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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있는 공동체 마을 '오로빌(Auroville)'(*기사 하단 설명 참조)의 목표는 풍족한 생활이 아니다. 말하자면 '적정 생활'이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적정 기술 등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한다. 인도 정부와 공동으로 세운 지구연구소 등을 통해 기존 벽돌의 1/3도 들지 않는 에너지로 벽돌을 만드는 장치와 기술을 갖고 있다.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배출도 최소화한다. 이밖에도 각종 친환경 기술을 자발적으로 개발한다. 하수 부유물을 침전시키고 산소를 투입해 농공업 용수로 쓰는 정수 장치 등 다양한 장비와 장치 등이 있다. 특히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솔라 키친'을 통해 1300명분 식사를 매일 공급한다. 솔라 키친 지붕 위에는 지름 15m 반구가 있는데 햇빛을 모아 물을 끓이고, 이때 나온 수증기로 음식을 조리한다. 이와 같이 필요한 에너지를 자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정하게 사용하는 게 이들의 생활 방식이다.

시중에 많이 판매되는 휘게라이프, 라곰 책들
 시중에 많이 판매되는 휘게라이프, 라곰 책들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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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미국과 유럽 등에서 그들이 오랫동안 일군 생활 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열쇠 말이 한국에도 자주 회자됐다. 킨포크*, 욜로*, 휘게*, 라곰*, 오캄* 등이 그것이다. 소박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나 적절하고 균형 잡힌 삶 등을 뜻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책을 비롯해 각종 상품, 패션, 식품, 카드, 여행, 서비스 등의 형태로 알려졌다. 문제는 한국에선 철학이나 '라이프' 등은 쏙 뺀 채 '스타일'로서만 소비됐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서 받아들이기보다 트렌드로 받아들인 결과다.

한국이 '헬조선'인 이유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통계나 기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입에 '열심히'라는 말을 붙인 채 그야말로 치열하고 '빡세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한국 인민들은 취업난과 경기침체 등에 지쳐가고 있다. 또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공동체나 이웃은 없고 집단(이기주의)만 남았다.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각자위정(各自爲政·저마다 멋대로 행동함으로써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됐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미 익숙해졌다. 자발적으로 지옥을 임대한 사회에서 삶과 생활의 선택지는 넓지 않다. 돈(물신)과 소비에 길들여진 생활이 선택하는 것은 고작 '탕진잼' '홧김비용' 등이다. 크진 않으나 소소한 금액의 일시적인 '감정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감정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이자 몰핀에 불과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그렇다고 그런 방법을 택한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복지 등 제도적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제도권 교육 등을 통해 배운 삶의 선택지도 획일적이다. 또 회사 생활(혹은 일을 한다는 것)도 개별성이나 특수성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회사 생활은 '탈아(奪我 혹은 脫我)'의 연속이다. 나를 죽이고 회사와 강제로 혼연일체 해야 하는 것도 구조적인 문제다. '일중독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적당포럼, '적당히 살기'를 위하여

적당포럼 중인 현장1
 적당포럼 중인 현장1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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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적당포럼'은 소소하지만 다양한 삶과 생활의 선택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이다. 우리 삶(생활)은 하나의 궤도(궤적)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즉 어떤 나이가 됐을 때 해야 하는 것이 정해지거나 삶의 방식이 획일적인 사회는 개별성과 특수성을 지우기에 모두에게 불행하다. 정해진 자원과 가치에 득달 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편'이나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적당포럼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적당히 살기'를 실천하는 시도나 실험을 만나는 것은 소중하다. '다르게 살기'를 상상할 수 있고 내게 맞는 삶의 옷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혹은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와 같은 생각은 중요하다. 나는 적당포럼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막연히 가진 귀촌 생활에 대한 환상을 접고 도시와 시골이라는 이분법을 버렸다. 반드시 귀촌·귀농이 아니어도 내가 사는 도시에서 생산과 자립이 가능한 삶을 가꿀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냉장고라는 이기가 없을 때의 생활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삶(생활)을 바꿀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적당포럼에 참여한 사람들도 당장의 변화가 아니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가능성을 조금씩 내보인 적당포럼은 우선 '적당'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를 조금씩 풀어 가면 좋겠다. 적당포럼에 대해 썼던 글(관련기사: "고생 끝에 병이 온다" 적당히 살고 싶은 사람들)에서 얘기했듯이, '대충'이 아닌 '정도에 알맞은', '적절한' 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주면 좋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힘들다고 느끼는 것에는 '가치 일치적 행동(삶)'을 하지 않기 때문도 있다. 자신의 깜냥이나 그릇, 한계 등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에는 삶이든 노동이든 자기 결정권을 가질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물론 제도가 뒷받침한 덕분도 섞여 있다.)

