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뉴스룸>은 이 문제를 주제로 긴급토론을 열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뉴스룸>은 이 문제를 주제로 긴급토론을 열었다.
ⓒ JTBC

관련사진보기


지난 18일 제이티비씨(JTBC)의 긴급토론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을 보았다. 방송을 시청하기 전,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찬성 측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로부터 '암호화폐 희망론'의 근거를 들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최소한 '암호화폐의 미래'를 말하려면 관련기술의 한계와 극복 방안 정도는 공부하고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재승 교수가 "블록체인 생태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암호화폐가 필요하다"면서 '페이스북'과 '싸이월드 도토리'를 예를 드는 순간 모든 기대를 접어야 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만약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라면 3~5년 후 '페이스북 코인'이라는 것을 만들겠다. 그래서 '좋아요' 1000번 이상 받은 글을 쓴 사람에게 그 코인을 준다. 그러면 양질의 글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올 것이고, 그것이 광고효과를 높일 거고, 그래서 페이스북 코인을 가진 사람은 아마존 코인과 바꿔서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수 있고, 월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는 가상화폐의 미래는커녕, 소셜미디어를 움직이는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의 현실마저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 아무런 경제적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글을 올리게 만든 뒤, 그것을 독점해 경제적 이득으로 맞바꾼 데 있다.

금전적 보상 없이도, 페이스북에는 글, 사진, 비디오를 올리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돈을 받기는 커녕, 돈을 내면서까지 '좋아요'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웹사이트에는 돈을 받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업체들이 꽤 있다.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 없이 글, 사진, 영상을 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심지어 돈을 내면서까지 '좋아요'를 눌러주는 대행서비스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 없이 글, 사진, 영상을 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심지어 돈을 내면서까지 '좋아요'를 눌러주는 대행서비스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좋아요' 수가 '양질의 글'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내가 알고, 정재승 교수가 알고, 저커버그가 안다. 돈을 주면 상황이 나아질까. 오래전 보상체계를 도입한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대다수는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영상을 올리지만, 보상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1인 방송은 선정성, 폭력, 혐오로 오염되기 일쑤다. 최근 논란이 된 '자살자 시신 영상'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현실의 실물경제에서는 금전적 보상이 더 나은 상품과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의 주목경제는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르다. 금전적 보상 없이 잘 돌아가기도 하고, 보상을 해도 잘 돌아가지 않기도 하며, 잘 돌아가던 생태계가 보상체계를 도입한 뒤 망가지기도 한다.

'블록체인'과 유사한 탈집중 프로토콜이 이미 구현된 사례로 '냅스터'와 '토렌트' 등의 무료 파일 공유 서비스를 들 수 있다. 비록 저작권 침해라는 벽 때문에 기업에 매각되거나 '음지'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사용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기꺼이 파일을 공유했다. '공유' 자체가 충분한 상호보상의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경제적 보상이 인터넷 생태계를 움직이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전제의 오류를 말해준다. 예컨대 이 글을 쓰는 나조차 돈을 벌 목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한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기술적 측면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워낙 빨리 변화하는 분야이다 보니, 전문가라 해도 변화상을 수시로 파악하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갖기 쉽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분화되기 시작한 지 오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 제안한 '공개형 블록체인'은 대중 모두에게 열린 개방체계이면서, 대중들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체계'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인 '채굴'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를 통한 보상이다.

문제는 이 체계가 심각한 비효율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이 가운데 단 하나에게 임무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참여자들을 경쟁시켜야 하는데, 복잡한 '퀴즈'를 가장 빨리 푸는 이에게 우선권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약을 승인하는 (즉 '블록'을 생산하는) 주임무는 손쉬운 반면, 그것을 따내기 위한 '퀴즈 풀이'라는 부업무는 대단히 어렵다. 이 연산문제는 강력 컴퓨터가 10분 가량을 '열나게' 가동시켜야 겨우 풀 수 있을만큼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작업에 보상을 하는 게 아니라, 퀴즈를 푸는 데 보상하는 기형적이고 비생산적 형태가 되어 버렸다(대학교육보다 '입시' 자체에 목을 매는 한국의 교육제도와 닮은꼴이다).

우선권이 강력한 컴퓨터 소유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퀴즈'보다는 '몸싸움'이라는 비유가 더 정확하다. 다소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1+2=3"이 맞는지 확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고 하면서, '전국민 씨름 경연대회'를 열어 최후승자를 가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천하장사'는 모두를 물리친 뒤, 채점을 하고 '암호화폐' 하나를 받게 된다.

