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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 뒤에 따라오는 게 바로 훈계다. 이런 말이 기본수위를 넘으면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하니. 나처럼 잘 좀 해봐"란 윽박지르기로 발전한다. 이런 강요 뒤에서 숨죽였던 한국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내놓는 말이 있다. 바로 '꼰대'란 말이다.

'레지오 칠드런' 방문한 한국 교사들이 눈물 흘린 까닭

레지오 칠드런에 들어가는 한국 교사들.
 레지오 칠드런에 들어가는 한국 교사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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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훈계와 강요를 버리는 대신 '귀 기울임' 교육으로 유명한 학교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북부지역 레지오 에밀리아 시에 있는 '레지오 칠드런'이다.

영유아부와 초등부, 3~12살의 아이들이 학습하고 있는 이 학교는 세계 2차 대전 뒤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 접근법'을 잘 구현하는 곳이다. 1940년대부터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 교육시민단체와 교육학자가 함께 만든 이 접근법은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믿는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훈계자가 아닌 동기부여자와 조력자 노릇을 한다.

지난달 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연구년제 교사 20여 명이 이 학교를 방문했다. 건물 안에 만들어놓은 광장을 빙 둘러 교실이 펼쳐져 있다. 치즈 공장을 개조해 2008년에 만든 건축물이다.

한 학급은 26명으로 학생 수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교사는 한 학급에 2~3명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놓은 협력수업을 하는 셈이다.

교실을 둘러보기 시작하자마자 한국 교사들은 장벽을 만나야 했다. 한 남자아이가 다음처럼 말하고 양팔을 뻗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멈춰라. 여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은 4살 아이 서너 명이 오랫동안 만든 공포의 공간이었다. 스피커에서는 괴성이 들렸고 음침한 옷들도 걸려 있다.

교실 안 다른 곳도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둠을 이뤄 제각기 자기들의 학습 공간에 앉아 있다. 탑 세우기를 하는 모둠도 있었고, 레고를 조립했다가 부수는 모둠도 있었다.

짝을 이뤄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낙엽을 모아놓고 확대경으로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취재한 결과를 기사로 쓰는 모둠도 있었고,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모둠도 있었다.

유치부, 초등과정 6개의 교실을 둘러보았는데 아이들을 한곳에 일제히 모아놓고 훈계하는 교사는 없었다. 아이들은 제각기 프로젝트 학습을 하는 데 정신을 모았다. 외부인이 들어와 쳐다보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빨리, 잘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아"

들판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가 있는 한 교실에 들어섰다. 4학년 학생 넷이 지점토로 다리를 만들고 있다. '섬과 섬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이와 같은 학습문제에 대해 모둠끼리 토론한 뒤 이 같은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 잘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궁리하고 활동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협력 활동을 최고 목표로 앞세운 것이다. 나 혼자만 멋있게, 빨리 만드는 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리라.

이 교실 교사는 허리를 굽힌 뒤 동영상 기기를 들고 학생들을 계속 촬영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공동 작업을 얼마나 잘 하는지 기록해서 학부모와 상담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레지오 칠드런이 한국 교사들을 놀라게 한 것은 3가지 모습이었다.

우선, 제각기 모여 학습을 하는데도 큰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한국교사는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이 이처럼 한결같이 차분할 수 있는 것이냐"며 놀라워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학습이 유아 때부터 몸속에 배어 있기 때문일까?

두 번째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감이 철철 넘친다는 것. 한 초등부 남자아이는 "(한국교사들이) 이탈리아 말을 할 줄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냐"고 너스레를 떤 뒤, 친구들과 1년여간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만든 지도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했다. 주눅 들어 눈치를 살피는 아이는 발견할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식 수업을 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한국교사들은 "나라에서 정해놓은 교육과정이 있을 텐데 학생들 중학교 진급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레지오 칠드런 관계자는 "국가 교육과정이란 말 자체가 없다"면서 "(큰 틀의) 기본 교육방안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재량껏 교육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밝은 모습으로 함께, 그리고 자유롭고도 차분하게 수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이 현장에서 한국 교사들 몇몇의 얼굴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영유아부 교실을 둘러볼 때 더 그랬다.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카디아이 어린이집 교육담당자.
 카디아이 어린이집 교육담당자.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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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방문 하루 전인 8일 오전, 한국 교사들은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인 카디아이 소속 노동자들이 교사로 일하는 한 어린이집을 들렀다. 볼로냐시에 있는 77명의 아이가 다니는 곳이었다.

천으로 만든 기저귀를 찬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 3~5명이 모여 활동을 벌였다. 울거나 보채는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

이 학교 교육책임자는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실수하면서 배운다고 믿기 때문에 자유롭게 놀도록 한다"면서 다음처럼 말했다.

"아이들이 웃는 게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 일부 한국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아동 인권침해' 보도가 머리에 떠올랐다. 분명한 것은 '교사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웃어야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이탈리아 고교의 학생 생활규정은...

지난 7일 오후 방문한 시에나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고등학교의 수업 마감 시각은 날마다 오후 1시 30분이었다. 오후 8시만 되면 술집도 가게도 죄다 문을 닫는 이탈리아. 고등학교 수업시간도 이처럼 일찍 끝났다.

이 학교 교사는 "방과 후에 학생들은 집에 가서 가방을 풀어놓은 뒤 야구를 하는 등 자유시간을 보낸다"면서 "물론 이 학생들은 오후에 학교나 집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에서 특별 강화수업 같은 것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교사들과 간담회를 갖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고 학생회 임원들.
 한국교사들과 간담회를 갖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고 학생회 임원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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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학생 생활규정과 상벌점제가 궁금했다.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사는 "학생 생활규정은 엄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마약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서 "수업시간에 제대로 들어오고 휴대폰을 하지 않으면 규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대표들의 말은 온도 차가 있었다. 이 학교 학생회 임원 8명은 한국교사들과 간담회에서 "우리도 벌점제 비슷한 것이 있는데,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행동발달 점수 5점이 깎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학교가 머리 염색을 단속하거나 옷을 입는 것을 규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학생들의 자유니까."

'학생들을 웃게 하는 것이 숙제'라는 이탈리아 학교들. 한국 학교들의 숙제는 무엇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금서울교육>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탈리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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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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