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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쩌나…."

부재(不在)가 존재를 증명한다. 인간이란 왜 이토록 아둔한 것일까. 잃어 봐야, 없어져 봐야, 그제야 소중함을 느낀다. 왜 좀 더 일찍 깨우치지 못하는 걸까. 언제나 빈자리를 경험해야, 뒤늦게 그 존재의 위대함과 절실함을 깨우치게 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존재의 이름을 '엄마'라고 상정해보자. 벌써 눈앞이 깜깜해진다. tv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연수(최지우)처럼 당장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쩌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지점에서 씁쓸해진다. 엄마가 죽는다는데,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데, 우리는 고작 '나는 어쩌나'하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아래 <디마프>)에서 자신의 뺨을 치던 박완(고현정)처럼 말이다.

"엄마의 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노희경, 다시 엄마를 조명하다

'노년'을 새롭게 조명했던 <디마프>에서도 '부모와 자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던 노희경 작가였다. 간암에 걸려서도 온통 딸 걱정뿐인 난희(고두심), 치매에 걸리자 아들 민호(이광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희자(김혜자). 노 작가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통해 부모의 내리사랑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반면, 자식들은 기어이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섰다. 이것이 노희경 작가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본질적 구도였던 모양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써 내려갔던 그 처절한 자기 고백이 참으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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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본격적으로 '엄마'를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가족을 뒷바라지하며 평생을 희생하고 살아왔던 중년의 주부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이 설명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얼마나 슬플지, 아니 슬플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1996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방영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굳이 21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효용이 있다고 봤던 것일까.

"요즘 대부분의 드라마 속 엄마는 엄마가 아니에요. 자식들을 잃어버리고, 재산 안 준다며 괴롭히는, 극중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일 뿐이죠. 그러다 보니 부모상이 왜곡되고, 엄마는 불편한 존재라고 받아들여지지요. 그래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족 이야기가 지금 다시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 조윤경 기자, <동아일보>, "어느새 왜곡된 부모상... 진짜 엄마 보여주고파"(2017년 12월 8일) 중에서

노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외면하고 있는 혹은 잃어버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년을 위한 드라마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디마프>를 낳았던 것처럼, '엄마를 위한 드라마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리메이크한 결정적 이유였다. 1996년 방영 당시에도 안방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자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2011년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왜 언제나 희생은 엄마의 몫인가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요즘 드라마 속의 '엄마'가 매우 극단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노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다른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1, 2부가 방송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역시 슬프고 아팠다. 무뚝뚝한 가장(家長) 정철은 걸핏하면 소리만 질러댔고,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딸 연수는 제 살기에 바빴고, 아들 정수(최민호)는 철없는 삼수생이었다. 동생 근덕(유재명)은 정신을 못 차리고 경마장에 나가 돈을 탕진했다.

인희(원미경)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뿐인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영옥)를 집으로 모셔와 간병까지 도맡아야 했다. 간병인이 따로 있다곤 하나 24시간을 돌볼 수 없는 노릇이고, 시어머니는 계속해서 인희만 찾아댔다. 그런데도 인희는 밝다. 소녀처럼 해맑다. 가부장제라는 체제 속에서 '엄마'가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부대꼈다. 엄마와 희생을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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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가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철은 그제야 아내를 살뜰히 챙기지만, 그의 후회는 너무 뒤늦은 것 아닐까. 아픈 아내의 걸레질이 마뜩잖았던 그는 자신이 대신 걸레질을 하는 게 아니라, 딸에게 바닥을 닦으라며 고함을 지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자 손찌검을 하기 급급하다. 슬픔으로 덕지덕지 붙여버리기엔 그 가부장제의 민낯이 서글프다. 정철에게 아내의 죽음은 중년 남성의 무기력함을 되새김질하는 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곧 접하게 될 연수와 정수는 부재를 통해 존재의 그리움을 더욱 강렬히 느낄 테고, 심지어 망나니 근덕조차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살아서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삶을 접어두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가족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 희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건 지나친 강요는 아닐까. 엄마를 한 명의 '여성'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성숙함은 여전히 요원한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시청률 3.248%(1회), 3.888%(2회)를 기록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감동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결과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런데 '진짜 엄마'에 대한 노희경 작가의 설교는 조금 불편하다. 1996년의 엄마가 희생과 인내를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라도 2017년의 엄마는 좀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쌓아 올린 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온전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직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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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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