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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운동을 하며 신물 나게 들은 말이 "시설에 왜 안 들어가?"라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곧 시설을 의미했던 세월이 쌓이다 보니 생긴 인식이다. 이래저래 답을 해도 대개 "그래도 거리보다는 낫지 않아?"라는 식의 반응이 따른다.

홈리스 정책은 '주거우선접근(housing first)'이어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시설보다 '지원주택'(supportive housing, 주거를 기반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받는 형태)이 비용 효율 면에서도 낫다는 실증에도 여전히 생활시설은 홈리스 주거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시설을 옹호하는 이들은 홈리스가 시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비난한다. 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3박 4일 하는 수련회도 아니고, 시설을 주거지로 매일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피로는 어떤 것일까? 추위와 더위가 주는 고통보다는 그래도 덜하다고 어떤 잣대로 비교할 수 있을까? 직업 군인도 아니고 제대 없는 병영 생활을 평생 해야 한다면? 시설 생활은 다양한 개인들의 삶을 '표준화'시켜야만 존립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코 주거대책의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배반적이다.  

시설에 밀린 홈리스의 주거권

거리 홈리스들의 직전 주거 형태의 변화를 보면, 자가와 전세의 비율은 줄고 월세의 비율은 늘며, 특히 '염가숙소·非 주거시설'의 비율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홈리스의 발생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주거정책 탓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홈리스 상태에 처하기 전 주거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 주거 문제가 홈리스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간과될 수 없다.
서울 거리홈리스 직전 주거 중 염가숙소?非 주거시설 비율
▲ 서울 거리홈리스 직전 주거 서울 거리홈리스 직전 주거 중 염가숙소?非 주거시설 비율
ⓒ 다시서기 사업보고서(각 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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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홈리스라는 용어조차 입법과 정책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주거정책은 홈리스 정책에서 부차화되고 있다. 단순한 예로 2017년 서울시 '노숙인 보호 및 자활 지원' 예산 중 주거 지원 직접비와 시설운영비를 비교해 보면, 시설운영예산(237억)은 주거 지원 예산(26억)의 약 9배에 달하는 규모다. 복지부의 경우 더 극단적인데 2017년 '노숙인 등 복지지원' 예산 345억 원의 대부분인 339.2억 원이 노숙인시설 운영 및 기능보강 예산이다(보건복지부, 2016.12; 서울특별시 2017).

그러나 시설 중심의 정책은 효과성 측면에서도 채택할 이유가 거의 없다. '서울시 노숙인 종합지원시스템'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최종 시설퇴소 이후 시설에 재입소하는 경우는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박은철·이자은·김준희, 2014).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을 순환하는 소위 '회전문' 현상이 고착화 된 것이다.

반면, 홈리스에 대한 주거 지원은 미진하기만 하다. 단적인 예로, "거리 노숙인 및 노숙위기계층"에게 쪽방과 고시원 등의 거처를 한시 제공하는 임시 주거 지원은 거리홈리스의 수에도 미달한다(아래 그림 참조). 이 사업의 지원대상이 "거리 노숙인, 잠재 노숙인, 노숙위기계층"임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부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지자체는 서울, 부산, 대구 등 7개에 불과하다. 경상, 충청, 광주 등 나머지 지역의 거리홈리스들은 아무런 주거지원을 받을 수 없다. '노숙인복지법' 제10조에 "임시주거비 지원"이 규정돼 있으나, 임의조항에 불과해 안 지키는 지자체가 더 많은 것이다.
  
주: 거리홈리스의 수는 서울시 조사결과를 평균한 것. 2016년 10월 20일 진행된 복지부 조사에서는 1,267명으로 나타남. 한편, 2017년에 한하여 서울시는 임시주거비 예산을 약 2배 더 확보(5억→10억)하여 지원 대상을 600명에서 1,200명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음.
▲ 서울시 거리홈리스 수와 임시주거지원 현황 주: 거리홈리스의 수는 서울시 조사결과를 평균한 것. 2016년 10월 20일 진행된 복지부 조사에서는 1,267명으로 나타남. 한편, 2017년에 한하여 서울시는 임시주거비 예산을 약 2배 더 확보(5억→10억)하여 지원 대상을 600명에서 1,200명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음.
ⓒ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 및 예산서(각 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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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쪽방들, 한계적인 대책

