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절기에 따라 제철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겨울은 한 해 농사로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안식월이기도 하다. 눈 덮인 농장을 둘러보며 지난해의 농사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찾는 철부지 고객의 전화에 웃음으로 무료함을 날리기도 한다. 시장이나 마트에는 일 년 내내 제철을 잊은 채소들이 판매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 겨울철 난방을 하는 온실하우스에서 재배한 채소에 붙은 가격표를 보면 그것을 생산한 농부의 한숨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겨울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래기
 겨울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래기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절임배추와 김장을 끝내고 남은 배추와 무시래기를 큰 솥에 삶아서 널었다. 푸릇하던 채소는 겨울 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무게가 1/10로 줄어 가벼워진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겨울이면 김장김치와 시래기가 밥상을 떠나지 않았다. 천장에는 볏짚에 걸린 메주가 매달려 있었고 따뜻한 아랫목에는 이불을 덮은 청국장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도시에 지친 어느 날, 흙에서 사람 냄새를 맡다

"농사를 왜 하게 됐나요?" "농사로 먹고살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 자신에게도 던졌던 물음이다. 귀농(歸農)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농사는 힘들고 돈벌이가 안 된다는 현실을 농촌 출신인 내가 모를 리 없었기에 내 인생에서 농사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거나 되도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또한, 돈으로 소비만 하는 도시적인 삶에 대한 회의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물음이 계속 생겨났다.  

'단순소박한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서 대책 없이 무작정 나만의 생각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조금씩 준비를 한다는 생각으로 귀농교육과 농촌탐방도 다녀보고, 농사일도 해봤다. 어느 순간 흙에서 사람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농부가 됐다. 친환경 유기농업을 알게 된 것 또한 지금의 농사에 밑거름이 됐다.

10년 전, 첫 농사는 손바닥만 한 텃밭과 옥상에 만든 상자텃밭에서 시작됐다. 방에 누우면 천장이 텃밭으로 보이고, 작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같이 물통을 들고 옥상텃밭으로 올라가서 작물을 돌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주말이면 전철을 타고 텃밭에서 하루를 보냈다. 점차 농사에 재미를 붙이면서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때부터는 농사와 관련된 책은 인문학이든 기술서적이든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으며, 책장에는 농사와 관련된 책들이 다른 책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첫 농사의 시작은 옥상에서 시작되었다
 첫 농사의 시작은 옥상에서 시작되었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물질의 편리함이 행복이라는 착각

자급하는 작은 텃밭농사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다양한 작물을 경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서 텃밭과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귀농이나 전업농부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면 작은 텃밭농사를 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작은 농사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다. 농사는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또는, 경력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다.

해마다 농사에 대한 기록을 해두는 것도 농사지식을 늘리는 데 도움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사진 기록도 어렵지 않다. 나는 아직도 폴더폰을 쓰고 있는데, 밭에 들어갈 때 전화기를 놓고 가는 것은 농사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액정이 깨져 화면이 보이지 않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는 항상 주머니에 넣고 밭에 들어간다. 농사기록을 위해서다.

화면이 보이지 않아서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점차 몸의 감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됐다. 농사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돼 단련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거부하고 액정이 깨진 카메라를 쓰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다. 물질의 편리함을 쫓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삶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오히려 약간의 불편함을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새해가 되면 전업농부가 된 지 5년이다. 농사의 규모도 더는 텃밭이 아니다. 수천 평의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을 키워 직거래로 직접 판매까지 한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농사로 얼마나 돈 벌어요?"라는 물음에 나는 한결같이 "밥은 먹고 살아요"라는 답한다.

대답이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말에는 내 삶과 농사의 가치와 철학이 담겨있다. 나에게 농사는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다. 많은 돈을 벌지 않고도 살아가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농부가 된 것이다. 내 생각대로 농사짓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흙을 밟으며 여러 생명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태그:#농사, #시래기, #귀농, #농부, #상자텃밭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