탓하는 것으로 끝내기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훈련 과정에서 특정 선수만 따로 연맹에서 관리하고, 모든 선수가 같이 훈련하지도 못했다는 의혹이 나온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 엄중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가자가 2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인데, 선수의 자격 박탈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 빙상연맹의 시스템 개선에 더욱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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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스케이팅 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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