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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과 의병장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서훈의 잘못된 관행은 언제 바로 잡을까?"

이는 '제78회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을사늑약일)을 맞아 평생 의병 연구를 해온 이태룡 박사가 던진 말이다. 순국선열의날은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대한민국 정부 법정기념일이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순국선열의날을 맞아 독립유공자를 포상했다. 이번 포상자는 모두 66명으로, 건국훈장 독립장 1명, 건국훈장 애국장 19명, 건국훈장 애족장 26명, 건국포장 9명, 대통령표창 11명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의병 공적으로 포상을 받은 이는 20명뿐이다. 산남의진 3대 의병장 최세윤(崔世允)의 아들로 부친과 함께 의병투쟁을 벌이다가 피체되어 종신징역형을 받고 옥중에서 순국한 최산두(崔山斗) 등 19명과 대통령표창 1명이다.

사단법인 의병정신선양중앙회(회장 오일환) 의병연구소장인 이태룡 박사는 30여 년 동안 의병연구와 함께 의병을 발굴하여 서훈 신청을 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8월 <통감부래안(統監府來案)>(규장각 소장)을 역주하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름으로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다.

을사늑약(1905년) 이후 일제통감부(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 통감은 대한제국 의정부 총리대신에게 문서를 보냈는데, 그것이 <통감부래안>이다. 경술국치 이전인 1909년 11월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사형이 선고된 의병장과 의병 108명에 대하여 통감이 사형집행을 명령하고 이를 통지한 문서다. 종전까지는 대한제국의 황제가 가졌던 생살권을 일제통감부 통감이 행한 것이었다.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 이태룡 박사.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 이태룡 박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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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명의 의병장과 의병을 발굴해 신청"

이태룡 박사는 108명 중에 아직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본 29명을 포함해 210명의 의병장과 의병을 발굴하여 지난 10월 10일 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회장 김시명) 이름으로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하였다.

여기에는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권(의병항쟁재판기록)에 나오는 1500여 명의 판결문 중에 5년 이상의 징역이나 유형을 받은 의병(장) 179명, 그리고 '심남일 의진'에서 활약하다가 순국한 1명, '문석봉 의진'에서 활동하다가 대구감영 옥에 구금됐다가 탈옥했던 1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 박사는 9년 전(2008년)에 서훈을 신청했던 828명 중 서훈을 받지 못했던 179명에 대한 자료를 보완했다. 이들은 전사 1명, 교수형 42명, 종신징역 16명, 징역 15년 26명, 징역 10년 24명, 그리고 징역 5년과 유형 5년 이상 수형을 받았던 의병(장) 등이다.

그는 판결문 등 거증자료 1556매를 이번에 제출했다. 이 박사는 "신청자 가운데는 파옥 탈출했던 의병장 등 순국했거나 감옥에서 오랫동안 고초를 겪은 의병(장)이어서 서훈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이 박사는 서훈 신청하면서, "전체 210명에 대하여 서훈 신청서를 제출하오니, 보훈 심사를 조속히 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담당자의 일손을 덜어드리기 위해 그 내용을 파일로 담아드리오니, 파일을 복사하신 후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로 전해주십시오"라 하기도 했다.

서훈 신청에 대한 국가보훈처 회신은?

이태룡 박사는 지난 10월 말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를 통해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에서 보낸 다음과 같은 회신문을 받았다.

"명단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210명은 국가보훈처에서 자체 발굴하였거나 후손 등에 의해 신청되어 국가보훈처에서 관리하고 있는 분들로 확인되었으며, 이 중 8명(이대호, 방돌이, 박학수, 박정현, 김성언, 김창순, 이창명, 김덕원 선생)을 2018년 광복절 계기 공적심사에 부의하고, 결과는 2018년 8월 중순경 공문으로 안내해 드릴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이밖에 14명은 이미 포상 또는 포상 예정인 분들이고, 20명은 이미 발굴되어 심사대상자로 지정된 자입니다. 나머지 168명은 '동일인 여부 불분명',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 '행적 이상', '입증자료 미비' 등의 사유로 보류된 분입니다. 이분들은 지속적으로 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태룡 박사가 낸 의병 서훈 신청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회신문.
 이태룡 박사가 낸 의병 서훈 신청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회신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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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신에 대해, 이태룡 박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개별적인 자료 미비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두루뭉수리하게 회신한 것을 보니, 아직도 정부가 의병 서훈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광복 후 건국공로훈장은 정부수립 직후부터 있었다. 정부는 1949년 이승만·이시영 등 제1공화국 정부요인에게 서훈을 주었고, 1962년에는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이강년(李康秊)·이인영(李麟榮), 3·1혁명의 손병희(孫秉熙)·한용운(韓龍雲),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김구(金九)·차리석(車利錫), 광복군(독립군) 김좌진(金佐鎭)·지청천(池靑天) 등에게 서훈을 주었다.

