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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피추는 크게 신전, 왕과 귀족들의 주거구역, 서민들의 구역, 농경지 구역의 4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 페루의 ‘마추피추’ 마추피추는 크게 신전, 왕과 귀족들의 주거구역, 서민들의 구역, 농경지 구역의 4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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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온 것이지만,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목록이 있다. 버킷은 중세에 사형을 할 때 올가미를 목에 씌우고 뒤집어놓은 양동이 위에 올라가 양동이를 차면 죽게 되는 것(Kick the Bucket)에서 나온 말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미국사람들이 꼽은 1위 관광지가 마추픽추(Machu Picchu)다.

운이 좋게도 마추피추를 두 차례나 찾게 되었다. 첫 번째는 2008년 8월이었다. 그때는 밤새 비가 내려 어려움이 많았다. 두 번째는 2017년 6월 말에 배낭여행으로 찾게 되어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2008년에는 마추피추를 방문하기 위해 호텔도 우루밤바에 있는 우루밤바 호텔을 정했었다. 숙소를 출발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내내 날씨가 흐렸다. 그런데 기차역에 도착하면서 햇살이 비추었다.

 
2017년에는 쿠스코의 호텔에 투숙한 후 여행사 에이전시를 통해 예약을 했다. 새벽 4시에 택시로 광장으로 가서 다른 일행들과 합류한 후 20인용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기차역에 도달하였다. 관광 기차는 1시간 30분 정도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25분 정도를 속리산과 유사한 고불고불한 능선을 몇 차례 넘으면 마추픽추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비용은 만만찮다. 1인당 총 280불이나 지불해야 한다. 페루 정부는 마추픽추로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기차역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온 미녀 배낭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그러자 옆에 지켜보고 있던 기차승무원이 자신도 함께 끼고 싶다고 다가왔다.
 
마추피추 가는 기차 앞에서 필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배낭여행객, 페루역무원. 두 미녀 여성과는 기차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친해졌다.
▲ 관광열차 마추피추 가는 기차 앞에서 필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배낭여행객, 페루역무원. 두 미녀 여성과는 기차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친해졌다.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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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미국 배낭여행객 커플, 칠레 커플. 모두들 새벽 4시쯤 호텔에서 나왔는데 얼굴이 그렇게 까칠하지는 않다. 세계는 하나다.
▲ 마추피추 가는 관광기차 안 필자, 미국 배낭여행객 커플, 칠레 커플. 모두들 새벽 4시쯤 호텔에서 나왔는데 얼굴이 그렇게 까칠하지는 않다. 세계는 하나다.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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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로 향하는 여정은 길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우루밤바의 올란타이탐보 기차역(Ollantaytambo)에 도착하여 기차를 1시간 30분 타고 마추픽추역에 하차하여 마추픽추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로 올라간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마치 경춘선을 타고 춘천을 향해 가는 분위기가 나지만,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그리고 물살 세게 흐르는 푸른 물의 파노라마는 마치 백담사 계곡을 연상시켰다.

즉 마추픽추로 가는 페루 관광 기차에서 보이는 풍경은 경춘선의 경치와 백담사 계곡의 맑은 물을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백담사와 다른 점은 유속이 빠르고 급하게 흘러가는 점이었고, 물빛 또한 석회질이 가미되어 있어 하얀 포말이 일어나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나면서 앞을 행해 질주하는 관광열차의 경적 소리는 마치 엄마 소를 찾아 헤매며 엄마 소를 부르는 송아지의 애절함이 배 나왔다.

계곡의 주변 경관은 아열대 고원지대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선인장과 용설란이 곳곳에서 생장하면서 잘 자라고 있었다. 선인장의 행렬은 푸른 계곡물과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태생이 열대성 기후에 잘 자라게 운명을 타고났으니.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길쭉길쭉 늘씬하게 8등신 미인처럼 10여 개의 선인장 손이 잘 뻗어나서 하늘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또 다른 선인장도 계곡과 부조화를 이루며 이국정취를 유발하고 있다. 익조티시즘(Exoticism)이 이방인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마치 미국의 애리조나 주의 산타페 지방에 놀러 온 듯한 착각에 젖어 든다. 기차 안은 소란하다. 주로 유럽에서 온 젊은 커플들이 많다. 서로 담소를 나누면서 셀카를 찍기에 바쁘다.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아열대 지방의 또 다른 특징인 풀도 거의 없는 막막한 표정의 민둥산과 교목과 관목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울창한 산림을 형성하고 있는 산과 구릉이 이색적이기도 하다. 계곡 주변에는 보랏빛의 꽃잎을 뽐내는 이름 모를 꽃과 민들레와 유사한 노란색 꽃잎이 푸른 하늘과 부조화를 이루는 선인장과 함께 여행객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한국과 미국은 여름철이지만 여기는 6월부터 8월이 한겨울이다. 겨울철에 피는 꽃이라 들꽃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매화꽃처럼 싱그럽기만 하다.


