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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글입니다. 신분노출의 우려가 있어서 익명으로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올해 여름, 아들은 군대에 갔다. 우리나라의 20대 남자 아이들은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숙제를 마치자는 마음으로 입대를 한다.

입영 하루 전날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들어오는 모습에 남편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내가 어디 멀리 가냐, 중학교 1학년 때도 그 추운 겨울에 특전사 훈련을 지원해서 제일 잘했다고 상까지 받아오지 않았냐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논산에서의 4주 훈련을 마치고 몸은 힘들지만 다들 잘해주어 지낼 만하다고, 내가 어디든 적응을 잘하지 않느냐며 나의 걱정 어린 눈빛에 괜찮다고 씩씩하게 답해 주었다.

훈련소 5주 기간 동안에도 반장을 맡으며 표창장을 받아 나의 한줌 우려마저 한방에 씻어주었다. 어렴풋이나마 군대가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데 자대배치를 받고 첫 외출 시 아들은 부대를 나오자마자 한숨을 쉬더니 "아, 들어가기 싫다"라는 말을 했다.

갇혀 있는 생활에 막내의 역할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까 이해는 됐지만 아들이 혹여 맘이 약해질까 봐 그 말을 무시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외출을 나올 때는 전보다 더 어두운 표정을 지었기에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남편에게도, 모임에서의 남자들에게도 애가 군대 가서 너무 힘들어 한다는 말을 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 아직 철들려면 멀었네. 그 정도도 못 참고 어디서 어리광이야."
"그러면서 사람 되는 거야. 사회에 나오면 또라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리 예방 주사 맞는 거지."
"나 때는 어디 아프다고 하면 아픈 곳을 집중적으로 때려서 아프다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도 못 했어. 요새는 때리지도 않고 군대가 얼마나 좋아졌어."
"군대를 무슨 MT 정도 온 줄 아나본데 까라면 까야지 어디서 자존심을 부려. 이런 해이해진 정신으로 나라를 어떻게 지켜."

내 말을 동정의 가치도 없는 나약한 아들을 가진 엄마의 하소연으로 치부해버렸다. 나는 그들의 말이 맞을 거라 믿었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아들... 가슴이 철렁

입영 하루 전날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들어오는 모습에 남편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입영 하루 전날 빡빡 깍은 머리를 하고 들어오는 모습에 남편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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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죄송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아들의 눈빛에 초점이 없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아들을 나약하게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고 아들에게도 실망스러웠다.
아들은 가방에서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은 종이를 꺼냈다.

순서까지 매겨가며 15가지를 적어왔으나 그 중에서 막내로서 당해야 하는 서러움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나머지 것들은 놀라왔다.

웃으면 안 된다는 규율을 정해놓고 일부러 아들이 있는 앞에서 온갖 웃긴 상황을 연출한 후 아들의 입 꼬리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표정관리 못 하는 거 봐라, 이렇게 규율을 못 지키니 군대 생활을 제대로 하겠냐 했다. 아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 잘 모르겠다, 죄송하다 하면 꼭 가르쳐줘야 아냐, 네가 어디서라도 배워 와야지, 모른다 하면 다냐, 면박을 주었다.

하루의 일과를 알리는 일을 막내가 하는데 알리러 가면 선임은 내가 지금 그거 받을 상황이냐며 여자 친구랑 전화해야 한다고 나가서 1시간가량 아들을 아무것도 못하게 세워둔다. 취침 전에도 일부러 다른 곳에 가있어 잠을 못 자게 한다. 내무반에 TV가 틀어져있어 눈길을 돌리면 너는 TV를 너무 좋아한다며 비꼬고 그 말을 들은 선임들도 떡잎부터 안다는 등 한마디씩 거든다.

아들은 대학교 신입생 때도 선배들의 신고식을 호되게 겪었다. 다른 1학년들이 선배들을 피해 학교 밖 카페에 숨어있을 때도 아들은 특유의 싹싹함으로 선배들에게 형, 누나 하며 졸졸 따라다녀 나중엔 미워할 수 없는 껌딱지 같은 놈이라는 별명을 받으면서 위기를 넘겨왔었다.

아들은 이곳에서도 잘 웃고 인사 잘하고 싹싹하게 대하면 상황이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행동 뒤에는 여지없이 '저 빈 우유갑 같은 녀석', '속은 텅텅 비어있는데 인상만 좋은 척 한다'고 하니 자기가 어떤 식으로 선임들을 대해야 하는 건지 혼란이 왔다고 한다.

같이 들어온 동기와 아들 둘 앞에서 누구는 하는데 누구는 못하네 하며 사사건건 비교했다. 휴식 시간에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쉬지 못하게 일을 시키고 너는 자존심 부릴 자격도 없어, 뭐든 X나 못해 하며 막말을 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일들을 계속했다. 잠은 한시도 제대로 못자고 어떤 진통제를 먹어도 두통이 낫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 차라리 맞으면 좋겠어요, 몸이 힘든 건 얼마든지 참겠는데 선임들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견딜 수가 없어요."

이곳만 아니면 어디든 좋으니 전출을 하고 싶다는 말에 나는 네가 전출을 한다면 문제가 있어서 왔다는 딱지가 붙을 것이고 그 곳 또한 안전한 곳이라는 보장이 있겠냐 했다. 언론에 말하고 싶다는 것에도 당장은 영웅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중에 꼬리표가 되어 자기 조직을 폭로한 사람이라 여겨질까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힘든 상황보다 돌발 행동에 따라올 아들의 뒷일이 걱정이었다.

선임에게 한번 말해보지, 라는 나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며 선임들은 다 똑같고 괴롭힘만 더 당할 거라 한다.

겨우 20대 초중반, 선임들은 왜 그랬을까

죽어도 그 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설득할 수 없어 남편과 나는 부대 지휘관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죽어도 그 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설득할 수 없어 남편과 나는 부대 지휘관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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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이 엄습했다.

군대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때 요새 같은 군대에서 자살이라니, 나는 그 아이가 관심 병사일 거라고, 원래 문제가 있는 애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유사한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 사회에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출구를 마련했을 텐데 그 아이들은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 방법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임들이 왜 이런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들도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이고 자기의 행동에 의문을 가하기보다는 자기도 그렇게 당하고 견뎠으니 너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 학습되고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군기를 유지하는 방법이라 여기며.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그것을 견디면 진짜 남자가 되는 것일까. 요즘의 아이들은 자신의 인격에 대해 존중받는 것이 옳은 일이라 배워왔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은 군대라 해도 용납할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온 아이들이다. 완장을 채워주면 그 사람의 인격이 나온다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윗사람의 선의와 인격에 기대어야 하는가. 급식이 좋아졌다고, 체벌이 사라졌다고, 또 피자가 나온다고 군대가 좋아진 것이 아닐 것이다.

죽어도 그 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설득할 수 없어 남편과 나는 부대 지휘관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애들이 커서도 부모가 일을 해결하려 드는, 평소에 경멸하던 부모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아들을 군대가 도와줄 수 없다면 부모라도 나서야 했다.

의외로 지휘관은 우리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고 아직도 그런 악습이 있는지 몰랐다고 깜짝 놀라며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아들도 몇 번씩 만나 설득시켜주셨다. 아들은 지휘관의 말씀을 믿고 부대로 복귀했다.

아들의 뒷모습은 내 눈물에 가려 뿌옇게 보였다.


태그:#군대, #아들,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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