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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명행이 성추행 논란으로 출연 중인 연극에서 중도하차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윤택 연출가가 과거 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활동을 중단했다. 연극계에서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급속히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사진은 이윤택 연출가(왼쪽)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의 페이스
 연극배우 이명행이 성추행 논란으로 출연 중인 연극에서 중도하차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윤택 연출가가 과거 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활동을 중단했다. 연극계에서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급속히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사진은 이윤택 연출가(왼쪽)와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의 페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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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대부'로 불리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성추행 논란을 인정하고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난 가운데, 설 연휴에도 이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연극계 '미투 운동(성폭력 피해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씨의 성추행 논란은 지난 12일, 유명 연극 연출가가 과거 국립극단의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배우에게 성폭력을 행사했고, 공론화를 원하지 않는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해 국립극단 작품에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보도로부터 시작됐다.

"내가 속한 세상의 왕...안 갈 수 없었다"

김수희 연출가(극단 미인 대표)는 이틀 뒤인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이씨의 행위를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김 대표는 "(이씨가) 국립극단 작업 중 여배우를 성추행했고, 국립 작업을 못 하는 벌 정도에서 조용히 정리됐었다는 기사를 접했다"며 "여전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많이 고민하다 글을 쓰기로 했다"고 썼다. 

김 대표는 "10년도 전의 일이다. 극단 일이 워낙 많고 힘들다 보니 버티는 동기가 거의 없었고, 내가 중간선배쯤 되었을 때"라며 "주로 사무실에서 기획 업무를 많이 했지만, 공연이 많다 보니 나같이 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작품에 투입이 됐었다"고 했다.

이어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같이 짐을 푸는데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밤이었다. 내가 받았고, 전화를 건 이는 연출(이씨)이었다.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며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게 본인의 기분을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있었다"며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자기 성기 가까이 내 손을 가져가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 내 손을 잡고 팬티 아래 성기 주변을 문질렀다"고 폭로했다.

김 대표는 "나는 손을 뺐고, 그에게 '더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방을 나왔고 지방공연을 마치고 무사히 밀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한두 편의 작업을 더 하고 극단을 나왔다"며 "대학로 골목에서,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도망 다녔다. 무섭고 끔찍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선배쯤인 것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맺었다.

"더러운 친절함"..."심하면 새벽 3~4시에도 불러"

김 대표의 용기에 배우 A씨와 B씨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지난 15일, 배우 A씨는 "김수희 연출이 10년 전의 일이라고 밝혔는데 나는 2012년의 일이니 더 최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며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은 이런 목소리를 이제야 내는 미안함과 조용히 사건이 덮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글문을 열었다. 

A씨는 "공연 당일 극장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겠다며 무대 뒤에서 연출과 만났다. 계속 나의 발성에 대해 지적을 하며 소리를 잘 내려면 이곳으로부터 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며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가슴을 만지면서 그것을 마치 대단한 것을 알려주는 양 포장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뿐만이 아니다. 그 이후 스트린드베리의 서거 100주년 기념공연이었던 꿈의 연극을 연습하던 당시의 일이다"라며 "연습할 당시 집중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아주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연극촌에서 연습을 마치면 마을로 돌아가 숙소 생활을 했다. 불행히 나도 그 인원 속에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연극촌으로 연습을 가지 않으면 스튜디오에 모여 따로 연습을 했는데 이것은 끔찍하게도 연출가와 1:1 개인레슨을 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연출가와 단둘이 극장 안에. 그리고 문은 굳게 닫혔다"며 "연습을 빌미로, 나를 특별히 아껴 연습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뒤에서 껴안고,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발성을 하는 위치라며 짚어주던 더러운 친절함"이라고 폭로했다.

A씨는 "내가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을 이렇게 고통받으며 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연극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15일, 배우 B씨가 지난해 3월 1일, 이윤택 연출가에 대해 작성했던 페이스북 비공개 글을 공개했다.
 지난 15일, 배우 B씨가 지난해 3월 1일, 이윤택 연출가에 대해 작성했던 페이스북 비공개 글을 공개했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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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마를 했던 횟수는 아마 50회 정도 되었으리라"

배우 B씨도 지난 15일 "생각과 생각 끝에, 1년 전 이 공간에 올렸던 글을 다시금 공개한다. 용기 내 발화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지난해 3월 1일 작성했던 페이스북 비공개 글을 공개했다.

B씨는 "언젠가 한 집단에 있었다. 그 집단은 그 집단이 속한 영역에서 최고 수준을 구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난 내가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며 "그러나 결단코 자랑스럽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특히나 밤이 내겐 가장 거슬리는 시간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오너의 콜링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꽤 나이가 있었던 그분께선 낮에 쌓였던 피로 때문인지 밤이 되면 안마를 요구했다. 때때로 난 그 요구에 불려 갔고, 그리하여 컴컴한 방에서 어쩔 땐 다른 이와, 어쩔 땐 홀로 1시간가량 안마를 했다. 요구 부위가 상체에서 끝날 때도 있었고, 하체 부위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생식기 주변을 눌러줘야 몸이 풀린다기에 '본의 아니게' 그의 생식기가 손에 닿을 때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B씨는 "안마를 해야 하는 시간은 불규칙했다. 어느 땐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심할 땐 새벽 3~4시 중간에 깨야 할 때도 있었다"며 "으레 그럴 때면 나보다 집단에 더 오래 계셨던 분들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오너의 안마를 네가 해줘야겠다면서. 그 집단에 있는 동안 안마를 했던 횟수는 아마 50회 정도 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15일, 연희단거리패는 페이스북 공식계정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연희단거리패 측은 "이윤택 연출가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죄송하단 말씀 먼저 드린다"며 "이윤택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의 예술감독직에서 모두 물러났다"고 밝혔다.

'성추행 파문' 이윤택은 누구?


'연극계 대부'로 불리는 이윤택 연출가는 1979년 <부산일보> 편집부 기자를 거친 뒤 1986년 고향인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그는 연극공동체인 '연희단거리패'를 만든 뒤 다양한 공연을 연출했다. '산씻김' 등 우리 전통 굿을 소재로 한 실험극으로 주목을 받았고, 1990년대엔 '적벽', '문제적 인간' 등 수많은 히트작으로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에서 수상하며 연극계 대세로 자리잡았다. 2004년엔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았고, 2008년엔 석.박사 학위 없이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임명되면서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극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만든 연희단거리패도 배우 오달수.곽도원.황석정 등 수많은 실력파 배우를 키워 냈다.




태그:#이윤택, #김수희, #연극계, #연희단거리패,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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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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