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아나운서들 '침묵시위' 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MBC 김장겸 사장,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KBS 고대영 사장을 비롯해 양대 방송사 노조와 언론단체들이 ‘언론부역자’로 지목한 이들이 다수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MBC아나운서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1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MBC 김장겸 사장,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KBS 고대영 사장을 비롯해 양대 방송사 노조와 언론단체들이 ‘언론부역자’로 지목한 이들이 다수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MBC아나운서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그런데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화이트리스트는 이게 우리가 말하는 리스트가 블랙리스트도 그렇지 않습니까? 보도된 게 한 장의 종이로 정리된 리스트가 아니거든요."

지난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원재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대변인의 말이다. 이게 핵심이다.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아니면,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권력의 눈에 '좌파'라고 낙인만 찍히면 '블랙'이 되고, 우호적이면 '화이트'가 된다.

누구는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등 눈에 띄게 '활약'을 했을 수 있지만, 누구는 소셜미디어 문장 하나로 '척결'과 '퇴출', '모욕'의 대상이 됐다. 그게 블랙리스트고 화이트리스트다. 이 대변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화이트리스트는 사실은 개개인 명단을 떠나서 전반적으로 구조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블랙리스트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쌍인 건데요. 블랙리스트 가지고 배제되고 지원되고 그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원했던 그러한 이해집단들이 있는 거죠. 그런 부분들의 구조를 화이트리스트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화이트리스트에 있어서, 개개인의 명단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인 작동 방식이다. 이 대변인은 "지금 우리 위원회가 파악하고 있는 건 문화예술계 전반까지 본다면 최소한 지금 확정된 범죄사실로만 보더라도 거의 1차 법원 판결의 판결문에 나온 것만도 거의 400여 건이 됩니다"라고 밝혔다. 최근 드러난 'MB 블랙리스트' 이외로 범위를 넓혀보면 그 피해자들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MBC 방송연예대상' 김성주, 대상 후보 겸 사회자에요!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16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사회자인 김성주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방송인 김성주 ⓒ 이정민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블랙'인 누군가가 자리에서 빠지면, '화이트'인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점이리라. 방송사가 특히 그러하다. '연예인'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방송인 김성주다. 최근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패 죽이고 싶다"는 비난 발언으로 의도치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 김성주 말이다.

김성주 논란

'백해무익'이거나 혹은 '유구무언'이거나.

논란에 대처하는 김성주의 대응 방식이 이쯤 아닐까. 지난 13일, 주진우 기자는 서울 마포구 MBC 상암동 본사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 조합원들을 응원하는 발언 중에 김성주를 언급했다. 주 기자는 2012년 MBC 파업을 언급하며 "김성주가 (마이크를) 특별히 많이 잡았다"며 "전 그런 사람이 더 미워 진짜 패 죽이고 싶다"고 비판했다. 더군다나 김성주의 친누나인 일간지 기자의 일화까지 덧붙이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논란이 거셌지만, 김성주는 이에 대해 일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거나, 별다르게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거나, 그도 아니면 당시 상황 자체가 자신이 말을 보탤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 기자가 언급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MBC 스포츠 중계방송을 둘러싼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김성주는 2012년 MBC 노조의 총파업 당시 런던올림픽 개막식 사회 등 캐스터 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 했다. 그 당시에도 비난 여론이 나오는 등 논란이 분분했다.(관련 기사 : 런던 간 프리랜서 김성주는 어째서 비호감 됐나?)

 MBC 런던 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파격 발탁된 방송인 김성주.

MBC 런던 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파격 발탁된 방송인 김성주. ⓒ MBC


프리랜서가 친정의 위기 상황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는 여론과 MBC의 총파업을 이용한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이 맞섰다. 김성주 역시 2012년 7월 초 MBC의 런던올림픽 중계 관련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파업 중인 친정에 돌아오는 고민과 부담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간에 MBC파업이 끝나게 되면 미련 없이 그들에게 자리를 주고 물러나고 싶었다."

당시 김성주는 "많은 분들과 어려운 MBC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며 "일단 회사가 어렵고, 시청자들이 올림픽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일단은 MBC를 위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MBC에 오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파업이 얼마나 심한 상황인지 잘 몰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김성주는 파업 종료 후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발언은 지키지 못했다. 파업은 장기화됐고, 김완태·허일후 아나운서 등 마땅히 런던에서 활약해야 했을 김성주의 선후배는 결국 런던 땅을 밟지 못했다. 이후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 대한 MBC 사측의 보복은 계속됐고, 아나운서들 역시 마이크를 뺏겼다.  

