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낭만닥터 김사부>를 마친 신인배우 양세종을 만났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양세종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사이 양세종은 지상파 주연까지 꿰찼다. 그저 롤의 크기만 키운 것도 아니다. <듀얼>에서는 극과 극 캐릭터를 오가며 1인 3역을 훌륭히 해냈고, <사랑의 온도>에서는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셰프 온정선 역을 맡아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호평받았다. 11개월 전 "이름 대신 '도인범!'하고 불러주는 게 기분 좋았다"며 "앞으로도 이름 보다 캐릭터로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던 그의 캐릭터 리스트에는 '이성준', '이성훈' 그리고 '온정선'이라는 이름까지 업데이트 됐다.

자타공인 2018년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 데뷔 1년 만에 '눈에 띄는 신예'에서, '괴물 신인'으로 수식어를 바꿔 단 양세종. 단기간 높아진 위상에 들뜰 법도 하건만,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치열함과 절실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이라 걱정스럽긴 했지만.

치열함 간직한 '괴물 신인' 양세종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양세종은 데뷔 1년 만에 '눈에 띄는 신예'에서, '괴물 신인'으로 수식어까지 바꿔달았다. ⓒ 굳피플


- 지난 인터뷰 때, 동양 미술과 학문에 능한 <사임당-빛의 일기> 한상현을 위해 논어까지 공부하고, <낭만닥터> 때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도인범 역을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모든 외적인 것들과 스스로를 차단했다던 말이 기억에 남더라. 그래서 <사랑의 온도>에서 셰프 연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아이고, 이번에는 또 얼마나 준비를 했을까' 싶었다.  
"<사랑의 온도>는 <듀얼> 끝나고 얼마 되지 않고 들어가게 돼서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셰프님과 시간 될 때마다 만나서 칼질, 머랭 치기, 생선 손질, 스테이크 굽기 등을 배웠다. 단기간에 배우다 보니 충분치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내가 했고, 어려운 부분은 셰프님이 연기하셨다."

- 이번에도 골방에 틀어박혔나.  
"물론이다. 사실 <사랑의 온도>는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아 골방 작업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듀얼>을 할 때는 촬영 끝난 뒤 옷도 일부러 던져보고, 맥주 캔도 일부러 꾸깃꾸깃 접어 던져두기도 했다. 조명도 어둡게 해두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방에서 대본 연습을 하면 내가 이성훈이 된 느낌이 들었거든. <사랑의 온도>를 시작하면서는 가구 배치부터 바꿨다. 방 청소도 말끔히 했고. 온정선의 공간처럼 꾸며두고 방 안에서는 온정선처럼 행동했다. 호흡, 반응 속도, 목소리톤 모두다.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두고 오직 알람 용도로만 썼다."

- 몰입도 좋지만 너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 아닌가. 아직 신인이기는 하지만, 나름 경험치가 쌓였으니 전보다 편하게 몰입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이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편한 방법을 잘 모르겠다. 캐릭터와 나를 분리하는 일을 잘 못 하기도 하고. 배부른 소리 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 오해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요즘 별로 행복하지 않다. 작업할 때 모든 연락을 차단하다 보니 이젠 친구고 가족이고 연락이 안 온다. 내가 잘못한 거지. 답장도 잘 안 하고 하니까... 근데 이렇게 안 하면 집중을 못 하니 나로서는 선택지가 없다."

양세종이 자신을 '골방'에 가두는 이유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 굳피플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양세종은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준비한다. 주위의 연락도 모두 끊고, 골방 안에서는 오로지 캐릭터가 되어 생활한다. 호흡, 말투, 걸음 속도, 행동까지. ⓒ 굳피플


- 골방 작업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인간 양세종을 양분 삼아 배우 양세종이 성장한 셈이다. 
"좋은 평가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은 좋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때그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을 뿐이다. 나는 주어진 걸 잘 해내고 싶고, 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 어떤 인물이 되기 위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 않을까? 매번 새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골방에 틀어박힐 수는 없잖나. 우리 드라마 제작 여건 상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작품을 시작해야 할 때도 있을 테고.    
"그래서 골방 작업이 더 필요하다. 방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만으로 그 인물로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 더 빨리 캐릭터와 하나 될 수 있는, 내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외에도 일상에서까지 그 인물이 되어 살다 보면 분명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있다. 힘들어도 골방 작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 또 다른 몰입 방법이 있나. 
"향수? 캐릭터에 어울리는 향을 고민하는 것도 캐릭터를 만드는 시간의 일부다. 향수를 고르고 나면 연습 때나 촬영할 때 그 향수를 뿌린다. 상대 배우에게 피해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촬영 시작 전에 촥촥 뿌리고 나면 '짜라란~'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기분이 든다. 그럼 몰입도 더 쉽더라고. <사임당> 사극 파트를 연기할 때는 조선시대가 배경이라 향수를 안 썼고, <듀얼>은 여러 캐릭터를 오가야 하니 향수를 뿌릴 수 없었다."