쪽방은 홈리스의 주거자원으로 자구적으로 이용됨은 물론, 임시주거비 지원사업과 같은 정책의 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쪽방 주민들에게 쪽방상담소를 설치(서울지역의 경우 5개)하여 상담과 생활 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성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쪽방과 쪽방 주민에 대한 지원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다만, 서울시의 경우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저렴한 쪽방 임대 지원 사업'이다. 기존 쪽방 건물을 서울시가 임차하여 수선한 후 주변 쪽방 월세의 6~70% 수준으로 임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의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존 주민들이 퇴거당하고 재입주가 안 되거나, 임대료가 예상보다 저렴하지 않고, 운영기관(쪽방상담소)의 일방적 운영과 같은 문제가 주민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책효과가 시한부이고, 투여된 재원(주거개선비용)이 소모된다는 구조에 있다. 서울시가 건물주로부터 임차한 기간이 5년이다 보니, 5년 후 건물주가 쪽방 임대료를 올리거나 쪽방이 아닌 타 용도로 전환할 경우 손 쓸 방법이 없다. 특히, 최근 동자동 지역과 같이 쪽방이 게스트하우스, 커피숍 등으로 용도 변경되는 일이 잦아, 공공이 소유권을 갖지 않는 방식의 대책은 더더욱 실효가 없어질 것이다. 해당 지역에 개발 사업이 진행될 경우에야 더 말할 나위 없다. 

2008년 철거된 동자동 쪽방지역에 걸린 현수막. 지금은 철거되었다.
▲ 동자4구역 2008년 철거된 동자동 쪽방지역에 걸린 현수막. 지금은 철거되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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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주거복지로드맵

지난달 29일 발표된 주거복지로드맵 중 홈리스와 관련된 부분은 "저소득·취약계층 주거 지원" 분야로, ▲ 주택공급과 NGO의 복지서비스를 결합하여 지원(지원주택), ▲ 주거 취약계층 지원사업 활성화가 골자다. 그들 중 전세임대주택 보증금 지원수준을 일반전세임대수준으로 상향(수도권 기준 6000만 원→8500만 원)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나머지 내용은 홈리스들에게 '주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거 지원 '기관'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렇듯 로드맵은 기관들을 챙기는 간접비용에만 몰두할 뿐,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제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의 지침에 따르면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약 4500호~6700호 가량 공급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595호~1070호에 불과하다. 아래 그림을 보면 지침이 정한 의무공급량(점선)과 실 공급량(검은색 그래프)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화살은 어이없게도 홈리스 당사자를 향하고 있다. LH공사는 "물량이 소진되어..." 따위의 공문을 올해에만 두 번이나 발송하며 입주신청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LH공사는 2017년 강북권의 공급물량이 "48세대"에 불과하다며 "주택 공급 시 6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이점 업무에 참고(2017년 1월 10일)"할 것을 동 주민 센터에 통지하였다. 새해 업무를 개시한 지 고작 열흘 지난 시점에서의 일이다. 일선 공무원들에게 "참고"는 곧 신청 중단을 의미하였다. 최근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1인 가구 대상자는 내년에 신청 접수받으시기를 요청(2017년 8월 29일)"하기도 하였다. 쪽방, 고시원 등 입주대상의 절대다수가 1인 가구인 상황에서 이들의 신청 접수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제도를 멈춰 세우는 것 아닌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비중
▲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비중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비중
ⓒ 2017 국정감사 요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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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복지 로드맵에 담겨야 할 쪽방 대책
▲ 쪽방주민 토론회 주거복지 로드맵에 담겨야 할 쪽방 대책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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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2017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주최로 "쪽방주민 토론회"란 생소한 이름의 토론회가 열렸다. 홈리스 당사자로서 쪽방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경험에서 길어 낸 대안도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토부, 복지부, 서울시, LH공사 등 토론을 요청한 부처 중 자리에 나온 것은 복지부 한 곳에 불과했다. 주무부서인 서울시 자활지원과는 관련 모든 부처·부서가 나오지 않는 이상 토론회가 무의미하다며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귀 막은 (시)정부였지만 논의는 뜨거웠다. 그리고 주민들과의 토론회에 나오지도 않는 정치인들은 선거 때 쪽방지역의 출입을 금지시키자는 결의로 토론회를 마쳤다.

홈리스추모제
 홈리스추모제
ⓒ 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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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각 연도, <사업보고서>
박은철·이자은·김준희, 2014, <노숙 진입서 탈출까지 경로 분석과 정책과제>, 서울연구원.
보건복지부, 2016.12, <2017년도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
서울시특별시, 2017,  <2017년도 예산서>
윤소하 의원실, 2017, <국정감사 요구자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7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참여단체인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태그:#홈리스, #홈리스추모제, #주거복지 로드맵, #쪽방,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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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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