이어 1963년, 1968년, 1977년 간헐적으로 서훈이 있었고, 그 뒤부터 점차 해마다 2~3차례씩 서훈이 있었다. 2017년 11월까지 건국훈장 1만 795명, 건국포장 1219명, 대통령표창 2816명 등 총 1만 4830명이다. 그러나 1962년 이후 55년 동안 의병 공적으로 서훈이나 포장·표창을 받은 자는 불과 2576명뿐이다.

의병 서훈 실태는 어떨까?

이태룡 박사는 "1895년 이후 의병은 일제에 의한 왕비 참살에 반발하여 '국수보복(國讐報復)'의 기치로 일어섰던 전기의병과 을사늑약으로 인하여 '국권회복(國權恢復)'을 위해 떨쳐 일어섰던 후기의병(을사·정미의병으로 세분하기도 함)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들 의병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는 없으나 학계에서는 3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그들의 행적은 의병장이 남긴 일기나 문집, 일제의 기록에 옹근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 "다만 1907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일본 경찰이 간여한 토벌횟수 1976회, 의병수 8만 2767명, 순국자 5721명에 이르고, 서울・경기도 지역을 뺀 5명 이상의 의병부대 연인원이 14만 1815명이었다는 일제의 기록과 경술국치 전후 전국의 감옥에 수감되었던 4만여 명 대부분이 의병이었으니,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왜 의병 공적으로 서훈을 받은 자는 전체 독립유공자 17%에 불과한 것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제일 큰 것은 서훈 심사제도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의병투쟁 내용을 남긴 의병장은 20여 명에 불과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멸실됐고, 국가보훈처는 심사자 입장이고, 서훈 신청은 유족이나 학자들의 몫이다 보니 그렇다"고 했다.

의병 서훈 심사가 소극적이라는 것. 이 박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병 유족이나 학자가 서훈 신청을 하고, 정부는 이를 심사하는, 매우 소극적인 제도 탓이 컸다"고 했다.

그는 "의병 순국자 중에는 후손이 없거나 그 유품이 없는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눈을 피해 의병활동을 숨겼다가 멸실된 경우, 일부러 폐기한 경우가 매우 많은 데다가 유족이 의병연구가가 아니기에 서훈신청서에서 요구하는 거증자료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태룡 박사는 "게다가 의병투쟁에 나섰을 때 대부분 가명을 썼기에 이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도 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서 발굴해야 한다는 것. 이 박사는 "정부는 적극적인 발굴자 입장이 아니다 보니, 의병투쟁을 벌였다가 피체되어 수형을 받은 판결문에 다수의 인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훈신청자만 서훈이 주어지다 보니, 같은 판결문 속의 의병장·의병에 대한 서훈이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 년 따로 이루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공적도 바로잡아야"

이태룡 박사는 "의병 발굴이 시급하고, 잘못된 공적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태룡 박사는 "광복이 된 후 의병이 남긴 자료와 일제의 비밀기록인 <폭도에 관한 편책>이 1968년부터 1990년에 걸쳐 <한국독립운동사> 의병편 12권으로 번역되어 나옴으로써 많은 의병들의 행적이 드러났다. 의병들의 재판기록이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권으로 나와 있으나 그 속에 나오는 의병장·의병조차 40%가 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 서훈자 전체를 대상으로 재심사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적폐청산 가운데 하나는 기존 서훈자 전체를 대상으로 재심사에 가까울 정도로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

그는 "종전에 역사적 사료에 의거하지 않았거나 거짓 자료에 의해 서훈이 이루어진 허위공적을 가려내야 하고, 공적이 과다하게 포장돼 있는 자들도 가려내 공훈록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공적에 비해 공훈록에 공적서술도 미약하거니와 훈격이 낮게 포상된 사람들은 바로잡아야 한다"며 "거짓 내용으로 잘못된 서훈이 많고, 또한 공적의 일부만 반영되어 훈장 등급이 현저하게 낮게 된 경우가 많으며, 공훈록에 공적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지적을 한 지가 오래 되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태룡 박사는 지난 6월 국회에서 김혜영·전현희 의원 주최로 열린 "나라위한 의병, 보훈정책의 방향"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의병 서훈 실태와 바람직한 보훈정책의 방향'이란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공청회나 토론회, 학술발표회에서 아무리 대안을 제시해도 바뀌지 않은 오랜 관행은 반드시 고쳐야 할 적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의병, #국가보훈처, #이태룡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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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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