이러한 자연의 속삭임과 유혹의 손길이 따뜻하기만 하지만 좌석 맞은편의 페루 연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 혼돈을 일으킨다. 페루사람들은 마추픽추 계곡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져서 권태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트랙킹 등 여행에 지쳐 수면에 빠져든 것일까? 어찌 되었든지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멀리서 6박 7일의 힘든 일정을 소화해내며 찾아온 방문객으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관광열차의 티켓 비용은 편도요금만 해도 미 달러화로 30불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탄 일반 열차 말고 유럽의 부자들을 태운 우등열차를 마추픽추로 오는 여정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열차의 이름은 하이램 빙험(Hiram Binghum)으로 명명되어 있었다. 그 열차의 비용은 편도에 300달러라고 한다. 그리고 열차는 2~3칸밖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데 비해 레스토랑 수준의 식당 칸은 2칸이나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차의 속도도 천천히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맥주나 와인 몇 잔을 나누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설비되어 있다고 한다. 기차 칸에 새겨져 있는 기차 명을 보는 순간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빙험은 바로 마추픽추를 1911~1912년 발굴하여 오늘날 세계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아 대성황을 이루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1909년 최초로 마추픽추를 찾아왔다. 그가 처음 이곳을 찾은 이유는 고고학적 탐험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전설적인 남미의 해방운동가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행적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사람으로 아르헨티나의 마틴 장군과 마찬가지로 남미 인디오들의 해방을 위해 온몸을 바쳐 투쟁한 인물이었다. 빙험은 쿠스코에서 잉카의 신성한 계곡을 거쳐 우루밤바 강을 따라 탐구를 하던 중 우연히 마추픽추 계곡의 마을에서 한 농부를 만나게 된다. 아르티가(Arteaga)라는 이름의 이 농부는 빙험에게 마추픽추산의 정상에 있는 잉카유적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라 마추픽추 계곡의 동네를 방문하게 된 빙험 일행은 길에서 한 소년을 만나 그의 인도로 험난한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올라가 드디어 마추픽추를 발견하게 된다. 다시 1911년 펀드를 모아 예일대학교의 공학교수 등 6명의 전문가집단을 꾸려 마추픽추를 찾은 빙험 일행은 열악한 탐사장비와 텐트에 의존하여 야영을 하는 등의 고난을 겪은 후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조사보고서를 학계에 발표하게 되었다.

평지가 없는 마추피추의 자리적 한계를 극복하여 비탈길을 빙 둘러가며 축대를 쌓아 농경지를 조성했다. 잉카인들은 이곳에 옥수수, 감자, 그리고 코카를 재배했다.
▲ 계단식 농경지 평지가 없는 마추피추의 자리적 한계를 극복하여 비탈길을 빙 둘러가며 축대를 쌓아 농경지를 조성했다. 잉카인들은 이곳에 옥수수, 감자, 그리고 코카를 재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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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행 관광열차의 내부는 반은 정방향, 반은 역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름방학 때와 겨울방학 등 성수기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따라서 표를 못 구한 배낭여행객들은 기차역 주변의 모텔과 민박 여인숙에 머물면서 표를 기다려야 한다. 운이 좋게 왕복 모두 순방향의 좌석을 얻어 계곡의 푸른 물과 흰 구름 그리고 깎아 지르는 절벽이 주는 풍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옆의 사람들이 기차의 차창으로 달려가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만년설의 봉우리가 가깝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잡고 달려가 셔터를 눌렀다. 다행히 정확하지는 않지만, 만년설이 드리워진 산의 동선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아무리 현대과학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눈만큼 제대로 인식하면서 포착할 수 있을까? 자연을 순진한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신의 섭리에 다가가는 것이 될 것이다.
 
계곡을 따라 버스는 굽이굽이 13군데의 급경사를 돌고 돌아서 산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굉장히 위험한 운전일 텐데 페루 정부가 잘 훈련을 지킨 베테랑 운전사들을 투입하여 안전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나면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페루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마추피추 정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든다는 말인가? 10굽이쯤 버스가 회전을 하자 버스의 정면에 돌의 예술인 '마추픽추'가 드디어 얼굴을 일부 내밀었다.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천상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라보고 있던 버스관광객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숨을 고르면서 자연의 신비로운 장단에 맞대응할 수가 없었다.
 