이로써 임무는 완료되고 보상도 주어졌지만, 이 작업 배분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비트코인이 생산되는데 필요한 전기량은 약 250㎾h(킬로와트시)이며, 이 대부분이 무의미한 퀴즈풀이에 사용된다. 2017년 11월 서울시의 가구당 평균 전력사용량이 213.27㎾h였다. 비트코인 하나에 투여될 전기로 한 가족이 한 달을 쓰고도 남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전기효율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무어의 법칙' 등을 말하며 처리장치의 성능과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낙관할지 모르나, 하드웨어는 실리콘 원자의 크기 제약으로 인해 집적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참여자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에너지 소비는 늘어난다.

전력 사용량 증가추이를 보아도 알 수 있듯, 비트코인의 비효율은 하드웨어 성능개선 속도를 간단히 넘어선다. 그 결과 '채굴자'들은 한 해 동안 저개발국가나 소규모 국가 160개국을 모두 더한 것과 맞먹을 만큼 막대한 전기를 썼다. 이는 비트코인의 지속가능성을 회의하게 만든다.

지난 한 해동안 비트코인의 전기사용량 증가 추이
 지난 한 해동안 비트코인의 전기사용량 증가 추이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근거도 없고 모순적인 '비트코인 낙관론'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혹은 그들이) 쓴 2008년 논문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선하다. 가장 뛰어난 점은 '못 믿을 대중'에게 일을 맡기면서도 '보상'과 '비용'의 당근과 채찍으로 부정행위를 막아낼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비록 간단한 제안서 형태로 되어 있었으나, 이 논문은 가능한 여러 문제에 대한 치밀한 대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예컨대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문제나, 블록체인이 유통되면서 용량이 늘어나는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하나의 블록은 80바이트이고, 한 거래당 10분이 걸리기 때문에 1년간 유통되면 4.2메가바이트로 늘어나게 된다. 논문은 용량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해서 용량을 줄일지도 제시해 두고 있다.

반면, 놓치고 있는 점도 명확하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은 고민한 반면,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사용량이나 경쟁으로 인한 비효율의 증가도 고려하지 않았다.

나카모토는 사람들이 일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해서 채굴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시 말해, 컴퓨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람들은 강력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갖춘 게임 전용 컴퓨터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아예 채굴전용 장비인 '에이식(ASIC)'을 사용한다.

현재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용장비 '에이식.'
 현재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용장비 '에이식.'
ⓒ 앤트마이너

관련사진보기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컴퓨터에 채굴 소프트웨어를 깔아놓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 봐야 전기세도 못 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값비싼 전용장비를 구입해서 가동한다 해도 큰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비가 뿜어내는 소음과 열을 견딘다 해도, 수백 대 장비를 연결해 가동하는 채굴공장('풀')을 상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풀'에 가담해서 공동채굴을 하는 게 가능성이 높지만, 수익은 참여자 수만큼 분할되고 수수료도 지불해야 한다. 이조차 시간이 갈수록 기대수익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결국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공개형 블록체인의 '개방성' 자체가 허구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

'개방'으로 '집중'을 꾀하는 모순

게다가 개방형 블록체인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대규모 거래에서 에러나 범죄가 발생할 경우 책임질 당사자가 없는 것이다. 그로인해 기업, 금융기관, 정부의 활용 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비엠 등의 대다수 기업이 암호화폐를 제거하고 참여자를 믿을만한 대상으로 제한하는 '허가형 블록체인'으로 돌아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업이 선호하는 '허가형 블록체인'이 '공개형 블록체인'보다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갈 것이다. 화폐형 블록체인은 본래의 기원, 즉 인터넷의 개방성을 넓히는 '사이퍼펑크' 운동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1월 4일 "가상화폐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개형 블록체인이 페이스북의 폐쇄구조를 허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구글이 페이스북에 위기감을 느끼듯, 저커버그가 공개형 블록체인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구글이나 네이버, 아마존 같은 서비스는 만들지 못하고 회사 인트라넷 게시판, 전자 결재 시스템만 쓰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 등 강력한 규제 방침을 밝힌 뒤, 김진화 한국 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가 반발하며 한 말이다. 이 주장은 '파일공유를 탄압하면 세계적 방송사나 음반사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태그:#비트코인, #블록체인, #정재승, #김진화, #암호화폐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