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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내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갈등하고 불화하는 '위기의 주부' 이야기입니다. 정체성의 혼란과 번뇌를 글로 풀어보며 나의 언어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아이와 두 번째 맞는 겨울이었다. 무사히 넘기나 했더니 기어이 폐렴에 걸렸다. 색색거리는 작은 몸을 내 몸과 합체시켜 견뎌 나갔다. 아이는 나의 돌봄으로 회복해 갔지만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을 보살펴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멀리 사는 친정엄마에게 구호 요청, 엄마도 몸이 성치 않았지만 부를 사람이 없었다. 주방에서 쌀을 씻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볼살과 허벅지 살이 쪽 빠져 핼쑥해진 아이는 할머니와 까불대며 놀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애 키우는 게 행복하지 않아"라고 하소연하자 친정엄마는 "애 엄마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이는 사랑스럽다. 이만큼 자라주어 고맙다. 행복해야 마땅하지만 뼈가 바스러지는 체력 저하와 그만큼의 자존감 붕괴, 자아 상실감은 수시로 찾아 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목구멍까지 답답함이 들어 찼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친정엄마는 말했다.

"나는 더 힘들게 키웠다. 시이모님에 시어머니까지 두 분 수발 들면서. 그래도 키우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남편에게 말하면 피곤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주는 게시판엔 '산후·육아 우울증'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엄마들의 하소연은 치료해야 할 '병'이었다. 선배 엄마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조언을 해 주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때론 이랬다. '너를 힘들게 하는 건 너 자신이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그걸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다들 잘 하는데 왜 나는...' 오래도록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되는 '금기'

인간이라면 온갖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고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따를 수 있는데, 유독 엄마들에겐 엄마라는 이유로 부정적 감정은 일체 느껴서도 간직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온갖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고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따를 수 있는데, 유독 엄마들에겐 엄마라는 이유로 부정적 감정은 일체 느껴서도 간직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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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표정으로 가슴에 젖 물리고, 아기가 잠이 들면 침대 위에 살포시 뉘어 놓고, 책을 읽거나 차 한잔하는 엄마의 모습을 기대한 적 있다. 실제는 이랬다. 떡진 머리카락, 누렇게 뜬 얼굴,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둥개둥개 안고 재우다 허리가 끊어질 거 같아 눕히면 '등 센서' 작동. 아이가 커도 여전한 수면 부족, 외출 준비만 한 시간째 하거나 밥알을 세고 있는 걸 보면 인내심의 극한을 실험 당하고 아이에게 소리 지른다.

욱했다가, 땅 꺼져라 한숨 쉬었다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내가 왜 엄마가 되었을까', '언제쯤 끝이 보일까' 쓰다가 만다. '다른 엄마들은 다 잘 키우는데.' 잠든 아이 모습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하루하루가 새롭다. #나는행복한엄마 #사랑해'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가 쓴 <엄마됨을 후회함>란 제목의 도발적인 연구서엔 나처럼 번뇌하면서도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엄마가 되는 것에 의견이 나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내가 어떤 글을 쓸 때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해석될 듯하면 곧장 다음과 같은 '포기각서'를 붙이고 싶은 고통에 가까운 충동을 느껴요. '포기각서 : 물론 나는 아이들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 더 사랑해요' - <엄마됨을 후회함>, 91쪽(전자책)


최대한 솔직히 육아 일기를 적고 싶었지만, '엄마가 저 모양이니 애가 예민하지, 면역력이 약하지'라고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지독한 하루를 보낸 날이라도 '힘들지만 행복해', 이 말 한마디면 정상 엄마, 좋은 엄마라는 보증표를 단 것 같아 마음 놓였다. 아이를 그저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인 한국에서 애 키우기 어렵다는 목소리들이 매스컴을 통해 공론화되고 있는 요즘. 피부로 접하는 일상에선 엄마로 사는 삶의 축복만이 넘실댄다.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경험'이라며. 엄마 개인이 느끼는 분노, 불안, 불행, 자괴감, 후회는 최대한 드러내선 안 되는 분위기다. 조금이라도 투덜거리면 사람들은 입을 막는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야? 엄마 맞아?'

'아이들을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한다'라는 엄마들의 모순된 정신상태는 인터넷 맘카페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노출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혹시 우리는 엄마가 되는 순간 '침묵 서약'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자기 기대, 책으로 습득한 지식, 몸으로 한 경험 사이의 간극과 혼란을 싹 덮은 채, 외부적으로는 엄마에게 기대되는 바람직한 감정과 표현만을 하겠다는 약속.

결국 우리가 육아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그렇게 보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만 해도 '훌륭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리 한번 지르지 않는 인내심, 정성을 들인 엄마표 반찬과 간식, 미디어 노출 금지, 발달 자극을 위한 놀이와 다양한 체험, 매일 책 읽어주기, 조바심을 내지 않으면서 뒤처지지도 않도록 이끌어주기, 친구 같은 엄마이면서 권위 잃지 않기, 친구들을 배려하며 사랑받고 자란 티도 팍팍나게 키우는 모든 것이 해당되었다.

좋은 엄마는 타인에 의해 인정받기에도 스스로 만족하기에도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당신은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라고 듣기를 갈구했지만 말해주어도 믿지 못했고, 자기 검열과 고찰을 반복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다름 아닌 '표현력'이었다. 아이에 대한 애정,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을 표출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내면화 노력, 지속적인 표현, 타인의 칭찬이 더해질 때 좋은 엄마라는 판타지는 유지될 수 있었다.

