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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채소밭을 일구는 돌카 엄마. 해발 3500고지에서 나오는 그야말로 고랭지 채소밭이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채소밭을 일구는 돌카 엄마. 해발 3500고지에서 나오는 그야말로 고랭지 채소밭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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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중심지 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배낭을 챙겨 다시 돌카네 집으로 돌아왔다. 돌카네 엄마가 짧은 영어 한마디로 나를 반겨 맞았다.

"웰컴 브라더!"
"땡큐 씨스터!"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았기에 누이라 불렀다. 그녀 옆에 서 있던 검은 피부의 인도 청년이 배시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남인도에서 온 쌍케 쿠마르라고 합니다."

돌카네 사랑방에서 함께 지내기로 한 턱수염이 덥수룩한 청년이었다. 그는 티베트 불교 최대 법회인 칼라차크라에 참여하기 위해 라다크에 왔다며 선한 웃음을 내보였다. 나는 그의 웃음이 매력적이라며 치켜세웠고 그는 내 수염이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텁수룩한 수염 때문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물었더니 올해 스물다섯이란다. 나의 출생연도를 알게 된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와 나이가 같습니다."
"쌍케, 당신은 나의 친구입니다. 친구는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나는 나의 두 아들과도 친구처럼 지냅니다. 쌍케, 당신은 나의 친구, 도스터입니다."
"어? 인도 말을 아시는군요."
"몇 단어에 불과합니다. 친구, 도스터는 북인도 문시아리에서 아이들에게 배운 말입니다."
"그랬군요. 좋습니다! 송, 당신은 나의 친구, 도스터입니다."

우리는 만난 지 1시간도 채 안 돼 오래된 친구처럼 라다크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는 남인도 벵갈로그에서 엔지니어 생활을 하다가 휴직을 하고 7개월 동안 인도 전역을 돌아보고 있다 한다. 일주일 전에 라다크로 들어와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4천 고지의 호수, 판공초에 다녀왔다며 최신형 노트북을 열어 사진을 보여줬다.

히말라야 설산 녹은 물로 세수·설거지를 했다

북인도 청년 쌍케 쿠마르. 라다크에서 보름동안 함께 지냈다.
 북인도 청년 쌍케 쿠마르. 라다크에서 보름동안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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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위해 밀가루를 반죽해 만두를 만들고 있는 디스킷 돌카
 저녁 식사를 위해 밀가루를 반죽해 만두를 만들고 있는 디스킷 돌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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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돌카네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넣고 만든 모모, 만두였다. 식사 전에 돌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 하길래 내가 모모를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 모모를 요리했던 것이다.

돌카네 주방에는 수도 시설이 없었다. 돌카는 설거짓감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집 옆으로는 작은 도랑이 휘돌아 나가고 있었는데 돌카는 도랑에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했다. 내가 옆에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돕겠다고 했더니 극구 만류한다.

"이 마을 곳곳에 수로가 있던데, 이 물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저기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린 물입니다."

마을 휘돌아가는 이 물로 농사를 지을 뿐 아니라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양치질은 물론이고 세면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먹는 물은 마을 곳곳에 설치해 놓은 수동 펌프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리스킷 돌카의 남동생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다.
 리스킷 돌카의 남동생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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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가 중심 인물로 출연한 라다크 영화 DVD
 파드마가 중심 인물로 출연한 라다크 영화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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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었던 꽃들이 지듯 히말라야 설산 저만치에서 선분홍 빛으로 피어오르던 노을이 한순간 사라지고 돌카네 집안으로 들어서는 어둠을 따라 낡은 중고차 한 대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훤칠하게 생긴 사내가 자동차에서 내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내밀었다. 돌카의 남동생 파드마였다.

하루 종일 돌카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 러고 보니 둘카 엄마는 남편 없이 농사를 지어 두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딸, 돌카는 델리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파로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고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라고 한다.

"정말요? 라다크에서도 영화를 찍나요?"
"영화제작사가 세 개나 있습니다."
"모두가 캠코더가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프로덕션입니까?"
"그럼요."

놀라운 일이었다. 라다크 중심지 레에서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지만 영화사가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평균 고도가 4천 미터에 이르는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에도 영화사가 있다니 그것도 세 개씩이나,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생산해내는 인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인도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하여 '발리우드'라고도 한다. '폼생폼사'로 거들먹거리며 등장하는 잘 생긴 주인공의 주먹질과 총질에 피 튀기는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하지만 발리우드는 그 잔혹한 장면들을 선남선녀들의 춤과 노래로 순화시킨다. 춤과 노래가 기본으로 뒤섞여 있는 인도영화는 섹시하지만 성을 상품화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추잡하지는 않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관능미 넘치는 현란한 춤사위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성적인 자극보다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여줬다. 우리는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리는 물로 설거지를 하고 세면을 해야만 하는 라다크의 작은 마을, 간혹 저만치 산 능선에서 야생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집안에서 DVD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모두 다 라다크를 배경으로 찍은 1시간 40분 정도 분량의 영화였다.