양세종이 본 온정선, 그리고 이현수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양세종의 시선으로 본 온정선은 분명 핀트가 튀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양세종은 자신을 모두 지우고, 온정선이 되어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 굳피플


- 골방에 향수까지…. 온정선으로 완벽하게 몰입했던 것 같은데, '어? 온정선이라면 이때 이렇게 행동할 것 같지 않은데?' 싶었던 지점은 없었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연기할 땐 양세종이라는 존재를 아예 지워버린다. 그 캐릭터는 내가 아니니까. 캐릭터에 나의 말투나 제스처가 보이는 것도 경계하기 때문에 골방에 나를 가두는 거다.(웃음)

양세종의 시선으로 봤을 때 분명 핀트가 안 맞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온정선이라면 모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끔 양세종의 시선이 개입돼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을 때면 대본을 들이팠다. 이미 촬영한 이전 대본까지 다시 훑으면서 온정선이 이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정당성을 찾는 거지."

- 지금은 온정선을 끝냈잖나. 양세종으로 돌아와서 다시 온정선을 보자. 어떤가. 온정선의 사랑이 이해되던가. 
"아, 그런 생각, 하고 싶지도 않은데... 하하하. 분명한 건 정선이의 사랑과, 양세종의 사랑은 모든 게 다르다는 거다. 정선이는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바로 '사귈래요?' 했지만, 양세종은 처음 확 빠지는 감정을 믿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연락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다. 계속 그 감정이 유지된다면 그때서야 사귀자고 고백하는 스타일이다. 연애 할 때도 온정선은 끝에 가서야 현수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나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에게는 치부, 단점, 가족사 모든 걸 다 이야기한다."

- 그럼 양세종이 본 이현수(서현진 분)는 어떻던가. 
"현실에서 이현수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갈 거다. 내가 본 이현수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을 일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극복하려 하는 사람이고. 너무 멋있지 않나. 현실 온정선이나 현실 박정우(김재욱 분)는 분명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다. 하지만 현실 이현수는 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선이가 왜 첫눈에 반했는지 알 것 같다."

- 실제 양세종의 이상형도 그런 스타일인가. 
"이상형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많이 하며 의지하는 스타일이다. 늘 의지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음처럼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너무 멋있다.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나서 아예 대놓고 기대고 싶다.(웃음)"

"나는 누구였지?" 양세종은 혼란스럽다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나는 누구였지?', '나는 어디 갔지?', '나 지금 잘살고 있는 거 맞나?' 양세종은 지금 혼란스럽다.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방식으로 몇 달을 지내다 보면 작품을 끝내고도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굳피플


- 보통 신인이나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배우들에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하지만 양세종에게는 쉽게 그런 말을 못 할 것 같다. 캐릭터에 너무 깊게 빠져들면 빠져나오기도 힘들 것 같은데.
"음…. 오히려 반대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은 짧다. 골방에서 계속 온정선만 생각하고 있었더니 질려버렸거든. 더 이상 얘하고 마주 하고 싶지 않은 기분? 하하하. <사랑의 온도> 마지막 촬영 끝내는 날, 모든 걸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그래서 질문처럼 작품 텀을 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 골방 작업은 아무래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

- 온정선에서 온전히 빠져나왔다기엔 눈빛과 분위기가 너무 온정선인데? 불과 11개월 전에 만났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하하하. 정말? 인터뷰하면서 자꾸 온정선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가보다. 얼른 떨쳐버리겠다."

- 지금처럼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방법으로 연기하다 보면, 점점 진짜 양세종의 모습을 잃어가는 기분도 들 것 같다.  
"정확하다. 지금 <사랑의 온도> 끝나고 딱 4일 쉬었는데, 그 중 하루는 '나는 누구였지?', '나는 어디 갔지?',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모든 게 다 꼬여버린 기분.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고. 이전의 나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회사 사람들은 (반응 좋다고) 좋아만 한다. 잔인한 일이다."

- 잔인할 정도로 힘들지만, 연기 자체를 포기할 생각은 없지 않나. 새 작품이 들어오면 또 골방에 틀어박힐 테고. 연기의 어떤 매력이 양세종을 묶어 두는 걸까?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순간 진짜 나는 사라지고, 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 사람들 앞에 서게 된다. 시청자들 마음속엔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 마치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기억되고. 아, 이건 정말 흥분되는 경험이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내가 놓여있는 그 상황, '액션!'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공기가 너무 짜릿하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힘들지만, 여기서 느끼는 쾌감이 더 크니까." 

 양세종 <사랑의 온도> 인터뷰 제공 사진.

"카메라 앞에 내가 놓여있는 그 상황, '액션!'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공기가 너무 짜릿하다"는 양세종.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연기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 굳피플



사랑의 온도 온정선 듀얼 양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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