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풀라이프

ⓒ (주)안다미로


지상과 천국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에서 영원히 머물 한 순간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원더풀라이프>가 4일 재개봉했다. <원더풀라이프>는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998년 작품이다.

 

월요일 어느 대합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앉아 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지만 앳된 얼굴들도 섞여있다. 담당자가 면접실 앞에서 차례로 번호를 호명한다. 대기하는 이들은 자신의 번호가 호명이 되면 면접을 보러 방으로 들어간다.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은 생년월일이다. 이후 면접관은 맞은 편의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대합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망자, 죽은 사람이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그 곳은 이승에서 천국으로 가기 전의 경계적 공간인 '림보'다.

 
 
 영화 원더풀라이프

ⓒ (주)안다미로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망자들은 가볍게 웃으며 유감을 표하는 인사를 받는다. 면접관들은 망자들에게 몇 가지 항목을 확인한 후 이 곳의 목적과 직결되는 질문 하나를 건넨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딱 하나만 선택해주세요. 여러분이 선택한 추억은 저희가 영상으로 재현해드립니다. 그 추억이 여러분께 선명히 되살아나는 순간 그 기억만을 갖고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림보에서 머무는 기간은 단 일주일. 금요일에 영화가 제작되니 고민할 시간은 이보다 더 짧다. 망자들은 각자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선택해 림보의 면접관이자 영화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한다. 거침없이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을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치로 와타나베(나이토 타케토시 분)와 이세야 유스케(이세야 유스케 분)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치로 와타나베는 무난한 어린시절을 거쳐, 무난한 회사원이 되어 무난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 그는 걸출한 구석이 없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한 어느 부분을 택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는 림보 직원들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한 순간을 택할 수 있었다.

 

이세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선택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의도적으로 안 하려 했다. 어느 행복한 순간을 택하는 순간, 자신의 다른 부분의 삶은 지워져버리는 과정 자체에 순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삶보다 차라리 꿈의 내용을 영화로 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엉뚱함을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순간에 삶을 마감한 자들은 다같이 림보라는 동일한 공간에 왔지만, 서로 다른 태도로 질문에 답했다.

 

이 영화는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삶을 되돌아보고 고심하는 과정만 담은 것이 아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 즉 림보 직원들의 마음의 변화도 함께 담았다. 림보의 직원들은 죽었으나 천국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림보에 남아 있는 그들 또한 망자들과 소통하며 심적 변화를 겪는다. <원더풀라이프>는 이렇듯 추억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 하는 영화가 아니라 각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깨달음을 얻는 현재를 그린 작품이다.

 

감독은 연출에서도 이러한 의도를 드러냈다. 림보에 막 도착한 사람들, 즉 자신의 영화 거리를 찾아야 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하던 극 중반까지는 다큐멘터리적인 구도로 인물들을 담아냈다. 고정된 카메라로 상반신을 클로즈업해서 잡는 식으로, 제3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직원 중 한 인물의 심경변화를 드러내기 위해 극영화적인 앵글을 사용했다. 면접관과 피면접자를 화면에 같이 잡는 등 의도적으로 직원들을 평면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사건을 통해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인물임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 원더풀라이프

ⓒ (주)안다미로

 

영화의 주요 인물은 그들뿐만이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관객들까지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뜸을 들이는 데 천재적이다. 림보의 직원 시오리 사토나카(오다 에리카 분)이 엄마 자궁 안에서의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잠수를 하는 장면이나 면접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앉을 의자들에 꽤 오랜 시간 시선을 둔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도 멍하니 자기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틈을 주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면 결국 관객들까지도 림보의 의자에 앉아 가장 소중한 기억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가장 행복한 기억을 고르는 것은 사실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일이다. 나머지 기억과 사람들이 지워진다 하더라도 간직하고 싶은 중요한 가치를 꼽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승으로 가는 경계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다룬 영화를 선물 받는다는 설정은 영화에 대한 존재가치를 생각하게도 만든다. 사실을 바탕으로 할 지라도 세트장에서 펼치는 연기에 불과한 영화. 하지만 감상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려주는 실제적인 존재로서 기능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를 탐색해 보라는 과제를 주는 동시에 감독 자신도 영화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중요한 과제를 해나간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운명처럼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고 했다. 그가 영화를 업으로 삼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림보의 의자에 앉을 우리 모두에게 <원더풀라이프>는 묻는다. 가장 소중한 기억을, 주변 사람들의 가치를, 영화의 역할을, 우리의 삶의 본질을.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20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우리 앞에 운명처럼 다가온 <원더풀라이프>. 림보까지 안 가도 좋다. 가까운 영화관 좌석에 앉아 소중한것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영화 원더풀라이프 고레에다히로카즈 재개봉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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