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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가 연일 관심거리다. 지난 1일 김정은의 신년사가 신호탄이었다. 이번 올림픽을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그는 아낌없는 지원과 선수단, 응원단 파견을 시사했다. 메시지는 강렬했고,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지난 9일 통일부는 2년여 년 만에 북한 당국자와 머리를 맞댔다. 실무협의까지 열며 북한의 올림픽 참가 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단일팀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선수들에게 단일팀에 대한 의견을 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결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러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는 우리가 세계랭킹 22위, 북한이 25위로 메달권 밖"이라는 취지로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어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항의 서한을 IOC에 제출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북측 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전체 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9일 오전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북측 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전체 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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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볼 점은 단일팀에 대한 여론의 향방이다. 특히 2030세대들이 단단히 뿔났다. 취업 준비로 바쁜 삶을 보내는 청년들은 '남북 단일팀이 스포츠의 공정한 룰을 위반하는 일이며 북한 선수들은 정부의 낙하산'이라고 비판했다. 프로팀이 전무한 데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올림픽 출전 하나만을 보고 수년을 고생했다는 대표팀의 스토리가 전해지자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다. 국회의장실과 SBS가 의뢰하고 한국리서치가 9일과 10일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20대 중 남북단일팀 구성에 찬성하는 사람은 16.4%, 반대하는 사람은 82.2%였다. 10명 중 8명은 이번 단일팀 결정에 반대한 꼴이다. 반면, 60대 이상 중 찬성은 31.7%, 반대 67.1%로 나와 대조를 이뤘다.

남북단일팀에 대한 젊은층의 의견이 부정적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조차 지난 22일 "20~30대가 굉장히 민감히 반응하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2018년 1월 22일 <뉴시스> 靑 "남북단일팀에 2030 민감 반응 예상 못했다"). 반발심리가 큰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구호와 배치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가 소수자를 배려하고, 공정한 룰을 중요하게 여길 줄은 알았지만 정책결정의 오판이 큰 화를 자초한 것이다. 

2030세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북한을 사뭇 다른 존재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북한과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데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핵·미사일 위협 등이 더해져 좋은 기억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9년 간 대북정책을 편 보수 정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군사안보 위협이 고조된 상황에서 제재와 압박은 북한을 더욱 고립시켰고, 독재국가로 표상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 결과 젊은층에게 북한은 심리적 거리는 물론 통일의 대상과도 서서히 멀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2030세대, 북한 '적대대상' 인식 커

표면적으론 단일팀에 대한 젊은층의 반발로 보이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불신은 훨씬 깊어 보인다.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3월 펴낸 <2017 남북통합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보면, 젊은층의 남북통합 수치는 다른 연령대보다 매우 낮았다. 그 해 3월 21일부터 4월 14일까지 전국 16개시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57.8%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42.2%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필요하다'라는 응답은 2016년(62.1%) 대비 4.3%p, 2014년(69.3%) 대비 11.5%p 하락한 것으로 2014년 조사 이후 계속 떨어졌다. 이 가운데 20대는 남북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28.8%로 모든 계층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원은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답변 항목을 '지원대상', '협력대상', '경계대상', '적대대상' 으로 구분해 11점 척도(0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 10점: 매우 동의한다)에 따라 응답하도록 했다.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지에 대해 '경계대상'이라는 응답이 6.55점으로 가장 높았고, '적대대상'(5.96점), '협력대상'(4.89점)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경계대상' 응답은 2014년 이후 1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2016년 대비 북한을 지원과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수치는 하락세가 뚜렷했다. '지원대상'의 경우 2016년 대비 0.71점 하락했으며, '협력대상'으로 인식하는 정도는 0.36점으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20~30대의 북한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었다. 이들은 북한을 '지원대상'과 '협력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다른 연령대보다 현저히 떨어졌고, '경계대상'과 '적대대상'으로 여기는 수치는 높게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이념의 주요 결정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결과는 의미가 크다. 2030세대가 북한에 적대적 인식을 가지면서 점차 보수화되고 있지 않냐는 지적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서다. 특히 이들이 향후 정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리더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남북통합과 통일정책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최근 불거진 단일팀 논란은 2030세대의 대북한 인식이 어떠한지 여실히 드러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싫다고 보수는 아냐

그러나 북한에 적대적 인식을 보인 2030세대가 대체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 2016년 치러진 20대 총선 결과를 분석한 김정훈·한상익 연구팀은 <신화의 붕괴, 그리고 희망의 정치>라는 논문에서 "2040세대의 야권 성향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그 이전의 세대와 달리 민주주의와 탈권위주의적 정보화 시대에 젊은 시기에 보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2016년 '4·13총선 투표율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의 투표율은 다른 연령대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후반(25∼29세)의 총선 투표율은 49.8%로 19대 선거보다 11.9%p 올랐다. 20대 전반(20∼24세)이 55.3%로 9.9%p, 30대 전반이 48.9%로 7.1%p 올랐다. 반면, 50대는 19대 62.4%에서 20대 60.8%로 줄었고, 60대 이상의 경우 68.6%에서 68.7%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분노투표'로 설명했다. 분노투표는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붕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사회로의 전환과 연관된 세계적인 현상으로 2040세대의 공통적인 특징은 불평등 심화로 기성 정치권을 극도로 불신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20대 총선 결과는 보수정권 8년의 간 누적된 분노를 타파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언론의 사회면을 뒤덮은 '헬조선'과 '수저계급론' 등은 청년세대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정부가 낡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복하거나 심지어 권위주의적 산업화 시기의 관행이 젊은 세대의 불신을 받는 데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생존욕구가 만들어낸 현실적 선택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남여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남여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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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 논란으로 불거진 젊은층의 반대 여론은 그래서 단순히 이념성향이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보기보다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라는 논문에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늘날 젊은 층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토는 '생존(survival)'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청년들이 각자도생의 전략을 세우고,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를 꿈꾸는 자들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생존이 급선무가 된 행위자들에게는, '생존주의'를 마음으로부터 구성해 나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선택이다"고 지적했다. 생존주의는 삶의 곤경에 직면한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고투 속에서 형성된 집합심리다. 

실제로 1997년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변동은 청년들이 해결해야 하는 다양한 문제의 위계와 배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단단한 마음가짐과 넉넉한 자원, 전략적 행위들이 필요해졌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존의 욕구차원으로 여기는 젊은층은 과감 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경향이 크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확인했듯 이들은 자신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 집권세력을 투표로서 응징(?)하는 데 힘을 보탰다.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젊은층이 대체적으로 사회개혁을 원하는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그렇다고 현 정부의 실책까지 감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일팀 반대 여론처럼 사회가 공정하지 않고, 소통부재로 정책혼선이 빗어질 경우 얼마든 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너무 당연하리라 여겼던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됐고. 고차 방정식의 북한 문제까지 풀어야 하는 정부는 더욱 큰 숙제를 안은 셈이다.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줄 거라 생각했던 오만은 경계해야한다. 2030세대는 기성세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태그:#남북단일팀, #평창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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