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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차별없이 평등한 삶을 바라는 여성으로서 인생의 선배이자 엄마로서 두 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아리야, 엄마가 널 낳고 갓난아기 때부터 거의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육아 원칙이 있다. 하루 한 번 이상 웃게 하겠다는 것. 너와 놀 기분이 아닌 날이어도 간지럼을 태워서라도 웃게 했어. 어쩌다 널 낳고, 어쩌다 엄마가 되어서 너무 힘들었지만 너에게 이 세상이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거든. 엄마는 하루가 일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고,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평생의 삶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널 많이 웃게 해주는 것이 너의 삶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어.

너의 웃음보는 참 얇아서 방귀소리에도 웃고, 평소랑 다른 이상한 표정만 지어도 웃고, 손가락 하나로 옆구리를 찔러도 웃고, 발바닥을 때려도 웃고,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깜짝 놀래켜도 웃고... 웃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인가 싶을 만큼 넌 참 잘 웃는다.

아빠와 엄마가 바라는, 아니 세상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겠지. 엄마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네 남동생 한들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워야겠다고 쉽게 다짐했던 것과는 달리, 너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지는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어. 엄마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페미니즘이 널 더 행복하게 해줄지 확신이 서질 않았거든.

엄마를 고민하게 했던 '빨간약'과 '사이퍼'

대학생 때 인상깊게 봤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 봤다.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내밀며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진실을 대면할 것인지, 가상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택하도록 해. 선택의 기로에 선 네오는 주인공답게 망설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빨간약을 선택하고 엄청난 진실을 알게 되지.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빨간약'이라고 말하곤 해. 네오가 빨간약을 먹은 것처럼, 세상의 불평등을 인식하고 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겠지. 엄마는 이 말 때문에 페미니즘이 널 불행하게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페미니즘이 빨간약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엄마는 페미니즘이 빨간약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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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가 아니란 걸 알아요.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두뇌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죠. 내가 9년 만에 뭘 깨달은 줄 알아요? 모르는 게 약이다. 난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것도."

<매트릭스>에서 거짓과 타협하는 악역으로 그려진 사이퍼의 말이야. 진짜 세계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주 맛있는 가짜 스테이크를 잘라 먹으면서. 그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아무것도 모른 체 연기하듯 화려하게 살고 싶다며 자신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하지. 빨간약을 선택하고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가혹한 현실에 괴로웠던 거야.

"난 지쳤어. 전쟁도, 여기도 지긋지긋하고, 싸우는 것도 추운 것도, 매일 똑같은 죽을 먹는 것도... 모피어스는 우릴 속였어. 우릴 속였다고! 진실이 무엇인지 사실대로 말했다면 빨간약은 절대 먹지 않았잖아! 자유? 이게 자유야?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매트릭스(가상현실)를 선택하겠어!"

사이퍼가 동료들을 배신하며 남긴 말이란다. 사이퍼의 좌절과 불행은 엄마를 고민에 빠트리기에 충분했어. 애초에 모피어스가 사이퍼에게 빨간약을 권하지 않았다면 사이퍼는 가상현실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았을 사람이잖아. 달콤한 가짜가 고통스러운 진실보다 더 행복한 삶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페미니즘이 빨간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에게 권할 엄두가 나지 않더라. 네가 밝고 즐겁게 살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엄마잖아. '모르는 게 약'이라는 사이퍼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는 모피어스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모피어스를 원망하던 사이퍼의 분노에 충분히 공감했으니까 말야. 

옳은 가치를 심어 준다며 너의 삶을 너무 외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남들처럼 생각하며 평범한 아이로 자라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어느 날 사이퍼처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를 원망하면 어쩌나... 생각이 많아졌다.

페미니즘과 빨간약은 달라

그런데 아리야, 엄마가 공부하면 할수록 확신이 생기더라. 페미니즘은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엄연히 달라. 무언가를 깨닫고 이전의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각성의 순간 그 이후는 너무 많이 달라.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안다고 해서 매일 똑같은 죽만 먹어야 하는 이상한 세상으로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지긋지긋한 싸움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야. 페미니즘을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파란약(거짓)' 아니면 '빨간약(진실)'처럼 극과 극인 삶이 아니라, 알든 모르든 그 자체가 소중한 삶이야. 페미니즘은 단지, 우리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철학일 뿐이다. 살다보면 '모르는 게 약'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는 것이 힘'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아.

