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촛불시위 1주년이 지났다. 일부 언론들은 촛불시위가 벌어진 1년 후까지도 한국이 태극기와 촛불의 두 편(?)으로 나뉘어 있다고 외친다. 그들은 나라가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며, 두 개의 나라를 바로 통합하기 위해서 포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한마음이 아닌, 갈등이 벌어져 분열되고 있는 나라는 매우 나쁘다는 전제하에 통합을 주문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항상 촛불과 태극기의 통합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것이 옳고 그른가를 말하기 전에,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일을 주문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었다.

어떤 세력을 포용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우선, 정치적 이념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들은 보수주의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답답해서 태극기 집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보수주의 정치를 원해서 태극기 집회를 했다면,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이 태극기 집회를 방문했다가 '배신자'라는 이유로 봉변을 당하는 일은 발생할 수 없었어야 한다. 또한, 정책으로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과 자살률은 처참한 수준이지만, 그들은 더 나은 노인 복지와 연금 제도를 위해서 태극기를 든 것이 아니다.

태극기 세력은 단순한 보수 정치 세력이 아니다. 태극기 집회는 어떤 집회보다도 참여자의 평균 연령이 높다. 또한 그들은 박근혜를 불쌍히 여긴다. 이 모든 갈등의 핵심은 박근혜이기에, 박근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에 눈물 흘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이 사라질 수 있을지, 국민의 통합이 가능할지 아닐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2017) 포스터. 영화적 완성도와 별개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2017) 포스터. ⓒ 단유필름


박근혜는 잘못된 대통령이라 말하는 영화

나는 박근혜와 관련된 영화가 상영중이라는 말을 듣고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들과 같은 영화를 보러 가는 중이냐고 물었다. 상영관에 들어가자 나와 친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객이 노인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박근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고 관객들이 분노와 통탄에 빠져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들은 혀를 쯧쯧 차며 온몸으로 경멸을 표현했다.

내가 보러 간 영화는 <미스 프레지던트>였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태극기 세력이 지닌 분노와 동정의 근원을 찾는 영화다. 제목의 '미스'는 Miss가 아닌 접두사 'Mis'다. 영화는 박근혜가 잘못된 대통령임을 대놓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이런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지세력을 조롱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나레이션도 없고, 카메라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분노한 시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카메라가 습격당하는 장면은 있다.) 영화는 담담히 태극기 세력의 마음을 찍어서 관객에게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부는 압도적이다. 한 할아버지가 방에서 정성스럽게 외관을 다듬는다. 그는 거울을 살펴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 그리고 그는 절을 지내는데, 그가 머리를 숙이는 곳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국민교육헌장을 끊임없이 외웠다는 그는 박정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골 지역에 살고 있지만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씨 일가의 추도식을 위해서다. 김기춘과 이정현의 화환이 카메라에 담긴다. 수많은 사람이 박정희를 위해 머리를 숙인다. 이들은 곧 태극기 세력이 된다.

영화는 이윽고 어린 박근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씨 일가의 어린 모습으로 추정컨대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해맑게 뛰어노는 박근혜와 남매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가족의 모습이다. 태극기 세력은 나이가 많다. 그들은 과거에 굶주린 배를 부여잡았고,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는 그들에게 배를 굶지 않게 한 마법과도 같은 기적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살려준 박정희 대통령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없애준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들은 흰 한복을 입고 항상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육영수 여사도 존경한다.

그러나 흑백 화면 속의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에게 저격을 당해 숨지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잃은 자녀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육영수가 가졌던 자애로운 여성의 이미지는 박근혜가 대신했다. 영화 속 과거의 박근혜는 장녀로서 수해 지역을 방문하며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는 선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정희와 육영수, 딸 박근혜의 가족 구도는 박정희와 딱한 딸 박근혜의 구도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육영수 여사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 장녀가 아버지까지 잃고 만다. 부모를 잃은 딸에게 사람들은 무엇이든 주려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주었다. 그들은 딸을 위한 정서적 후견인이 되었다. 딸이 잃어버린 가족 대신 후견인이 되어 딸을 감정적으로 돌보려 했다.

박근혜는 물론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는 유신과 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더라면 나라가 망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박근혜의 횡설수설한 논변에 시간을 할애한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와 마찬가지로 문장 구조가 엉망이라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박근혜가 보이려 한 것은 언어구사력이 아닌 박정희를 잇겠다는 절절한 마음이었으니 태극기 세력에게는 아름다운 논설이었다. 그렇게 정치인 박근혜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국정농단의 당사자가 된 딸 박근혜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2017) 한 장면. 우리는 이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2017) 한 장면. 우리는 이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 단유필름


영화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런 딸 박근혜가 국정농단의 당사자가 되어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부모를 잃은 불쌍한 딸에게 야권과 언론이 비판을 가하자 후견인들은 깊은 분노에 빠져들었다. 불쌍한 고아 박근혜를 돕기 위해 그들의 정서적 후견인들이 총결집했다. 이것이 태극기 집회다. 후견인들은 연사들의 선동적인 연설을 들으며 태극기를 흔든다. 영화 초반부에 나왔던 할아버지도 집회에 참석한다.

내 눈앞에 있는 화면 속에는 언론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서 혼절할 듯한 친박 단체 회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든 시위자들을 공격하고, 욕설하며 자신들의 진심을 표현했다. 극장에 앉아있는 내 옆에는 영화 속 언론을 보고 혀를 차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영화 속에서 JTBC가 등장하자 영화관 관객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JTBC다. JTBC야", "세상에"라고 경악하며 분노와 통탄에 빠져서 고통스러워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박근혜는 탄핵이 가결된 뒤 파면되었고 영화도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다가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뉴스를 확인하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를 출당시켰다는 소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태극기와 촛불의 통합은 불가능하며, 근대 국가를 유지하며 태극기 세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자는 없다. 영화는 태극기 세력이 사랑하는 단란한 박씨 가족의 모습에 많은 장면을 할애한다.

태극기 세력이 원하는 것은 가족의 장녀 박근혜의 귀환이었다. 문세광의 저격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돌보았던 가족의 믿음직한 맏딸이 귀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서적 후견인들이 홀로 남겨진 딸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남겨진 딸이 임기를 마친 대통령으로서 열렬한 환호를 받고, 먼저 간 아버지와 함께 아름다운 가족으로 남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귀환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반하는 일이며, 자연인 박근혜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국정농단 재판이 끝나야 판가름 날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추존될 가능성도 사라졌다. 노정객 홍준표는 박근혜의 이용가치가 다 되었다고 생각되자 박근혜를 당에서 내쫓았다.

거리에서 본 식당의 TV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로 흘러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녀의 아름다운 가족상을 남기기 위해서 모두가 희생할 수는 없다. 태극기 세력의 진심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날이었다.

박근혜 박정희 육영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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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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