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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또 한번 퇴사를 하였다. 이력서에 하나의 사항이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6살 난 아들이 아랫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생겼던 게 벌써 작년이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랫 입술 밑 턱 주변이 거무스르하게 변할 정도로 빨아대는 아이가 보였다.

친정 엄마는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비슷한 케이스를 들며, 욕구 불만이 있는 아이들이 그렇다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건넸다.

생뚱맞지만 나는 거무튀튀하게 멍든 아들의 입술을 보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마음 속 한구석 상처가 해소되지 않아 도리어 아들을 아프게 하는 가시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렇게 취업하기 힘든 이 시기에 또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며칠은 해가 중천인데 집에 있는 것이 무척 신났다. 마치 학교 땡땡이를 치고 놀러나온 아이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달이 지났을쯤 몸이 무거워지고 전반적으로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퇴사를 하고 집에서 아이를 맞이하며 그 뭔지 모르는 욕구 불만을 해소해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입술을 빨아댔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나가지 않고 좀비놀이를 하다
▲ 무기력증에 빠진 발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나가지 않고 좀비놀이를 하다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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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하루종일 집밖으로 한걸음도 안 내딛는 중증 무기력증으로 진화할 때쯤, 기적처럼 오래전 직장 동료였던 분이 부모교육모임인 '삐삐앤루팡' 워크숍에 참가해보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이성의 한 자락이 더 이상 '고시원 좀비'처럼 변해가면 안 된다며 경고를 쉴새 없이 울리던 절묘한 시점에 받은 제안이었다. 마음은 결코 내키지 않았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고 수락했던 게 벌써 5개월 전이다.

일주일에 한 번 아티스트웨이 도반들을 만나러 가는 길
▲ 아티스트웨이 가는 길 일주일에 한 번 아티스트웨이 도반들을 만나러 가는 길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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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워크숍 동안 나는 내가 겪어냈던 무기력증을 똑같이 겪어냈던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를 기본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눴다.

6주 동안 진행되었던 부모 교육 워크숍을 끝내고 과정을 함께 했던 도반들과 함께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교재로 삼아 12주간 진행하는 워크숍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전세 난민인 관계로 2년 마다 이사가기 전, 짐 정리를 하며 예전 20대 초반까지 썼던 일기를 읽곤 한다. 일기 속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면서 색다른 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구나 하며 과거의 나를 낯설게 느껴볼 수도 있다. 다시 일기를 써야지 하면서도 일정을 적는 것 외에 노트에 미주알 고주알 적어내려가는 게 영 어색하기만 하던 워킹맘이 나였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간혹 가다 사그라지는 기억의 보완책으로 책 서평을 쓰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타인을 의식하기 마련이었다. 정중하지만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 서평을 쓰는 것 말고, 나만 볼 수 있는 이야기 혹은 내가 나를 향해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진솔하지만 거리낌 없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옛말처럼 '아티스트웨이'를 통해 '모닝페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제발 알고 싶다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이제는 제발 알고 싶다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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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페이지'란 식구들이 미처 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잠도 미처 깨지 못한 상태로 사이즈 상관 없이 아무 노트나 3페이지를 적어 내려가는 행위다. 초반 며칠은 3페이지 채우는 게 너무 힘들어 "쓸 게 없네" 혹은 "할 말이 없다"를 반복하여 간신히 3페이지를 채운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이 행위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이 어찌나 들던지.

마의 구간인 3주 정도를 넘겼을 때 즈음, 나는 나의 욕구의 흐름을 또렷이 써내려 가고 있었다. 의식의 흐름에 집중하고 그대로 끄적이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내면 깊숙이 또아리 치고 있던 것들이 글로 표현되고 있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와 결혼했었던 그러나 지금은 이혼한 여성 영화 감독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으로 약 12주간 워크샵을 진행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는 모닝페이지를 강행했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와 결혼했었던 그러나 지금은 이혼한 여성 영화 감독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으로 약 12주간 워크샵을 진행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는 모닝페이지를 강행했었다.
ⓒ Artem Apukh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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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발견이라는 단어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지하는 것보다 무시하고 사는 편이 더 편한 듯하여 의도적으로 뭉개고 있었던 것들이 드러난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질 걱정에 무리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고 싶다. 그렇다고 나를 너무 값싸게 후려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의 자연스러운 나다움을 회복하고 싶다며 오늘도 끊임 없이 휘갈겨 쓴다.


태그:#삐삐앤루팡, #아티스트웨이, #모닝페이지,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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