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몬스터 콜>의 포스터. 한 소년의 꿈에 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영화 <몬스터 콜>의 포스터. 한 소년의 꿈에 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01.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영화 <더 임파서블>(2012)을 통해 자신이 드라마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었다. 2004년 동남아를 휩쓴 쓰나미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기에 당시 거의 모든 선재물은 실제 사건의 참담함과 자연재해의 위력이 제대로 표현된 영화로 포장하고 있었다. 물론 <더 임파서블>에서 감독은 그런 모습들이 상당히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만 그 안에서 더욱 빛나는 것들이 있었으니 쓰나미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리고, 또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 극의 구성을 위해 억지로 짜낸 감동 코드가 아니라, 그 속에 실재하고 있는 듯한 모습과 같은 것 말이다. 사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2008)을 연출할 당시에도 뛰어난 연출력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큰 인상을 남긴 바 있었다. 그는 이미 길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 '쓰리 아미고'(three amigos, 세 친구)라 불리는 명감독들의 뒤를 이어 멕시코를 대표할만한 차기 감독으로 손꼽힐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 <오퍼나지>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직접 제작한 작품이었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인 <몬스터 콜> 역시 흥미로운 소재를 탄탄한 구조 속에서 잘 풀어낸 좋은 작품이라 느껴진다.

02.
'소년이라기에는 너무 늙었고 어른이라기에는 너무 어린', 영화의 처음에서 주인공인 코너(루이스 맥더겔 역)의 존재를 정의했던 문장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감독이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가장 고민했을 지점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속성을 주인공에게 심어줌으로써, 그가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수 없는 상태를 부여하고, 어른으로 무리 지어지는 이들은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뿐이고, 아직 소년이기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몬스터(리암 니슨 역,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코너라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첫 시점을 내면의 변화를 통해 자세히 풀어내는 작품이다. 감독은 그에게 씌운 이 이미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도 그 경계선 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하나의 정의만으로는 설명될 수가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몬스터를 마주한다는 뜻은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직시한다는 의미도 된다.

몬스터를 마주한다는 뜻은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직시한다는 의미도 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03.
코너의 앞에 처음 등장한 몬스터는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말한다. 대신 자신의 세 가지 이야기가 끝나면, 그때는 코너 자신이 그 이야기를 이어서 네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 코너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몬스터가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았다. 존재 자체가 마녀이기는 했으나 나쁜 짓은 하지 않았던 마녀와 사랑하는 이들을 죽이고 왕이 되기는 했으나 그 누구보다 어진 임금이었던 이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두 딸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자 원하는 것을 모두 내어주겠다던, 하지만 사실은 약제사를 너무도 미워한 나머지 사람들을 선동하여 비난하고 배척했던 목사의 이야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 했지만 막상 존재가 드러난 뒤에 더욱 외로워지는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코너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첫 번째 이야기 때는 코너만을 안아 들던 몬스터가 두 번째 이야기하기 전에는 코너가 있던 공간, 할머니 집의 거실 전체를 감싸는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코너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던 몬스터의 행위는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단순히 세 번의 이야기로만 몬스터가 코너의 내면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함으로 인해 관객들이 더 몰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고 있다.

04.
이제 남은 것은 코너가 몬스터에게 들려주어야 할 네 번째 이야기. 그 이야기는 코너가 밤마다 괴로워했던 악몽과도 관련이 있다. 엄마의 죽음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몬스터를 불러낸 건 엄마가 죽게 된다는 걸 확인하게 된 이후다. '약이 더 듣지 않는대.' 그동안 숱한 거짓말로 코너를 속여왔지만 결국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말을 듣고 난 뒤에 코너는 몬스터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몬스터를 불러냈다는 코너에게 자신은 코너 본인을 치료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는 몬스터. 그가 말하는 코너의 아직 낫지 못한 병은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코너의 악몽은 일어날 일은 어떻게도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상상해왔던 아름다운 결과가 아니더라도 마주해야 할 순간들이 있는 것이고.