<엄마됨을 후회함>의 저자 오나 도나스는 엄마들이 자신의 감정이 손상되지 않았음을 주변에 보여 주어야 하고, "사랑의 감정과 표현이 항상 들려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후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

좋은 엄마. 타인에 의해 인정받기에도 스스로 만족하기에도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좋은 엄마. 타인에 의해 인정받기에도 스스로 만족하기에도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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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 프레임은 죄책감과 함께 작동한다.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아이도 그대로 느낀다'라는 말은 부정적 감정을 간직하거나 표출하는 것을 단속하게 했다. 아이가 자주 아프고, 떼를 많이 쓰고, 발달이 늦어도 치밀하면서 여유롭고 차분하면서도 명랑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한 엄마 탓이라고 하니까 늘 안정된 감정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탓에 아이에게 소리 한번 질러도 애착장애가 생길까 걱정한다.

하지만 양육의 고통과 희열이 뒤섞인 양가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아이를 학대, 방치할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엄마 역할에 대해 끝없이 내적 갈등을 겪더라도 아이들을 착실히 돌볼 수 있다. 나 역시 어쩌다 엄마가 되었나 한탄하지만 아이를 사랑한다.

'엄마됨을 후회함'은 '자식을 후회함'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엄마로 사는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아이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육아의 기쁨과 고통이 나란히 가듯이 엄마됨의 후회와 자식에 대한 사랑 역시 평행한다.

"나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와 깊은 유대감을 느껴요. (중략) 후회는 아이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다만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중략) 나에게는 부모의 역할이 이성적이지도, 적합치도, 맞지도 않는 선택이었어요. 그건 내가 엄마가 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와 엄마 자리는 맞지 않아요." '데브라(10~15세 자녀 2명)'의 인터뷰' - <엄마됨을 후회함> 142쪽(전자책)


아이를 사랑하지만, 엄마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역할과 부담, 희생, 기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끊임없는 걱정, 간섭과 배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자식이 사라진다 해도 엄마라는 변함없는 진실, 세상에 내놓은 한 존재에 대해 평생토록 감당해야 할 짐이 엄마됨을 후회하게 한다.

인간이라면 온갖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고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따를 수 있는데, 유독 엄마들에겐 엄마라는 이유로 부정적 감정은 일절 느껴서도 간직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숨어서 죄인처럼 고백해야 한다. 죄책감과 우울감은 이 지점에서 증폭된다. 감정을 부인하면서 나만 비정상이라고 느끼면서.

엄마들은 속세를 떠나 도를 닦는 수도자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스스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의식주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 주고 채워 줘야 하지만, 그게 엄마가 '무결점'으로 '전지전능'해야 할 의무를 말해 주진 못한다.

회사원이 회사에 다니며 겪는 분노, 억울함, 상사나 동료에 대한 불만, 직업에 대한 후회를 이야기한다고 '일할 자격 없다'라거나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엄마로서의 삶을 '역할'이 아닌 '관계'로 보자고 제안한다. 역할로서의 삶은 '좋은 엄마, 혹은 완벽한 엄마'라는 단일한 시나리오밖에 없다. 그러나 특정 개인 사이의 관계로 보면 역동적이고 폭넓은 가능성 위에 놓인다. 엄마가 아이에게 영향을 주듯 아이 역시 엄마에게 영향을 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와 같은 누군가가 들을 수 있도록 

혹시나 어느 엄마가 나처럼 헤맨다면 들려주고 싶다. 엄마라고 언제나 행복할 수 없다고, 우울할 수 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숨어 있지 말자고.
 혹시나 어느 엄마가 나처럼 헤맨다면 들려주고 싶다. 엄마라고 언제나 행복할 수 없다고, 우울할 수 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숨어 있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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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역할에 몸서리칠 때마다, 내 안에 끓어오르던 죄책감, 회의, 후회, 자멸감을 투명하게 바라보면서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었다. 억압하고 거부할수록 뒤틀렸다. 인간이기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걸 인정하고 발화하기로 했다.

때론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말로 혹은 글로. 무겁게 옭아매던 후회와 그에 따른 죄책감은 자기 언어를 찾아가며 분해되었고 선명해졌다. 아이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도망가지 않을 수 있던 아이러니.

엄마라는 정체성은 나의 많은 정체성 중 일부일 뿐이며 관계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갈 때, 비로소 '엄마가 되어버린 나'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나란 존재가 엄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가 엄마일 뿐이다. 후회 역시 감정의 일부이다.

"아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다."
"좋은 엄마가 될 필요 없다. 어떤 기준을 만들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행복만큼 불행이 평행선을 달릴 때 누군가 이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듣지 못했던 말. 혹시나 어느 엄마가 나처럼 헤맨다면 들려주고 싶다. 엄마라고 언제나 행복할 수 없다고, 우울할 수 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숨어 있지 말자고. 익명 게시판에서 나오고, 비밀 일기장에서 나오고, 어두운 방에서 나와서 같이 떠들자고. 나와 같은 누군가가 들을 수 있도록.

"고통을 당하지 않고자 기꺼이 논쟁에 휘말리는 여성과 엄마들은 언젠가, 어떻게든, 무언가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럴 만하다." (오나 도나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중복게재했습니다.



태그:#엄마됨을후회함, #모성애, #엄마,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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