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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첫째는 5살, 둘째는 3살. 요즘은 삶의 여유를 찾고, 엄마 노릇을 제법 흉내내고 있지만 첫째가 태어났을 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는 부부의 기쁨이고, 엄마는 타고난 모성으로 자연스럽게 좋은 엄마가 되는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직장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엄마가 되었다. 시댁과 친정은 너무 멀었기에 가까운 지인이라고는 남편뿐인 지역에서 나홀로 육아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육아를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게 뭐 어떠랴 싶었다. 시설 잘 갖춰진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조리원에는 아이를 잘 돌봐주시는 간호사분들이 계셨기에 어려움을 몰랐다. 온화한 미소로 다정하게 아이를 돌보며 행복한 엄마가 되는 일만 남았구나 했었다.

문제는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안으로 돌아온 날부터 시작했다. 모르겠는 것이 너무 많았고, 2시간마다 깨서 젖을 물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내 몸 구석구석이 아프기 시작했다. 잠을 못자니 예민해지고, 아이의 머리를 몇 시간씩 받치며 수유를 반복하니 손목은 너덜너덜하여 통증이 심했다.

손목만 문제가 아니었다. 젖몸살이 와서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을 떨어야 했는데 이런 극심한 고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안고, 달래고, 수유하고, 재우고.. 내 몸을 돌볼 겨를 없이 힘든 나날이 무한 반복되었다. 누구의 도움없이 나 혼자 아이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체의 고통은 정신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분명 아이는 뱃속에서 나왔는데 내 배는 축쳐져 들어갈 줄 몰랐고, 쳐다보기도 싫을만큼 징그러운 튼살 자국들이 남았다.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인해 내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아빠가 되었는데 아무런 신체적 변화가 없는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몇 시간씩 젖을 물리다보면 젖소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졌다.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내가 먹을 미역국과 반찬을 해놓고 출근했고, 퇴근한 후에는 이보다 더 잘 할 수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봤다. 회음부 수술자국, 엄청난 튼살들, 툭 튀어나온 배꼽, 짙게 남은 임신선을 비롯한 변화된 내 신체 모두를 그대로 사랑한다며 위로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진심어린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내 우울감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를 도닥여준 선배 맘들

엄마는 타고난 모성으로 자연스럽게 좋은 엄마가 되는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엄마는 타고난 모성으로 자연스럽게 좋은 엄마가 되는 줄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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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엄마, 지역 맘카페 가입했어?"

맘카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조리원 모임에서였다. 이 지역에서 엄마로 산 지 몇 년 된 선배 엄마들이 이제 막 엄마가 된 내게 물었다. 육아용품 거래도 활발하고, 지역의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아이를 키울 때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조언을 해준 거다. 그날 바로 선배 맘들이 말해준 지역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는 정말 다양한 게시물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엄마들도 있었다.

"우울할 땐 어떻게 하세요?? 아이 때문에 집밖에는 못 나가는 상황인데 너무 우울하고 눈물나네요. 몸도 너무 아프고... 산후우울증인지... 사는 낙이 없네요. 수유 중이라 술도 못 마셔요 ㅜㅜ"

(댓글) "진짜 그런 상황이면 미칠 거 같죠 ㅜㅜ 옛 생각 많이 나네요... 어떻게든 외출해야 해요! 그 공간에서 벗어나야 그나마 좀 나아지는 듯해요."

(댓글) "에구~~ 그땐 그럴 시기예요. 힘내세요. 애들 어릴 때 혼자서 힘들게 키웠던 생각이 나네요. 고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이 데리고 병원 가기도 어렵고... 어느 순간 힘든 시기가 지나갑니다."

(댓글) "저 큰애 때 진짜 미칠 것 같아서 이불로 입 틀어막고 소리 질렀어요.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너무 우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선배 맘들은 공감을 해줬고 힘을 내라고, 조금만 지나면 나아진다며 다독여줬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내가 유별난 거 아니구나' 위로 받았다. 남편이 해주는 달콤한 사랑의 표현보다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다는 엄마들의 하소연이 더 큰 힘이 되었다. 엄살부리고 있는 거 아니라고, 미칠만큼 힘든 거 정상이라고...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사회에서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엄마는 위대하고, 강인하고, 사랑이 넘치는 신성한 존재로만 배워왔다. 출산 후에는 임신 전의 몸매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아이들이 힘들게 해도 "아이들이 다 그렇죠. 너무 예뻐서 참을 수 있어요~^^"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와 무한 희생정신이 생기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막상 엄마가 되어 경험해보니 배신감이 들고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들은 이렇게 힘든 일을 그저 말없이 내색도 안 하고 참았다니!! 어쩜 우리 사회는 이 힘든 일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하다니!! 아름답게 포장하기만 했다니!!

세상에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거나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정보가 넘쳤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엄마들, 엄마들이 읽어야 할 필수 육아서, 아이 출산 몇 달 만에 임신 전의 완벽한 몸매로 복귀한 연예인들, 산후, 육아 우울증을 앓는 엄마들을 향한 나약하다는 손가락질까지.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됨은 엄마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사회는 그것을 당연시했고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처진 뱃살이 그대로인 것은 운동을 게을리한 내 탓,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 것도 공부가 부족한 내 탓, 몸이 아픈 것도 나약한 내 탓. 내 고통은 부족한 내 탓인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더 괴로웠다. 세상 엄마들은 다 훌륭한데, 나만 모성애가 부족한 이기적인 엄마 같았다.

