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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마을이장이 또박또박 동네방송을 합니다. 방송내용이 여느 때와 다릅니다.

"김장철을 맞이하여 오늘 칼갈이 봉사활동을 나옵니다. 면사무소로 나오셔서 무딘 칼을 갈아 쓰시길 바랍니다. 무료이니까 많이들 가져오세요."

김장철을 맞이하여 칼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장철을 맞이하여 칼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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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듣고 난 아내가 내게 말을 건넵니다.

"여보, 우리도 이참에 칼 좀 갈면 좋겠네. 집에 있는 칼이 죄다 소 잡아먹게 생겼어요!"

예전 어머니는 칼이 무뎌 부엌일 할 때 음식물이 잘 썰리지 않으면 속이 터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칼이 소 잡아먹겠다!'는 말로 아버지께 칼을 갈아달라셨습니다. 어머니 잔소리에 아버지는 삽자루에 숫돌을 걸치고 쓱싹쓱싹 칼을 갈았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거친 날 선 칼은 어머니의 얼굴을 환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아내 등쌀에 집에 있는 식칼이며 과도 몇 자루를 가지고 주민자치센터로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어떤 분은 집에 있는 칼을 많이도 가져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칼갈이를 구경합니다. 모두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칼갈이를 구경합니다. 모두 놀라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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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일 하시네요. 잘 안 드는 칼을 이렇게 새 칼처럼 갈아주신다니 너무 좋아요. 칼갈이 장인이신가 봐요?"
"장인까지는 아니구요. 제가 개발한 기계로 여러 단계 거쳐 세밀하게 손을 보니까 쉽게 갈리는 것뿐이에요."

봉사활동을 나온 권영옥(65세)씨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여러 장비를 가지고 칼을 갈아냅니다.

칼갈이는 연삭기부터 시작하여 움직이는 거친 숫돌, 고운 숫돌 등 여러 단계를 거쳐 갈아냅니다. 칼갈이 기계가 세 대가 있는데 칼의 종류에 따라 거치는 단계도 다릅니다. 혼자서 기계를 옮겨 다니시며 참 열심이십니다. 맨 마지막 단계는 가죽 띠에 칼날을 문지른 것으로 끝을 냅니다.

날이 선 칼을 가지고 종이를 잘라보며 시험을 해봅니다. 종이가 면도날처럼 잘려나갑니다.

칼을 갈러 나온 사람들이 마술 같은 신통방통한 칼갈이 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야! 이건 면도날 저리 가라네!"
"이런 칼로는 회를 떠도 안성맞춤이겠어!"
"암만 갈아도 들지 않았는데, 우리 칼 임자 만났구먼!"

권씨는 주민들의 칭찬에 아껴두었던 말을 합니다.

"나 이래 봬도 KBS, MBC, SBS 등 방송에만 열 번도 넘게 나왔어요! 아마 보신 분들도 있죠? 공짜라고 건성으로 갈지 않으니 잘들 쓰세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봉사하는 권씨의 마음이 좋아 보입니다. 생색내기가 아닌 진정한 마음이 깃든 이런 봉사가 참다운 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개발한 기계로 칼갈이 봉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자기가 개발한 기계로 칼갈이 봉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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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씨는 선친께서 운영하던 기계수리센터를 가업으로 이어받아 30년 넘게 각종 기계를 수리하고 제작한 경험으로 칼갈이 기계를 직접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수 제작한 기계를 가지고 면 단위를 순회하며 주민들에게 무료로 칼을 갈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칼갈이를 하는 동안 노하우가 기계 옆면에 쓰여 있습니다.
 칼갈이를 하는 동안 노하우가 기계 옆면에 쓰여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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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세 대로 정밀하고 갈고 다음어 잘 드는 칼이 재 탄생됩니다.
 기계 세 대로 정밀하고 갈고 다음어 잘 드는 칼이 재 탄생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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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앞두고 마을 이장단에서 주선하고, 면사무소 직원들이 함께 거들면서 이루어지는 칼갈이 봉사활동이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져온 칼도 손질이 끝났습니다. 함께 봉사 오신 분께서 신문지에 말아서 싸줍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잘 드는 칼로 김장하게 되면 우리 집사람이 되게 좋아하겠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태그:#봉사활동, #칼갈이, #칼갈이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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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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