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포스터

ⓒ tvN


tvN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에 이어 수목 드라마 자리에 <부암동 복수자들(이하 복수자들)>을 편성한 tvN의 주중 미니시리즈 배치는 다분히 시청률 타깃을 의도한 편성처럼 보인다.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이 20, 30대 청춘들을 타깃으로 한 '헬조선 청춘 백서'에 가깝다면 배턴을 물려받은 <복수자들>은 중년층의 현실을 담고자 한 것이다. 이같은 차별화 편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구도는 이와 같다. 시청률 4%를 바라보는 <이번 생>에 이어 <복수자들>도 첫 회 시청률 2.9%, 2회는 두 배에 가까운 4.63%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입가구 기준)

<복수자들>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음 온라인 만화대전 장려상'을 수상하고 웹에 게재될 당시부터 화제작이었다. <복수자들>은 영화 <작업의 정석> 각본을 맡은 황다은, 김이지 작가와 MBC 드라마 <골든 타임> 권석장 감독의 손을 거쳐 tvN의 수목 드라마로 안착했다.

같이 복수하실래요?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복수'라는 말로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더구나 중년의 세 여성이 모여 각자의 복수를 함께 도모한다는 신선한 설정만으로도 솔깃해진다. 부암동의 카페에 모인 세 여인은 재계 서열 10위 건하그룹의 딸이자 재벌가 첫째 며느리 김정혜(이요원 분)의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는 청에서부터 모의를 시작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가 여인이 생선 장수에게 "같이 복수하실래요?"라니.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정혜는 재벌가의 여인이지만 아기도 없다. 심지어 이제 남편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통보까지 받은 상태이다. 남편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남편의 자식이라는 녀석과 시시덕거리기에 정신이 없다. 그에게 아들이 생긴다는 건 재벌가 후계 구도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포기하지 못한 아기의 방은 듣도보도 못한 남편의 자식 방이 돼 아기용품들이 바닥을 뒹군다.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다정한 부부지만 정혜는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복수가 필요한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나선다.

그녀의 눈에 띈 첫 번째 동지는 바로 남편과 함께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만난 이미숙(명세빈 분)이다. 카페에서 이미숙을 보고 정혜는 확신한다. 그녀가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라는 것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청한다. "함께 복수하실래요?" 그러나 순종적인 미숙에게 그런 정혜의 청은 청천벽력이다. 안하무인 정혜는 이제 곧 교육감 선거에 나설 남편의 폭력행사를 폭로하겠단다. 그래서 정혜는 울며 겨자먹기로 '복수자 클럽(이하 복자 클럽)'에 나섰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도 정혜와 미숙은 서로 모임을 통해 남편들끼리 아는 처지다. 반면 세 번째 멤버 홍도희(라미란 분)의 등장은 생뚱맞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날 뻔한 두 사람은 그 대가로 차를 태워주고 '홍도 생선'이라 부르며 인연의 끈을 맺기 시작했다.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으로 애를 태우는 홍도희에게 '복수 클럽'은 동아줄과도 같았다. 화끈하고 통 큰 도희는 격이 다른 삶에도 불구하고 곧 친언니처럼 정혜와 미숙을 품으며 클럽 멤버로 합류한다.

그리고 3회, 주부만이 이 클럽의 멤버가 될 수 있다는 정혜의 냉정한 배척에도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던 청일점 이수겸(준 분)이 복자 클럽 제4의 멤버가 됐다. 정혜에게 수겸은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굴러들어온 돌멩이 같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수겸은 처음부터 정혜에게 호의적이었다. 수겸 역시 그 나이 되도록 코끝 한번 비추지 않았던, 오로지 돈과 승계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친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자 클럽의 멤버가 되기를 '고소원(본디부터 바라던 바)'한다. 그리고 수겸은 도희 딸을 성추행한 교장을 향한 복수를 성공시키며 '복자 클럽'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합류한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

tvN <부암동 복수자들> ⓒ tvN


'가부장제'에 대항한 복수

재벌가의 맏며느리와 교육감 후보의 아내, 생선 가게 아줌마 그리고 재벌가의 혼외 자식. 이들 네 사람을 엮이게 만들어 준 복수의 교감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물론 네 사람 모두 복수를 하고 싶은 건 맞지만 이 이질적인 네 사람을 묶어주는 건 '가부장제'의 공고하고도 거대한 위계다. 재벌가의 맏며느리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혼외자식을 들이는 일조차 '통보' 받는 굴욕을 겪어야 하는 정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벌가의 아들로 입성하게 된 수겸은 바로 그 재벌가라는 가문으로 윤색된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미숙은 번듯한 교육감 후보의 아내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남편에게 학대당해 그의 손길 한 번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돈과 명예로 휘감은 '가부장'의 권력이 힘없는 여성인 그녀에게 폭력적인 '가해자'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도희에겐 '가부장'이 없지 않냐고? 아니다. 도희에게 '남편'이 없다는 건 남자로 이어지는 가부장제 조직에서 '도희'와 그녀가 보호해야 할 자녀들이 이미 '루저'라는 증거다. 도희 아들 희수(최규진 분)는 아버지가 없다고, 엄마가 생선 장수를 한다고, 돈이 없고 기댈 언덕이 없다고 같은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희수는 이를 참다못해 '자기방어적 행동'으로 친구를 밀쳤지만 '학폭위(학교 폭력 위원회)'에서 가해자가 된다. 또 기간제 교사인 딸 김희경(윤진솔 분)은 학교의 웃어른(?)인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가부장제'적 모순의 현 실태다.

혼외 자식의 입성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정혜, 가정 폭력에 무방비한 미숙 그리고 뻔히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 엄마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도희는 남성 권력으로 체계화된 사회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그녀들은 각자의 힘으로 돌파해 나갈 수 없는 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꿈꾸며 모여들었다. 서로의 아픔을, 고통을 그녀들의 계급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여성이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서슴지 않고 '동지'로 뭉칠 수 있었다. 돈과 사회적 지위를 앞선 고통과 공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복수가 드라마로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상당수가 이런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녀들은 '복수'를 꿈꾸지만 아직 헛발질이 더 많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부암동 복수 클럽의 '전도양양(前途洋洋)'한 복수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부암동 복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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