하지만 맘카페에는 사회가 들려주지 않았던, 진짜 엄마들의 목소리가 모여 있었다. 나도 힘들다고, 당연한 거라고, 엄살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따뜻한 공감과 위로는 그 자체만으로 참 고마웠다. 덕분에 산후우울증은 지나갔고, 아이는 건강하고 밝게 잘 자랐다.

"소파에 모나미 펜 지우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이후에도, 아이가 자라는 동안 꾸준히 맘카페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로의 삶은 기대 이상의 삶이어서 늘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어느 날은, 아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펜으로 쇼파에 낙서를 해서 당황했는데, 맘카페에 해결방법을 묻자마자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려 금방 해결한 적도 있다.

 맘카페는 엄마들의 정보 집합소이자 학습의 장이다.
▲ 초보맘의 질문과 선배맘의 답변 맘카페는 엄마들의 정보 집합소이자 학습의 장이다.
ⓒ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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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이나 주말에 진료 가능한 소아과가 어디 있는지, 아이가 뻥튀기를 너무 좋아해서 직접 튀겨주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가능한지, 유아 전집 중고서점이나 각종 육아용품 할인 매장은 어디 있는지, 이번 주말 아이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등 상황에 따라 궁금한 것을 물을 때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고마운 선배 맘들이 많다. 맘카페는 엄마들의 정보 집합소이자 학습의 장이다.

또 맘카페에는 벼룩, 교환, 드림 활동이 활발하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가까우니 거래가 쉽다. 판매만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순수하게 나눔의 의미를 실천하는 분들도 많다. 물건을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이런 활동은 환경을 생각해도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마음씨 좋은 선배 맘에게 휴대용 유모차를 무료로 나눔받았다.

"세탁을 못해서요. 욕하고 편하게 사용하실 분께 드립니다" 하여 "욕 안 하고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하며 받았다. 우리 아이들이 그 유모차를 탈 때마다 그분의 위트가 생각난다. 고가의 물건을 무료로 주면서도 더 깨끗하고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 오염된 상태를 상대방이 기분 상해할까 염려하는 마음, 나눔과 배려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 나누는 일은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인데, 맘카페에는 그런 분들이 참 많다.
 
최근에는 맘카페를 통해 인연을 맺은 독서토론 동아리에 푹 빠져 산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습니다" 라는 글에 감동받아 댓글로 소통하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다.

주말 외식을 어디서 할지,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도움되는 정보는 뭔지, 요즘 우리 지역의 주요 뉴스는 뭔지, 나와 비슷한 다른 엄마들의 고민은 뭔지 등 카페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된다. 맘카페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맘카페는 '무개념 맘충'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엄마와 아이를 혐오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엄마들을 '맘충'이라는 말로 낙인찍으며 사회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눈총 받는다. 엄마 노릇은 힘들고 외롭기까지 하다.

지난주에는 '맘카페에 찍히면 망한다'고 말하는 동네 식당·카페 주인의 기사가 나갔고, 이는 '맘카페 갑질 극혐', '사이비 종교집단 같음', '적폐맘' 등 엄마와 맘카페를 향한 혐오로 이어졌다.

맘카페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내용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 기사는 엄마들과 맘카페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맘카페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내용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 기사는 엄마들과 맘카페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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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허위, 과장, 왜곡으로 마녀사냥하는 행위,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부당한 요구를 하는 갑질은 분명 잘못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잘못된 문화는 맘카페나 엄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커뮤니티에서 죄없이 명예훼손 당하는 사례는 많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상식 밖의 '무개념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맘카페는 수십만 명의 엄마들이 모여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일부' 있을 뿐이다.

마녀사냥이나 갑질 문화, 또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무개념 행동은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반성하며 풀어가야 할 문제지 엄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상인들의 입장에서 소수 맘카페의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하며 마치 맘카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마치 엄마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더욱이 기사에서는 맘카페 엄마들이 지역상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면이 더 많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식당, 카페 정보 대부분이 좋았던 경험에 대한 추천이고, 엄마들의 자발적인 추천은 홍보가 되어 또 다른 엄마들의 소비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비방글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 맛집 소개 코너 대부분의 엄마들은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비방글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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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이용하는 맘카페에서는 원칙적으로 비방글을 금지한다. 글의 내용에 따라 활동정지나 강퇴 처분을 받고, 그런 글들에 대해서는 엄마들 스스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오히려 지역 상인들이 맘카페에 엄마인 척 가입하여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거나 경쟁업체를 비방하는 경우가 있다. 순수하게 엄마들의 추천이나 조언이 필요한 상황에서 광고에 낚이게 만든다. 알바를 고용하여 여러 개의 아이디로 '적극 추천', '너무 좋아요' 후기를 이어가는 업체도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맘카페의 신뢰가 떨어진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진짜 엄마들이 가짜 엄마들에게 낚이지 않으려면 진위를 파악할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인들을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무개념 상인들!"이라고 상인집단 전체를 혐오하진 않는다는 거다.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말로 엄마들의 활동영역을 좁히며 집안에만 있으라고 숨통을 조이더니, 이제 그것도 모자라서 온라인 활동 공간마저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답답하고 억울하다. 정말이지 내가 이러려고 엄마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 뿐이다.

오늘도 나는 맘카페를 거닌다. 사회가 아무리 요즘 엄마들 이기적이고 맘카페가 문제라고 욕해도 나는 안다. 이곳에는 남의 가게 망하게 하는 글보다 맛집 추천과 칭찬의 글이 훨씬 더 많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글보다 따뜻하고 고마운 글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태그:#맘충 혐오, #맘카페 혐오, #혐오 기사, #맘카페에 찍히면 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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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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