 엄마와의 유대관계는 이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엄마와의 유대관계는 이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05.
엄마에 대한 이야길 잠시 해야겠다. 코너의 엄마가 죽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암시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할머니와 엄마가 코너를 끝까지 속이려고는 하지만, 다른 모든 정황은 그렇지가 않다. 사실 코너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다. LA에서 날아온 아빠를 두고 자신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걱정해주는 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엄마와 자신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나 버린 것에 대한 미움과 엄마가 죽고 난 뒤에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 영화에 깊게 밀착하게 되는 것에는 그런 안타까움도 큰 역할을 한다. 확정된 미래를 부정하려고 몸부림치는 코너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안타까움 마음 말이다. 할아버지가 남긴 영사기를 통해 킹콩을 보면서 사람들은 늘 낯선 존재를 두려워한다던 엄마의 말에도 작은 암시가 남겨져 있다. 코너의 시선에서 그 낯선 존재란 몬스터를 의미하겠지만, 엄마의 시선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마다 나은 약이 있을 거라며 거짓말을 해 왔던 엄마이지만, 사실 그녀는 혼자 남을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들의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언제나 지켜줬던 존재였고, 혼자 남지 않도록 그 곁을 끝까지 메워주려 했던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가 혼자 남게 된다면 바르고 독립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알려주고자 했던 이가 바로 그녀였으니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오듯이 그녀가 코너에 앞서 몬스터를 먼저 마주한 상황이었다면 그녀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진실들과 마주하는 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니 이제 막 그런 상황을 마주한 코너의 삶을 더욱 지켜주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부숴버리고 싶으면 다 부숴버려도 괜찮아. 엄마가 곁에 있을게.'

06.
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는 코너 앞에서 그가 늘 꿈속에서 우려했던 이야기는 조금의 여과도 없이 우려했던 그대로 재현된다. 진심을 토해내라고 윽박지르는 몬스터. 그리고 한 마디. '사실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엄말 지켜보는 게 괴로워.' 결국, 엄마를 쉬이 떠나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엄마의 아픔과 고통이 죽음으로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또 하나의 진심을 억누르려고만 했던 한 소년의 모습이 이렇게 터져 나오고 만다. 괴로워 보이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생각과 빨리 세상을 떠나서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두 가지 모두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아직은 알 수 없었던 것은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그가 아직 소년이라기엔 너무 늙었고, 어른이라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소년도 알 것이다. 세상에는 상충하는 것이지만 그 모두가 진심인 것들도 존재하고,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또한 하나의 것일 수 있음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엔 아름답기만 한 일도 없고, 때로는 거짓 같은 진실도 많은 법이니까. 진실과 마주하는 법, 그것이 엄마를 떠내 보내고 남은 네 번째 이야기의 교훈이었던 셈이다.

 엄마가 남기고 간 수첩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을까?

엄마가 남기고 간 수첩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07.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구조는 노력에 의한 성취나, 인물이 직면한 위기 혹은 장애물을 타인의 도움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으로 설정된다. 영상으로 구현하기에 용이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고저 차를 극대화할 방법이기 때문에. 이 영화 <몬스터 콜>이 울림을 주는 것은 이 부분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라는 존재가 일종의 조력자로서 기능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는 코너의 분신과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현실을 그려나가는 모습 또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코너의 깨달음이나 성장과는 무관하게 엄마의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학교 아이들의 태도에 또한 여전히 거리감이 있으며, 화해하기는 했지만, 할머니와의 동거에도 앞으로 숱한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늘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지만 당장 오늘 아침에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 하루하루. 하지만 우리는 또 하나 아는 것이 있다. 그런 삶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마음을 나눌 시간의 틈들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할머니의 소중한 거실은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으로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철로의 차단기가 내려가 버렸지만, 그 순간에야 할머니와 진심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년은 여전히 어떤 경계 위에 서 있겠지만,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도 제 삶을 똑바로 걸어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무비 몬스터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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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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