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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있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개인 SNS에 올렸다. 친구들이 무슨 일 있느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거창했나 보다. 내용은 그런 것이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연대하는 관계에서도 그렇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빚이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에 진 빚, 선배 세대, 후배세대에게 그리고 시민들, 동료, 아직 못다 이룬 꿈에 빚을 졌다.

일과 일을 엮어 나갈 때 이 사람에게 빚지고 저 사람에게 빚지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걸 갚아주고 다시 되돌려받거나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준다. 그래서 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대에서도 그렇다. 너에게 진 빚을 떠안고 서로에게 진 빚을 내가 먼저 갚아주겠다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
빚을 지지 않은 연대는 단단하지 않다.
빚을 지지 않은 운동은 뿌리 깊지 못하다."
본 글의 글쓴이 박진 다신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 본 글의 글쓴이 박진 다신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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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야 빌리면 김생민씨에게 '스뚜삣' 소리 들을 테지만, 관계는 언제나 빚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빚이 없는(아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그런 조직은 완결성이 높은 만큼 여지가 없다. 여지가 없으니 연대가 안 되고 연대가 안 되니 변화가 없다. 변화 없는 운동은 죽는 것이다. 운동권 아니랄까 봐, 요즘 사회운동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는 중이다.

운동하며 만난 무수히 많은 동료들. 그들 중 연분홍처럼 빚을 많이 주고받은 관계가 있을까 싶다. 그녀들과 처음 만난 곳도 현장이었다. 용산 참사 현장을 지키던 '레아'였겠구나. 김일란은 그곳에서 참사현장에서 활동가의 역할 고민을 늘어놓는 나를 처음 봤고, 인상 깊었다 말해주었다. 유독 타인 말에 귀 기울이는 눈빛 맑은 사람으로 그녀를 기억했다.

대추리에서 만난 넝쿨은 지금보다 훨씬 저돌적이었다. 카메라도 처음이었을 텐데 그걸 들고 매일 방송을 만들었다. 출연료 한 푼 없이 얼마나 많이 그녀의 다큐에 출연했겠는가. 역사는 젊었던 황새울 방송국의 처자들을 기억해주어야 할 텐데... <두 개의 문>을 만들 때, <공동정범>을 만들면서, <안녕 히어로>를 개봉하면서 인연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한영희 감독은 쌍용차 현장의 고정 출연자였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곳에 있었지만, 스스로가 그곳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현장의 동료로, 영화를 개봉하기 위한 조언자와 출연자 때로는 관객으로 만났다. 혁상의 카메라가 비춘 따뜻한 장면을 기억하는데, 규리가 자기 몸보다 큰 장비를 들고 알바 현장을 뛰어가는데...

그래 뭐라도 저들과 같이 해야 하지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연분홍 치마의 선수들. 그렇구나. '두개의 문' 개봉하고 나서 호평이 쏟아질 때 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출연했던 내 직업이 '영화배우'가 되어있었지. 16년 인권운동했는데 단번에 배우로 직업을 바꿔준 친구들. 내 친구 연분홍. 그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현장으로 달려온 카메라들 맨 앞에 그녀들이 또한 있었다. 먼저 연락을 했던가, 그녀들이 먼저 연락을 주었던가. 참사로 일그러진 시간들, 고통에 몸부림치는 타자를 뷰파인더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실체와 카메라 사이, 그 공간이 주는 거리는 가까웠을까, 멀었을까. 수없이 리와인드하면서 필름을 자르고 다듬어야 한다.

광장을 채운 사람들에게 슬픔 속에 길어 올린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짧은 집회 영상 3분, 5분, 8분짜리를 매주 만들어 댔다. 이번 주에 우리는 무엇을 말할까? 이번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호소할까? 사람들은 연분홍치마가 만든 영상을 몇 편의 영화들로만 기억하겠지만...

나는 안다. 집회현장에서, 또는 집회에 오게 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영상들을 만들어 냈는지. 제목과 작가도 기록되지 않는 그 영상들이 연분홍의 힘이고, 현장 다큐감독의 명작들이다. 상영 10분 전에 헐떡이며 배달되던 영상들... 그 짧은 선동과 감동이 이름 없이 빼곡히 쌓였다. 그리고 그들을 재촉한 불면과 과로의 밤들이 감독들의 건강을 해쳐왔던 것일까.

긴 겨울 지나면 초상(初喪)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것일까. 이명박근혜 9년 지나자 사람들이 스러져갔다. 부고로 찾아오는 난데없는 소식이 잦았다. 이 슬픔을 추수를 새도 없이 다른 슬픔을 만나야 했다. 일란 감독이 암 투병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박종필 감독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4.16미디어위원회를 책임졌던 일란 감독과 박 감독. 한 사람는 아프고 한 사람은 결국 떠났다. 그래서 결국 다시 빚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그들과 있었던 현장. 서로에게 빚을 진 관계들.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연분홍치마의 두 감독, 일란과 넝쿨은 미디어팀장으로 현장을 지켜주었다. 미디어팀에 함께한 감독들이 70명이다. 역사를 기록한 그들을 기억하고 싶다. 빚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것.

연분홍치마와 독립다큐 감독들이 처절한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만드는 짧은 영상들에 빚진 사람이다. 그들에게 제대로 노동의 값도 주지 못하면서 다그치는 빚진 사람이다. 그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만든 빚진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그 빚을 조금이라도 털어보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목요일 신촌에서 난생처음 사랑스러운 연분홍치마 후원주점이 있다. 그곳에서 빚진 사람들끼리 모여 술 한잔하면 어떨까.

 난생처음 사랑스러운 연분홍치마 후원주점
 난생처음 사랑스러운 연분홍치마 후원주점
ⓒ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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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사랑스러운 연분홍치마 후원주점

일시: 2017년 9월 28일(목) 오후 5-12시
장소: 하이델베르크하우스 신촌(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3-3, 지하1층)
문의: 02-337-6541 / ypinks@gmail.com

함께 하는 사람들: 연분홍치마의 친구들 "진분홍치마"

덧붙이는 글 | 연분홍치마와 박진님과의 인연
2009년 용산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제작을 위해 박진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전의 여러 인권현장에서 만나며 눈 인사를 주고받던 사이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자/제작자와 인터뷰이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개의 문> 이후 세월호, 박근혜정권 퇴진비상국민행동 등 여러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며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부터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이자 동지이자 동료로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인권의 현장에서 박진님을 만나뵙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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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마마상,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노라노, 공동정범, 안녕히어로, 플레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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