영화에서 빨간약 이후의 삶은 매우 암울하게 그려지지만 현실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삶은 다양한 모습이란다. 엄마는 페미니즘 이후의 삶이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 보다 가능성, 희망, 여유로움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되었어.

아리야, 요즘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성들에게 '꼴페미', '메갈'이라는 낙인을 찍어 공격하니 겁이 나겠지만 엄마를 믿어. 페미니즘은 몹쓸 사상이 아니고, 페미니스트들이 IS보다 무서운 무뇌아적 테러리스트 집단도 아니야.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이라면 네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어떻게 권할 수 있겠니.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빨래 건조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한 줄 모르고 살겠지만 있으면 삶이 훨씬 더 좋아지는 그런 거 말야. 건조기의 장점을 상상해보렴.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에 빨래가 안 마른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지. 빨래를 하나 하나 널어야 하는 시간과 노동을 줄여주지. 무엇보다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권이 생기잖아. 빨래 건조기가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엄마도 꼭 살거야!).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빨간약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빨래 건조기처럼 여성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거야.

엄마는 페미니즘을 만나 성장하고 있단다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자료사진).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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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참 예민하고 까칠한 여자다. 사회가 요구하는 고분고분한 여성상과 거리가 멀어.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에게 할 말을 꼬박꼬박 한다며 손가락질 받기도 했고, 결혼한 후에는 아빠와 참 많이 싸웠어. '김여사', '마누라'와 같은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옆 집 부끄럽게 대판 싸우고는 결국 아빠의 사과를 받았지.

그런데 살면서 기분 나쁜 일들에 대해 지적하고, 말할수록 이해받는 것이 아니라, 이해 못할 '유별난 여자'가 되더라. 아빠와 싸운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뭐 그런 걸로 시비를 거냐고 핀잔을 주거나, 엄마 같은 여자랑 사는 아빠가 딱하다고 불쌍히 여기는 거야.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 너무 짜증나고 슬퍼서 성난 목소리를 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낸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했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받을수록 엄마의 자존감은 참 많이 낮아졌다. '난 왜 이렇게 화나는 일이 많을까.' 엄마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라고 스스로를 탓했어. 아빠도,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언니들도, 엄마의 친구들도... 엄마편이 아니었기에 삶이 참 외로웠다.

'그래, 성격 죽이고 살자! 순한 양이 되자.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엄마의 분노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단다. 내 성격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적인 열등감을 떨쳐낼 수 있었어. 엄마의 감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고, 응원해주어 더 이상 외롭지도 않았다. 당연한 걸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거야. 페미니즘 덕분에 한없이 추락하던 자존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지.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계속 말하리라'

더 이상 엄마는 사회에서 가정에서 기대하는 여성의 상, 엄마의 상, 며느리의 상에 맞추느라 눈치 보지 않는다. 엄마가 느끼는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거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뀐 거야. 타인이 원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엄마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어.

특히, 정색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말다툼하던 수준을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아주 큰 소득이라고 생각해. 내공이 부족해서 아직도 미친듯이 분노하거나 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계속 공부해 나간다면 온갖 치사하고 짜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웃으면서 설명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아리야, 다양성을 존중하며 세상을 더 평등하게 한다는 페미니즘의 거창한 뜻에 따르지 않아도 괜찮아. 이기적으로 너 자신만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도 좋다. 엄마는 목적이나 속도가 다를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분노를 알아봐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함께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야.

엄마는 요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엄마의 분노를 설명하고, 엄마의 주도적인 삶을 찾기 위해 시작한 공부인데, 페미니즘이 엄마를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껴.

엄마 삶을 엄마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나아가 약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하고, 편견을 깨는 열린 사고를 훈련토록하고. 무엇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을 고민하게 하니까 말야. '이 좋은 것을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까지 해.

너의 행복만을 바라는 엄마가 너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페미니즘이란다. 페미니즘은 너의 소중한 인생을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해줄 거야. 엄마를 믿어주렴.

한 사람의 백 발자국 보다 백 사람의 한 발자국에 훨씬 더 큰 힘이 있다지. 부족한 엄마지만 엄마와 함께 하나씩 배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보자. 작은 걸음으로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


태그:#페미니즘, #빨간약, #성차별사회, #엄마 페미니즘, #주간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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