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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지식인들에게 샘물과도 같았던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한 고 한창기 선생의 정신을 재해석하고자 <불휘 기픈 나무에 걸린 달  ㅅ·ㅣ미 기픈 물에 비친 달> 전이 오는 12월 3일까지 서울시민청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장 풍경. 달항아리와 천연염색의 무명천이 어우러져 있다.
 전시장 풍경. 달항아리와 천연염색의 무명천이 어우러져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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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시민청갤러리에서 진행된 20주기 추모전 <시대는 왜 한창기를 부르는가>에서 도자기와 옻칠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는 박노연 작가(도자 공예)와 이종헌 작가(옻칠회화가)가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작업한 달항아리들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17세기 초부터 18세기까지 제작된 순백색의 이 도자기는 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백자 둥근항아리라 불렸지만 고고학자인 고 김원룡 선생이 달을 닮았다며 달항아리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통칭 달항아리라 부르고 있다.

전시장 풍경.
 전시장 풍경.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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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달항아리들은 평균 높이가 45cm, 지름이 45cm 정도로 전체적인 둥근 형태의 균형이 아주 뛰어난 작품들로 박노연 작가의 노련함과 힘을 엿볼 수 있다. 달항아리는 주로 백토로 형태를 만드는데, 백토는 다른 흙보다 물러 한 번에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위쪽과 아래쪽을 따로 빚어 붙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때문에 달항아리는 완벽한 구의 형태가 아니라 위, 아래를 따로 빚으면서, 또 붙이면서 조금씩 이지러지기도 하고 이음새가 남기도 한다.
좌 : 박노연. 달항아리 제작 중
우 : 이종헌. 제작된 달항아리에 옻칠 작업 중
 좌 : 박노연. 달항아리 제작 중 우 : 이종헌. 제작된 달항아리에 옻칠 작업 중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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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에 옻칠 회화를 소개하고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매김하게 한 이종헌 작가가 유약 대신 달항아리에 옻칠로 마감을 한 작품들이 더욱 눈길을 끈다. 도자기의 마감재료로 옻을 사용한 것은 동아시아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옻은 아주 귀한 물질이어서 왕족이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죠. 방수, 방습, 항균 뿐 아니라 특히 전쟁 무기에 옻칠을 하면 기존의 것들보다 훨씬 단단해지기 때문에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어요. 유약을 사용하기 이전 도자기들은 주로 옻칠로 마감을 했는데, 방수 뿐 아니라 표면에 광채를 더해주면서 견고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죠. 도자기에 옻칠로 마감한 것을 도태칠기 또는 요태칠기라고 부릅니다."
옻칠의 횟수에 따라 색의 정도가 달라진다
 옻칠의 횟수에 따라 색의 정도가 달라진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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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회화작가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옻칠화회로 시작해서 공예작가까지 아우르게 된 한국옻칠협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이종헌 작가는 옻칠을 한 달항아리의 작업과정을 소개했다.

"옻칠을 한 후 굳히는 방법에는 칠장에서 습도와 온도를 통해 도막을 경화 시키는 방법으로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자연경화 방법과 도자기에 유약을 입힌 후 굽는 과정과 동일하게 열을 통해 옻칠의 도막을 강제로 경화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번 작품들은 후자를 택해서 마감을 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 예술을 복원, 계승한다는 차원보다는 옻칠을 할 때 붓의 움직임, 옻칠이 도자기 위에 올라간 정도, 사포질 뿐 아니라 고온 경화 방식으로 굳힐 때 만들어 지는 언어들을 얼마나 장악할 수 있었느냐가 제게는 관심사였죠."

전시장 풍경. 달항아리와 천연염색천
 전시장 풍경. 달항아리와 천연염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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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토로 만들어진 훤한 달항아리들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눈동자를 닮은, 옻칠로 마감한 달항아리들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붓질의 자국이 때로는 짙게 때로는 옅게 LP판 위의 기록들처럼 기억을 만들고 있다. 그림이 그려진 달항아리도 있고, 유난히 광택이 뛰어난 달항아리도 있고, 작은 꽃이 피어난 듯 방울방울 맺히기도 하고, 굵은 붓질 위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흔적도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달항아리에 옻칠로 새옷을 입히는 예술가의 마음의 흔적일 것이다.

서울시의 후원으로 이번 전시회를 기획을 한 한광석(남도전통문화연구소 소장)씨는 현대의 우리에게 전통 문화가 주는 중요성에 대해서 힘주어 말했다.
전통 반닫이에 올려진 달항아리
 전통 반닫이에 올려진 달항아리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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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그저 오래된 것으로만 이야기 할 수는 없어요. 옛날의 것들 중에서 정제된 것들은 우리의 일상을 한단계 격상시켜주죠. 요즘 먹방이나 집밥이 대세인데 무엇을 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담느냐도 중요하지요. 문화라는 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과 결합이 될 때 우리의 삶 또한 한차원 높아집니다. 고 한창기 선생님께서 벌써 40년전에 백자로 된 반상기를 일반인들에게 보급했던 이유도 그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서는 도자기 사발에 옻칠로 한 단계 더 높인 모습을 선보였죠."

달항아리 뒤로 늘어뜨린 고운 색색깔의 천들의 자태는 한광석씨가 직접 천연염색을 한 무명들이다. 그는 우리 나라의 무명이 아주 곱고 질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밀려 외국산 무명들이 들어오게 되어 이제는 저런 고급의 고운 무명천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지난 29일 전시회 오프닝에서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좌 : 살풀이.김운선(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교육조교)
우, 위 : 김주영(비파연주가)
우, 아래 : 강권순(국악인. 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
 지난 29일 전시회 오프닝에서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좌 : 살풀이.김운선(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교육조교) 우, 위 : 김주영(비파연주가) 우, 아래 : 강권순(국악인. 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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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지켜야할까? 왜 지켜야할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지고의 가치에 마음을 내어주는 일인 듯하다. 무엇이든 그냥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다. 마음을 내지 않고서는 사소한 것도 잊히니 말이다.

아주 약간은 이지러진 채로 순백색의 훤한 달, 깊고 그윽한 눈동자를 닮은 달.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풍성해진다. 전시장 곳곳에 둥실둥실 떠올라 사람들의 구겨진 마음을 환하게 펴지도록 어루만져주는 달이 되고 있다


태그:#달항아리, #옻칠, #이종헌, #박노연, #뿌리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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