반면 적잖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MBC는 런던올림픽 중계를 무리 없이 마무리했고, 파업의 여파를 최소화했다. 그 '얼굴마담'을 담당한 것이 김성주였다. 그는 이후 김재철 사장 하의 MBC에서 <아빠 어디가> 등 예능에 입성했다. <슈퍼스타K>를 비롯해 케이블에서 활약하던 그가 다시 공중파에 입성하는 계기가 바로 런던올림픽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프리랜서의 '일 할' 자유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는 이미 잘 나가던 프리랜서 방송인이었다. 곤란에 빠진 전 직장을 위해 비판을 감수하며 올림픽 중계에 나선 전직 아나운서의 '생계형' 일자리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MBC 총파업이 결국 MB 정권의 '공영방송 죽이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형적으로, '블랙'이 빠진 자리를 '화이트'가 꿰찬 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주가 승승장구하던 그 런던올림픽 중계를 고통 속에 지켜봐야 했던 MBC 아나운서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김성주 방송 보면서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다"

MBC파업 지지하는 주진우 기자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조합원들을 응원하고 있다.

주진우 기자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조합원들을 응원하고 있다. ⓒ 권우성


"(김성주가 나온 런던올림픽) 그 방송을 보면서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 분노를 느낀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김성주는) 올림픽으로 멋지게 복귀해서 이후 <아빠 어디가>에 나온 이후 완전히 승승장구 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쫒기고 탄압받고 비참한 생활을 했는데 행보가 완전히 갈린 거다. 김성주를 인간적으로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노조원들은) 성숙한 단계로 갔다. 하지만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결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MBC 신동진 아나운서는 김성주와 관련된 논란에 위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2012년 파업 이후 6년 만에 '마이크'를 잡는다는 그는 "저희들의 피눈물 흘리고 있는 상황에 사측에 힘을 실어 준 거다. 그 공백에 (김성주가) 힘을 실어 주면서 파업이 어렵게 된 측면은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예전 동료로서 "김성주 본인에게 직접 해명을 듣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논란이 촉발된 강재형 MBC 아나운서의 <시사인> 기고와 관련해서, 신동진 아나운서는 김성주의 친누나인 일간지 기자가 강재형 아나운서와 <시사인>에 항의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김성주 본인이 스스로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5년 전 그런 선택을 한 이후에 승승장구했는데, 어떤 본인의 미안함이나 도의적인 부분에 대해서 예전 동료였던 저희들한테 입장표명을 한 적 없다. 강재형 선배 글 마지막 부분이 김성주씨와 관련된 언급인데, 저는 김성주씨가 바깥에 나왔으면 좋겠다. 방송 이외에 자기 입으로 의견을 말했으면 좋겠다."

신동호와 손석희, 김성주와 신동진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 JTBC


사실, 이러한 '블랙'과 '화이트'의 엇갈리는 행보는 또 있다. 바로 JTBC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과 신동호 MBC 아나운서 국장이다. 손석희 앵커 역시 지난 21일 앵커브리핑을 통해 'MB 블랙리스트'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하차하게 된 심경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른 방송인들이 바로 이런 좀비들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었다고 국정원의 당시 문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국정원이 총괄 기획한 방송장악 문건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이번엔 국정원이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을 집요하게 사찰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제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현미경 사찰의 대상이었습니다.

좌경화된 프로그램이 '출근길 민심을 호도'했으며 '안팎의 지탄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파논리로 정부를 흠집내왔다'는 것이 사찰의 이유였습니다. 저는 13년 동안 시선집중을 진행했고, 지금의 뉴스룸 못지않게 시선집중을 소중히 여겼으며,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과 해당 라디오국은 진보의 젖줄, 좌파의 숙주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야만성 앞에 합리적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국가권력을 견제한다는 저널리즘을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난감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어서 온몸의 힘이 빠지는 참담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신동진 아나운서를 비롯해 마이크를 뺏긴 MBC 아나운서들의 심경은 '참담함'과는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잘 알려지다시피, 손석희 앵커가 MBC를 떠난 프로그램들은 신동호 국장이 맡았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 자리를 꿰찼고, 최근엔 JTBC <썰전>의 형식을 차용한 시사토론 프로그램 <이슈를 말하다>를 진행 중이다.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신동진 MBC아나운서 '손석희, 박원순 인터뷰 했다고 사측 압력'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파업 당시 한국아나운서협회장을 맡았던 신동진 아나운서가 손석희 JTBC사장(MBC출신), 박원순 시장, 해직언론인 등을 다룬 협회지 ’아나운서 저널’을 보여주며, 이 내용을 이유로 사측의 압받을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권우성


MB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낸 2017년의 풍경이 이렇게 극명하다. 손석희 사장과 신동호 국장, 방송인 김성주와 신동진 아나운서의 현재 자리를 비교하면, 각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수사는 수사고, 처벌은 처벌이다. 블랙은 블랙대로, 화이트는 화이트대로 진상을 규명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또 방송은 방송이다. 김성주의 과거 '선택'은 분명 '도의'적인 부분과 관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운관 속 김성주의 '입'이 아닌, 가족의 '입'이 아닌 자연인 김성주의 '입'을 궁금해 하는 예전 동료들과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김성주의 책임은 그의 '입'을 여는 것이면 충분할 듯하다. 당당하게 당시 상황과 (정치적) 입장, 심경을 밝히는 것 말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상도덕', 아니 '도의' 아니겠는가.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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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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