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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실시간 검색어를 한 버스가 채웠다. 지하철 노선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은 흔하지만, 특정한 버스 노선이 실시간 검색어를 채우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특정 글로 인해, 이 논란은 곧이어 분노로 바뀌었다. 서울 신내동에서 건대입구역을 거쳐 논현까지 운행하는 서울 240번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 게시판의 글은 이랬다. 지난 11일 저녁 건대입구역에 도착한 240번 버스에서 어린 아이가 먼저 내렸지만, 아이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지 못해 기사에게 정차를 요청했으나 버스 기사는 이를 무시했고, 그 다음 정류장에서 아이 엄마가 혼비백산해 내리자 버스 기사가 아이 엄마를 향해 비속어를 퍼부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자신이 보았던 불친절한 기사들을 열거하는가 하면, 이 버스 기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하지만 CCTV 등 사건의 전말이 나타나며 인터넷은 다시 '쑥대밭'이 되었고, 버스 기사가 잘못했다는 여론은 쏙 들어가고 아이 엄마와 아이의 잘못이라는 여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 사건 안에는 자칫 놓칠 수 있었던 시스템 상의 문제가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러한 문제는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왜 240번 버스 미하차 사건이 단순한 사건 기록을 벗어나 새로운 담론이 이끌어내야 하는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본다.

'내리지 못한 승객', 행간에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한 버스에 붙어있는 안전을 위한 안내문.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하면 일어나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충청남도 서산시의 한 버스에 붙어있는 안전을 위한 안내문.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하면 일어나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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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번 노선은 승객, 도로상황 모두 혼잡한 구간인 강남, 건대 등을 지나는 데다가 2차선 도로인 면목로, 군자로를 상당 구간 경유해 운행에 애로사항이 큰 노선이다. 면목로, 군자로는 도로가 좁은 데 비해 출퇴근시간 통행량이 많아 평균 시속이 14km/h에 불과하다. 압구정, 학동역 일대 역시 차량 정체가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240번 버스는 왕복 41.8km 거리를 160분의 소요시간으로 140여개의 정류소를 거치며 달린다. 규정 소요시간을 준수하려면 평균 시속 15km/h 정도로, 평균 300m 간격으로 있는 정류소를 약 1분 11초에 하나씩 지나야 한다. 승객이 많이 타고내리는 정류소에서는 운전 시격을 맞추지 못할까 조마조마하는 것이 시내버스 기사들의 일상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앞서 말했듯 부족한 운행시간으로 인해 충분한 승하차 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특히 차량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승객들을 모두 승하차시키며 일정한 운행횟수와 소요시간을 맞춰야만 한다. 그러면서 앞차, 뒤차와의 거리를 유지하여야만 하는 이중고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다른 버스는 안 그럴까

이 문제는 240번만의 문제가 아니다. 버스에 충분한 운행시간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다른 노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가까운 예시로 서울 150번 버스의 예를 들 수 있다. 150번 버스는 서울 끝 도봉산과 반대쪽 끝 시흥동까지 왕복 75km 거리를 달린다. 120여개 정류장과 셀 수 없이 많은 신호등을 거쳐야 하는 150번 버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평균 256분이다.

이는 한 정류소를 지나는 데 겨우 2분 6초 정도를 사용해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신호 대기 한 번에 최대 3분까지 걸리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150번 버스는 서울 시내버스 탑승 이용객 순위 상위권을 자주 달리는 노선이다. 이는 '빡빡한 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버스를 타면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문이 닫혀 기사에게 개문을 요구하거나, 지난 11일 저녁의 240번 때와 같이 버스에서 잠깐 차이로 내리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충분한 승하차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버스회사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적정한 승하차 시간, 안전운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다이어그램을 짤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무리한 다이어그램(운행 시간표) 운영으로 사고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2015년 김포와 서울을 잇는 버스 두 대가 서울 공항동에서 충돌하여 두 명이 숨지고 여럿이 다친 사고가 있었는데, 두 대의 버스가 다이어그램을 지키기 위해 과속과 신호위반, 지정차선을 지키지 않고 운행을 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에는 비슷한 원인으로 과속을 하던 세 대의 시내버스가 고양경찰서 앞에서 추돌해 버스 승객과 운전기사 여럿이 다쳤던 사고도 일어났다. 이 사고는 시간표를 지키기 위해 곡예운전을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더 심각했던 것은 버스가 추돌하며 정류장 안쪽으로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더욱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240번 논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길

이번 사건은 버스 기사와 승객 간의 오해로 잠시 지나가는 일로 다뤄질 수 있었지만, 인터넷의 파급력으로 크게 번졌다는 시각이 많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언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고, 결국 아이와 아이 엄마, 그리고 기사 모두 상처만 입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문이 닫혀 승객이 내리지 못한' 이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기에는 바꾸어야 할 일들이 많다. 앞서 말한 시내버스에서의 충분하지 못한 운행시간 보장과, 그에 따른 승하차에서의 불편 말이다. 승객이 내리기도 전에 뒷문 레버를 올리고, 승객이 탑승하고 자리에 앉기 전 기어를 긁으며 급하게 출발하는 기사들의 불가피한 모습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승객 여러분, 버스가 정차한 후 천천히 내리세요, 우리 버스는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서울시내버스의 안내방송

늘 버스에서는 '버스가 정차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는' 안내방송을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사의 재촉이 심해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을 통해 '버스가 완전히 정차된 후 일어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빠른 소요시간, 더욱 많은 운행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승객 개개인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태그:#시내버스,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안전, #240번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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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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