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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살이 된 의젓한 꽃냥이 마루
▲ 마루 이제 3살이 된 의젓한 꽃냥이 마루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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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의 장난꾸러기 고양이 마루
▲ 마루 어린 시절 의 장난꾸러기 고양이 마루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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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주인 목덜미도 팍 물 수 있다고, 심술이 나면 쥐를 잡아 온다고, 개와 달리 주인을 모른다고, 어머니는 곧잘 말씀하셨다. 거의 평생을 농촌에서 사신 어머니는 고양이를 싫어하신다. 그런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식탁 위에 앉아서 도도하게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에 질겁을 하시는 건 당연한 일.

나 역시 고양이를 키울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를 겪어야 하는 생명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어항에서 놀던 작은 물고기가 죽어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하물며 강아지나 고양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러던 내가 3년 전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이가 고양이를 간절히 키우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거의 3년 가까이 고양이 얘기를 줄기차게 했다.

"전 강아지는 별로예요. 고양이가 좋아요. 제가 다 키울 수 있어요. 키우는 데 돈도 별로 안 든대요. 제 용돈으로 해볼게요. 네, 엄마?"

아들의 집요한 부탁에도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살면서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그리 많은가, 아이가 저렇게 몇 년째 원하는데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주변에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얻고, 고양이 카페도 소개받고, 발품도 팔아 고양이 한 마리 데려오게 되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파는 것은 마음에 걸려서, 개인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낳은 2개월 된 새끼를 데려온 것이다. 아이와 아이 이모가 같이 가서 데려왔는데, 낚싯대 장난감에 가장 활발하게 놀던 새끼가 눈에 띄어 데려왔다고 했다. 그게 마루다. 지금은 막 세 살이 넘은 러시안 블루 수컷 고양이.

아이 품에 안겨 처음 우리 집에 온 고양이 마루는 조용히 침대 아래나 의자에서 오래 자고 살금살금 다녔다. 다칠세라 조심조심 쓰다듬으면, 고롱고롱 기분 좋다는 소리를 자주 냈다. 3년 동안 살며 아기 고양이는 이제 다 커서 잠을 잘 때를 빼고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아침 5시에 나에게 와서 몸을 살살 비비거나 툭툭 꼬리로 건드리며 간식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주방이나 화장실이나 화장대나 쫓아다니곤 한다. 이제는 외출에서 늦어지면 고양이가 나를 기다릴까 생각날 만큼 마루는 우리 집의 막내아들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제 자식이 예쁘고 귀하면, 남의 자식도 예쁘고 귀한 건 당연한 일. 아들을 키울 때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눈에 들어온 것처럼, 마루를 키우니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가끔 길에서 스치는 길고양이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멀리 산책길을 나섰다가도 고양이를 보면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고양이 간식을 들고 다녀야겠다 생각도 했지만, 또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 것은 아니어서 아직 빈손으로 다닌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길고양이가 거의 없고 건너편은 오래된 아파트여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이 좀 보였다. 그러던 차에 맞은편 아파트의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 도시에 재건축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어, 사람들은 석면과 같은 발암물질 때문에 걱정도 많고 심각한 갈등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재건축조합 측에서는 석면 제거 계획서 제출에 따른 허가를 받았으니 곧바로 진행한다는 입장이고, 아이 엄마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철저한 석면 조사 및 철거 계획 보완을 요구하며, 등교 거부 사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석면 철거 과정에서 기준치 이상 검출되어 잠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재건축 현장의 고양이 출입구
▲ 고양이 출입구 재건축 현장의 고양이 출입구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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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현장의 고양이 출입구
▲ 고양이 출입구 재건축 현장의 고양이 출입구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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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단축하는 것이 바로 돈과 직결되므로,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최소한의 법 준수와 빠른 공사 시행을 강행하는 재건축 조합의 모습에 못마땅한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공사장 옆을 지나가다가 높이 솟은 가림 벽 아래 구멍을 발견했다. 용도가 무엇인지 하도 궁금해서 다가가서 보았다.

'고양이 출입구'라고 쓰여 있었다. 고양이 출입구? 순간 그쪽 근처를 오가던 길고양이들이 떠올랐다. 가림벽이 아파트를 다 감싸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들을 위한 출입구가 생긴 것이다. 그 배려에 감동하여 한참 출입구를 들여다보며 앉아 있었다.

아파트 재건축은 주민들의 바람이기도 하고, 여러 여건상 필요해서 진행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도시 같은 경우, 순차적으로 차근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거주민들이 너도나도 자기가 사는 단지 재건축을 원한다면, 시에서 나서 순서를 정해줄 수도 없는 일일 터. 재건축 상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석면과 같은 위험물질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규정보다도 더 엄정하게 제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의 논리로 인하여, 서두르고 대충할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어도 길고양이들을 위한 출입구를 내줄 정도의 생명 배려가 있다면, 석면 철거 문제도 같은 마음으로, 생명 우선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재건축이 안전하게 진행되어, 우리 아이들도 길고양이들도 건강하게 어울려 사는 동네가 되길 바라고 있다. 고양이 출입구는 그게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징표다.


태그:#길고양이, #고양이 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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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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