파드마가 중심인물로 출연한 두 편의 영화 역시 인도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가 기본양념처럼 뒤섞여 있었다. 그중 한 편은 1970년대 한국의 영화처럼 스토리며 화면 구성이 순박하리만큼 어설픈 영화였다. 산골 마을에 도시 청년이 들어와 시골 처녀와 사랑에 빠져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전형적인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어설픈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등장인물이 종종 화면에 잘려 나올 정로도 카메라의 구성 또한 어설펐다.

하지만 다른 한 편은 언어소통과는 상관없이 영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잘 짜져 있고 스토리 전개가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썩 재밌는 영화였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 같습니다."
"인도에서 열 손가락에 손꼽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잘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제작하지 않나요?"
"아니오."
"라다크를 현지 사람들이 직접 다큐로 제작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요."

나는 한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었다며 "라다크의 자연환경과 생태 역사 문화 등을 장기간에 걸쳐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말해놓고 나서 괜히 아는 척을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섯 시,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돌카 엄마는 불상과 달라이라마 존자(학문과 덕행이 높아 존경받는 불제자를 높여 이르는 말) 사진이 모셔진 성소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만트라를 암송한다. 돌카 역시 집안 청소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듯 만트라를 암송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자비심으로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발랑 아똥" 외치는 돌카 엄마, 무슨 뜻인가 했더니...

옛집에서 소를 키워 젖을 짜고 있는 돌카 엄마.
 옛집에서 소를 키워 젖을 짜고 있는 돌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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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을 널어놓고 있는 돌카 엄마. 거름과 연료로 쓰이고 있는 소똥은 라다크 농가에서 소중한 자산이다.
 소똥을 널어놓고 있는 돌카 엄마. 거름과 연료로 쓰이고 있는 소똥은 라다크 농가에서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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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식빵과 우유로 아침을 챙겨 먹은 파드마는 인도 청년 쌍케와 함께 낡은 자동차를 몰고 칼라차크라 행사장으로 떠났다. 나는 칼라차크라 행사장에는 오후에 가기로 했다. 라다키 사람들이 어떤 농사를 짓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돌카 엄마를 따라나섰다.

마을 한쪽에 돌카네가 현재 살고 있는 새집을 짓고 이사 오기 전, 돌카네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다는 낡은 이층짜리 흙집이 있었다. 거기에 두 마리의 소가 있었다. 그녀는 소에게 여물을 주고 나서 소젖을 짜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줄곧 마셨던 짜이 차에 넣은 우유였다. 소젖을 적당히 짜내자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양보한다. 그녀는 송아지가 젖을 빠는 동안 소똥을 손으로 뭉쳐 밭 가장자리의 볕 좋은 흙벽돌 위에 올려놓는다. 소똥을 말려 연료로 쓰기 위해서다.

외양간 일을 마친 돌카 엄마는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디론가 앞장서 걷는다. 걸음걸이가 가볍고 빠르다. 골목길 흙 담장 아래로 도랑물이 흐르고 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히말라야 산맥들이 겹겹이 들어서 있는 평균고도 3천500고지의 라다크에서 물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채소밭에 도착하자마자 돌카 엄마는 막아 놓았던 물꼬부터 터놓는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내려온 물이라 그런지 물이 차다. 작물이 제대로 자랄까 싶을 정도로 차갑다.

두둑 없이 평지에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밭고랑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는 우리의 농사법과 반대로 이곳에서의 두둑은 물을 흘려보내는 물길에 불과하다.
 두둑 없이 평지에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밭고랑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는 우리의 농사법과 반대로 이곳에서의 두둑은 물을 흘려보내는 물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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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라다크 시골마을의 채소밭은 특이하게도 한국에서처럼 두둑(밭과 밭 사이에 경계를 만들려고 흙을 약간 불룩하게 쌓아올린 언덕)을 높여 작물을 키우지 않는다. 모든 작물이 평평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밭고랑 사이로 물을 흘려보내는 우리의 농사법과 반대로 밭작물 사이에 두둑을 높여 물길을 만들었다. 평평한 밭이다 보니 물길이 잘 스며든다. 그만큼 땅이 폭신폭신하게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대략 삼백여 평 돼 보이는 밭에는 양파. 무, 치커리, 케일, 시금치, 감자, 완두콩 얼갈리 배추, 고수 등 열 가지가 넘는 채소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그중에 몇 가지는 혼작하고 있다. 거름은 겨우내 장작 난로에서 나온 재와 소똥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채소밭에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았다는데 벌레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이른 봄과 늦가을 날씨처럼 낮에는 땡볕이지만 밤에는 춥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다가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가 아닌, 여물을 먹은 소의 똥과 같은 질 좋은 거름을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미생물로 가득한 땅, 병충해를 이겨낼 지력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도 참새가 있다. 참새뿐 아니라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샛노란 새 한 마리가 삽 위에 앉았다가 날아간다. 꽃 피운 채소들이 많다 보니 벌 나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막혔던 물길이 터져 나와 채소밭을 축축하게 적시자 따가운 햇볕에 축 쳐져 가던 채소들이 싱싱하게 살아난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돌카 엄마의 일손을 거들었다. 그녀가 야채를 솎아내면 나는 그것을 받아 풀과 함께 한쪽에 모아놓았다. 뿔 달린 소를 몸짓으로 보여주며 먹는 시늉을 하자 그녀가 그렇다며 말한다.