몇 구비를 돌아 깎아지른 듯한 마추픽추 계곡의 속 가슴을 엿보고 있는 사이 버스는 어느덧 정상의 주차장에 도달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국립공원 매표소 직원에게 표를 내고 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10분도 채 오르지 않아서 농경 지역과 테라스에 도달했다. 마추픽추 전망대에 서서 보면 크게 4구역으로 나눠는 마추픽추의 전체의 윤곽이 드러난다, 수줍음을 나타내는 새악시 모양이 아니라 자신 있는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헬스장을 막 들어선 남성의 몸매처럼 발가벗고서 와나피추와 마추픽추는 우리 앞에 수천 년을 감춰온 그 위용을 드러냈다.

농경 지역으로 오르기 전에 큰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배낭여행객 청년 한 커플과 잠시 조우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홀랜드라고 분명하게 답했다. 우리는 흔히 네덜란드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항상 홀랜드라고 답한다. 축구의 황제 히딩크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화제가 궁하지 않았다. 남녀 연인의 이름은 닉(Nick)과 도플레나였다. 히딩크를 아느냐고 묻자 당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히딩크는 국민적 영웅이며 이제 한국 명예 시민권을 획득했으니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녔다. 2017년에도 히딩크는 한국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국축구팀이 겨우 본선에 지출했고 슈텔리케 독일 출신 감독이 도중에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정교한 석조기술과 햇빛의 방향까지 고려한 신전 축조는 대단한 발상이다.
▲ 신성한 광장과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정교한 석조기술과 햇빛의 방향까지 고려한 신전 축조는 대단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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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와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축구대표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 사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2017년에 촬영한 이미지다.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에서 네덜란드축구팀은 탈락해서 충격을 주었다.
▲ 마추피추에서 만난 네덜란드 커플(2008) 히딩크와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축구대표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 사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2017년에 촬영한 이미지다.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에서 네덜란드축구팀은 탈락해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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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드는 또한 고흐의 고향이 아니던가? 화제는 계속 이어졌지만, 일행들과 만남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자연스럽게 두 연인이 화사한 웃음을 만면에 띠면서 응해주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개 사진 촬영에 적극적인 편이다. 하지만 페루의 전통적인 양치기 목동 복장은 한 중년 여인들은 카메라를 피했다. 아마도 아프리카 원시 부족 사람처럼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촌사람 특유의 수줍음 때문일까?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일반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다. 국가원수급인 대통령이나 각국의 수상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 등 국가적 귀빈들이 주로 활용한다. 둘째 방법은 트래킹을 하는 길이 있다. 주로 대학생 등 각국의 젊은 청년들이 활용한다. 마추픽추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동시에 3박 4일 걸리는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배낭여행객들은 미리미리 기차 티켓 등을 예약하지 않기 때문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트래킹 코스를 걷거나 기차역 근처의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고 있다. 배낭여행객들은 텐트와 담요를 준비하여 야영을 하기도 한다.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마추픽추에는 모기와 흡사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것을 즐기는 깔따구들이 들끓는다. 그래서 모기에게 헌혈도 하고 각종 벌레의 공격을 받으면서 새벽에 추위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끓는 젊은 피로 무엇을 이겨내지 못할 것인가? 또 대개 청년들은 연인끼리 오는 경우가 많다. 피가 끓는 그들이 추위와 모기 따위 곤충의 습격을 겁내겠는가?

셋째, 관광열차를 이용하여 마추픽추 역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의 입구인 중턱까지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트래킹과 관광열차의 경우 마추픽추 계곡의 맑은 물과 절벽의 절경을 즐기면서 올라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마추픽추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우선 인터넷을 중심으로 세계의 청년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들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황당하기도 할뿐더러 구체적인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해 단순히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유포만 되어있지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학설은 아니다. 다른 한 가지는 독일 포츠담 대학의 천문학과 교수인 롤 드 물러 교수의 견해이다. 물러 교수는 "천체의 위치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으로 별자리 위치에 대해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 유적은 기원전 4천 년부터 기원전 2천 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미 잉카제국이 형성되기 6백 년 전인 AD 800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는 이 학설의 타당성을 확인시켜준다.
 