따라서 이후 적당포럼에서는 다양한 '적당히 살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가치 일치적인 사람(삶)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곁들여지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가치 추구 질문을 던지면서 '심층 행동'(내 가치에 일치하는 감정과 행동을 하는 것·'표면 행동'의 반대말)을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같은 것 말이다.

'멋지게 살기'의 장, 적당포럼

삶(생활)의 전환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우연의 누적과 필연의 축적이 변화를 가져온다. 쌓이고 쌓여서 물이 넘칠 때, 나도 모르게 생활이 바뀌고 삶이 변화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시쳇말로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추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이에 적당포럼은 '적당히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 왜 소중한지 알려주면서 다양한 사람이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적당포럼은 그야말로 '적당히 살기'의 용감한 개척자들을 통해 나(우리)와 사회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장이어야 한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고 축적되는 장으로서 적당포럼이 자리매김하면 어떨까.

적당포럼 중 안내판
 적당포럼 중 안내판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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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두 시간으로 부족할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당일 워크숍이나 1박2일도 검토하면 좋겠다. '정말 행복할까, 불안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대충 살기가 아닌 덜 일하고 덜 벌고 덜 쓰고 덜 휘둘리는 삶(생활). 그리고 반대급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자유와 시간을 보상 받는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그런 확인 말이다.

그래서 적당포럼이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고 이웃을 만들고 공동체(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인 예이츠는 '재림'이라는 詩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선의 인간들은 신념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늘 강렬한 열정에 차 있다." 적당포럼은 적당한 신념과 열정을 지닌 '적당한 인간'들이 만나고 교류하며 견문을 넓히면 좋겠다. 견물을 넓힌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면 볼 수 없고, 그 현장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현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에게만 열린다.

'적당하게 살 권리'를 누리는 것은 멋지게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에 중독된 삶, 관계에 치이는 삶에서 깨어나 적당하게 일을 하면서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은 멋지다.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멋지게 살 도리가 없는 세상에서 멋지게 살자고 말하는 건 얼마나 멋진가. 그 무모함은.'(김규항)

적당포럼이 때론 무모함을 추동하는 일도 멋지다. 사람이 삶을 바꾸려고 할 때 언제나 그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정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사정들을 완전히 해결하면서 삶을 바꿀 방법도 없다. 사정이라는 것도 대개 기존의 삶이 제공하는 크고 작은 기득권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금씩 버리는 연습, 적당포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누군가는 '비현실적'이라고 태클을 걸겠지만 현실은 오로지 '비현실적 상상'을 통해서만 변화한다. 적당포럼을 통한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가 '비현실'을 '현실'로 아주 조금씩 이동시킬 것이다. '오로빌 마을'이 먼 곳에 있지 않고, 멋지다고 여기는 휘게나 라곰은 '적당'과 다르지 않음을 '적당포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적당포럼 참가자들
 적당포럼 참가자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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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빌: 1968년 만들어진, 이른바 '다국적 생태공동체'로 53개 나라에서 온 2700여 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이다. 경찰도 없고 법도 없는 일종의 자치구로서 특정 민족이나 종교, 인종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소비지상주의를 지양하고 경쟁이 아닌 자유와 공존, 평화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이곳에 한국인은 30여 명이 마을 주민으로서 살고 있다.

*킨포크: 미국 포틀랜드 한 농가에서 시작됐다. 킨포크는 '친척, 친족' 등의 뜻으로 텃밭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고 가족이나 이웃,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연 속 소박한 삶을 의미한다. 이런 생활과 삶의 태도를 사진 등으로 담은 잡지 <킨포크(KINFOLK)>를 내면서 널리 알려졌다.

*욜로: 'You Only Live Once' 줄임말로 미래가 아닌 현재, 내일이 아닌 오늘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즉 현재 자신의 삶과 생활을 중시하는 태도를 뜻하나, 한국에서는 상업적으로 너무 치우쳐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조롱할 때 욜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휘게: '편안한, 따뜻한, 아늑한' 뜻의 덴마크어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소박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덴마크인들의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장작불이 타들어가는 벽난로 근처에서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핫초코를 마시는 이미지로 묘사되기도 한다.

*라곰: '적당한, 충분한, 알맞은' 뜻의 스웨덴어다. 자신이 가진 것이나 필요한 것 이상으로 너무 욕심내지도 앞서가지도 않는 태도를 말한다. 균형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생활 방식이자 태도이다. 환경을 중시해 화려한 장식품보다 편안하고 소박한 제품이나 디자인, 공간 등을 선호한다.

*오캄: '고요한, 한적한, 조용한' 뜻의 프랑스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모습 등으로 묘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혁신파크 공식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김이준수 기자는 서울혁신파크 공식 서포터즈 파크캐스터 2기입니다. 사진은 비전화공방 서울에서 촬영했습니다.



태그:#서울혁신파크, #사회혁신, #적당포럼, #비전화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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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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