"발랑 아똥!"

라다키어로 '발랑'은 소를 뜻하고 '아똥'은 먹는다는 뜻이라고 그녀가 몸짓으로 보여준다. 소먹이는 이뿐 아니다. 보릿대며 집안에서 야채를 손질하다가 버리는 것이나 과일을 먹고 남은 껍질을 모았다가 소먹이로 준다.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소는 그걸 먹고 우유를 내준다.

나의 순환 농사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솎아낸 채소나 새들이 쪼아 먹은 토마토를 닭에게 주고 그 닭으로부터 질 좋은 달걀과 계분, 거름으로 다시 농사를 지었듯이 이곳에서는 소가 그런 순환 농사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소는 닭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똥은 거름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연료로도 훌륭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먹이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알아듣는 라다키어, '발랑 아똥'를 난발하며 흙 묻은 풀과 채소를 내게 휙 던져주며 물에 씻으라고 한다. 대충 물에 씻어 소 먹이를 정리해 놓자 그녀는 그늘 밑에서 쉬라며 손짓한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짓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손짓에는 따듯한 마음이 담겨 있다. 땡볕의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그늘막을 양보했던 노인이 그랬고 네팔 국경 도시의 버스 터미널에서 기진맥진했던 내게 자리를 양보하던 거지 수행자의 손짓이 그랬었다.

뿌리가 과일처럼 달콤 시원한, 총각무처럼 생긴 다라크 채소.
 뿌리가 과일처럼 달콤 시원한, 총각무처럼 생긴 다라크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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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총각무처럼 생긴 작은 무 하나를 씻어 내민다.

"아똥, 아똥!"

저것을 뭔 맛으로 먹나 싶었는데 거듭 먹으라고 해서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아주 달콤했다. 자꾸만 먹으라고 권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치 뿌리 작물의 과일을 먹는 것 같다. 고구마만큼이나 달콤한 데다가 고구마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시원한 맛이 있다.

찬 기운을 이겨낸 이른 봄과 늦가을 채소는 며느리도 안 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맛이 좋기 때문이다. 찬 밤공기에 히말라야의 설산이 녹아 흘려 내려오는 찬물을 받아먹고 자라 그 맛이 더 한 것 같다. 너무 맛있다며 환하게 웃었더니 그녀가 기분 좋게 웃는다.

그늘 밑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무를 먹다가 문득 북인도 코사니가 떠올랐다. 그곳 역시 밭 가장자리에 그늘진 나무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밭 주변에 나무가 사라졌다. 그늘이 지는 만큼 작물의 소출이 줄어든다 하여 그 몹쓸 새마을 운동과 함께 논밭 가장자리에 삼삼하게 서 있던 나무들을 베어 버렸다. 하여 그늘막도 없이 죽어라 논밭에 매달려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인도 시골마을 곳곳에서 보았듯이 밭 주변에 나무를 그냥 놔둔다. 나무 그늘은 밭일에 지친 쉼터가 되고 나뭇잎이 무성한 가지를 쳐내 소먹이로 쓰고 있다. 또한 그 가지를 연료로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녀는 작은 알타리 무 같은 채소를 한 다발 들고 어디론가 다녀온다.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온 모양이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다발 더 뽑아 밭 옆 담장에서 누군가를 큰 소리로 부른다. 잠시 후 한 사내가 담장 너머에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민다. 그에게도 역시 한 다발의 채소를 건네준다.

내 어릴 적 우리 마을에서도 그랬다. 대보름 같은 날, 어쩌다 시루떡을 하게 되면 엄니는 앞집 뒷집 키 작은 담장 너머로 이웃사촌들에게 떡 쟁반을 돌렸다. 그 떡 쟁반은 비워져 돌아오지 않았다. 그 집에서 맛 나는 무엇인가가 담겨 왔다. 라다크의 작은 시골 마을 돌카네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 엄니이기도 했다.

담장 너머로 채소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돌카네 이웃사촌.
 담장 너머로 채소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돌카네 이웃사촌.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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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라다크 , #쌍케 쿠마르, #영화배우, #도랑물, #라다크 채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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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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