나머지 한 가지는 전(前) 잉카문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15~16세기의 잉카제국의 번창과 붕괴를 주장하는 학설이다. 히함 비프만 교수의 견해로서 "마추픽추는 잉카문명의 전 단계로 잉카의 기원이며, 1300년경 버려진 것을 스페인 침공을 계기로 망코 잉카가 재점유하여 1543년경 다시 건설하였다"는 주장을 고집한다. 1912년 발굴결과를 최초로 발표한 빙험교수도 잉카 이전의 유물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비프만교수의 학설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잉카인들의 건축기술은 신비로울 정도다. 높은 산에서 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돌로 수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 도시 전체에 ‘수로’ 조성 잉카인들의 건축기술은 신비로울 정도다. 높은 산에서 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돌로 수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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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입구를 들어서서 왼편의 가파른 길을 오르면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길을 오르던 배낭여행객들이 모두 탄성을 지르고 사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가이드의 해설은 그 다 음문제다. 사실 가이드의 해설은 에스파뇰로 설명을 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 재미가 없다. 다만 화보를 가지고 설명을 할 때는 몇 마디 알아들을 수 있다. 망지기의 집 뒤편에서 조망하면 더욱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마추픽추 유적은 몇 가지 구역으로 나뉜다. 신성한 광장과 3개의 창문 신전, 코도르신전, 태양신전, 귀족 거주지, 농경지역과 서민거주지, 수로, 해시계 인티와타나 등이 볼거리이다. 신성한 광장에는 신전들이 모여 있으며 의식이 진행되던 장소로 추정된다. 정교한 석조기술이 한눈에 들어오며, 하지나 동지 때 창문을 통해 정확하게 햇빛이 들이치게 설계되어 있어 천문학적인 기능까지 겸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콘도르 신전(Temple of Condor)은 말 그대로 독수리 형상을 띤 신전이다. 자연석과 잉카족의 석조기술을 조합하여 날개를 편 독수리의 형상을 만들었다. 돌바닥에는 독수리의 머리와 부리를 만들어 넣었고, 이를 중심축으로 삼아 양편으로 거대한 크기의 독수리가 날개를 편 형상을 조각하여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고고학자들은 콘도르 신전에서 '인신공희 의식'이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산사람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잔혹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마야족들도 인신공희 의식을 했는데, 잉카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고대에는 천재지변에 인간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신의 입김이 강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계단식 논이고, 두 번째는 수로이며, 마지막으로 해시계를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잉카인들의 건축기술은 신비로울 정도다. 높은 산에서 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돌로 수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정교하게 돌을 깎아서 도시 전체에 물이 흐르도록 조성했다. 또 하나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해시계이다.

마추픽추 유적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앙부가 돌출되어 있어서 기둥의 그림자를 통해 해시계로 활용했다고 한다. 특히 그림자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 것으로 판단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잉카인들은 평지가 없고 구릉지로만 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탈길을 빙 둘러가며 돌 축대를 쌓아 농경지로 이용했다. 잉카인들은 주로 옥수수, 감자 그리고 코카를 재배했다. 계단농경지의 규모로 보아 대충 1만 명 정도의 인구를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잉카인들은 계급사회 속에 살았다. 그래서 왕과 귀족들은 주로 햇볕이 잘 드는 남쪽에 거주(Las Tres Portadas) 했고 서민들은 북쪽에 살았다. 계급에 따라 거주지 지대의 높낮이가 달랐다는 점도 흥미롭다. 왕과 귀족 그리고 신들을 모셨던 곳은 정교하고 고르게 돌을 쌓아 올린 주거지로 되어 있는 데 반해, 지체가 낮은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는 돌의 짜임새가 고르지 못하고 엉성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태어날 때 금수저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스페인어로 해설을 열심히 하던 페루 가이드는 거의 2시간 이상을 배낭여행객들을 몰고 다니다가 3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혼자서 마추픽추를 꼼꼼하게 둘러보고 역순서로 입구를 통해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하산하라는 지침을 두고 휑하게 사라졌다. 거기에는 꼼수가 있었다.

기차시간을 오후 8시 30분 이후로 잡은 것은 기차역 주변의 카페나 토산품 점 등에서 쇼핑을 길게 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하산하여 늦은 점심과 함께 맥주를 한잔했다. 그래도 기차 시간은 다가오지 않아 힘들었다. 마치 시골 간이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맥주를 한 잔 마시니, 새벽 4시에 나와 온종일 걸어 다닌 피로가 갑자기 엄습하였다. 20인승 버스를 타고 일행과 함께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밤 12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미니 버스에서 전 세계에서 온 배낭여행객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곪아 떨어졌다.

덧붙이는 글 | 여름방학을 활용해서 <잉카에서 마야까지>라는 테마로 거의 두 달 동안 12개국 라틴아메리카 배낭여행을 떠났다.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30시간이나 연속해서 밤버스를 타고 안데스산맥의 험난한 고산지대를 넘어서 도착한 곳이라서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갔다. 새벽 4시에 허름한 숙소를 출발해서 반죽음상태로 마추피추를 등반했다.



태그:#마추피추, #콘도르신전, #하이램 빙험, #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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