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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중심지 레 전경. 고대도시처럼 들어서 있는 낡은 구시가지와 상가와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신시가지로 나눠져 있다.
 라다크 중심지 레 전경. 고대도시처럼 들어서 있는 낡은 구시가지와 상가와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신시가지로 나눠져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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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 상담소에서 알려준 라다크의 고대 왕궁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니 저만치 머리맡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흙벽돌 건물이 보인다. 거리에서 만난 티베트 청년에게 물어보니 레의 고대 왕궁이라고 한다. 험준한 바위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는 고대 왕궁 아래로 당시의 가옥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레의 옛 왕궁으로 가려면 흙벽돌을 쌓아 올려 흙으로 마감 한 허름한 가옥들과 비좁은 골목들을 통과해야 했다. 흙벽돌의 작은 집들은 움막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막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처럼 서로가 의지하고 있다. 작은 수로들이 비좁은 골목길 따라 흐르고 있었고 동네 건달들처럼 건들거리는 개들만 오락가락할 뿐 사람들은 어쩌다 한둘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다.

상가들로 즐비한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주변이 21세기의 모습이라면 흙벽돌과 돌이나 나무로 세워진 고만 고만한 건물들과 미로처럼 비좁은 골목은 수백 년 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빼꼭하게 들어차 있는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걷다보니 불과 몇 십분 만에 수백 년 전으로 옮겨 왔다는 기분에 휩싸인다.

고대 도시처럼 들어서 있는 구시가지의 비좁은 골목길과 수로.
 고대 도시처럼 들어서 있는 구시가지의 비좁은 골목길과 수로.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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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라다크 레의 아이들.
 오래된 건물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라다크 레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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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 가고 있는 흙벽돌집들을 얼핏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쌓여있는 땔감용 나무들, 허름한 창문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내미는 어린 아이들과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옹색한 살림살이들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 건물임에도 근처에 손바닥마한 채마밭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골목길로 들어서는 젊은 아빠에게 물었더니 레에도 너른 농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농지에 상가와 게스트하우스들이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이곳이 구시가지라면 신식 상가들이 들어서 있는 그 쪽은 신시가지라 할 수 있죠."

구시가지에서도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식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고대도시 레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기존의 흙벽돌 건물 대신 콘크리트 기둥과 각진 각목들로 세워지고 있었다. 여러 개의 방을 꾸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비좁은 골목길에서 어쩌다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물어물어 언덕을 오르니 바위산 위에 세워진 높다란 왕궁 건물이 보였고 그 주변에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티베트 안내원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있는 관광객들 주변에는 왕궁을 설명하는 영문 입간판이 서 있었다.

그 안내문에는 라다크는 인도 잠무 카수미르 주에 속해 있다고 적혀있다. 또한 라다크의 중심지 레는 인더스 강에서 6km 떨어진 지점에 있고 이곳 레 고대 왕궁은 16세기 남걀왕 때 돌과 진흙벽돌, 포플러 나무 등의 재료로 지어졌으며 티베트 라샤에 있는 포탈라 궁전의 축소판이라 적혀 있었다.

왕궁 앞으로 멀리 히말라야 산들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비탈을 따라 흙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서 있는 곳이 구시가지라면 신시가지에는 푸른 나무들이 담장처럼 둘러 있어 칙칙한 구시가지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라다크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였으며 10세기 중반부터 900년 간 독립된 왕국을 유지하다가 19세기 무렵 힌두 도그라의 침입으로 왕국이 무너졌고 1947년 지금의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라다크 왕족들의 거처였던 왕궁의 입구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안내문에 새겨 있듯이 왕궁이 지어질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9층 높이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왕궁을 소개하는 입간판과 입장권을 파는 조그만 매표소가 전부였다.

건물 내부 또한 그 옛날 화려했을 왕궁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침침한 건물 안에는 금방이라도 유령이 튀어나올 듯 흉가처럼 방치된 작은 방들이 박혀 있었다. 한창 흙벽돌 건물 내부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허물어져가는 벽면에 덕지덕지 콘크리트로 덧대고 있었다.

왕궁에 들어서 있는 티베트 수호신을 모신 법당.
 왕궁에 들어서 있는 티베트 수호신을 모신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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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레 왕궁 벽화.
 빛 바랜 레 왕궁 벽화.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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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옛날 화려했을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벽화들이 빛바랜 채 방치되어 있었고 건물 중앙에는 악마를 막아 준다는 티베트 수호신을 모신 침침한 법당이 들어서 있었다. 왕실 법당이었을 이곳 조차 관리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몇 푼의 보시금과 함께 큰 절 몇 차례 올리고 법당을 나오다가 천장에 불화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천장벽화는 부처님을 중심에 모셔놓고 그 주변에 수호신들이 지키고 있는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화였다.

다시 궁전 밖으로 나왔다. 왕궁의 왼편 언덕 위로 오색 깃발 다르촉이 보이고 붉은 승복의 라마승들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언덕 위에는 16세기 라다크 왕국이 발티 카수미르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웠다는 티베트 불교 사원, 남걀 체모 곰파(Namgyal Tsemo Gompa)가 들어서 있다.

남걀 체모 곰파로 발길을 옮기다가 왕궁 보수작업을 위해 흙벽돌을 등에 지고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는 라다키 잡부들과 마주쳤다. 얼굴을 마주 대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표정 어디에도 '오래된 미래 라다크'는 없었다.

해발 3500m의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처럼 자연에 순응해 가며 행복한 삶을 누렸을 사람들, 이제 자본을 따라 도시로 나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먹을 만치의 농사를 지어가며 기나긴 겨울이 되면 이웃들과 오손 도손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을 저들의 얼굴은 흙벽돌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저들의 얼굴은 산업화와 함께 농촌에서 벗어나 도시 빈민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우리들의 오래된 농촌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침침한 지하실에서 온갖 학대를 받아가며 밤낮 가리지 않고 미싱을 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우리들의 아픈 과거이기도 했다.

왕궁 보수 작업에 필요한 흙벽돌을 힘겹게 나르고 있는 라다키.
 왕궁 보수 작업에 필요한 흙벽돌을 힘겹게 나르고 있는 라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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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처럼 칸칸이 들어서 있는 라다크 레의 빈민 가옥.
 축사처럼 칸칸이 들어서 있는 라다크 레의 빈민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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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게 흙벽돌을 등에 지고 계단을 올라서는 저들에게 왕궁이며 사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들의 사진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글쟁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겁 많은 좀도둑처럼 몰래 몰래 몇 장의 사진을 담고 나서 사원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언덕길을 내려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네모반듯한 흙벽돌 건물이 길게 이어져 있는 빈민들의 거주지를 만났다. 축사처럼 칸을 질러 겨우 조악한 문짝 하나만 매달고 있었다.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주변에 흙벽돌이 아무렇게나 쌓여져 있는 것을 보면 흙벽돌을 찍어내는 노동자들이나 조금 전 왕궁에서 흙벽돌을 나르는 일용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일 것이었다.

빈민촌 주변에는 크고 작은 게스트 하우스들이 들어서 있었다. 한 게스트하우스 건물 이층에서 대마초에 취해 낄낄거리고 있는 서양 젊은이들이 보인다. 이 젊은이들의 공허한 웃음에는 칸칸이 내지른 흙벽돌 안에서 힘겹게 생활하는 도시 노동자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된 미래 라다크>라는 책이 대마초에 취해 낄낄거리는 또 다른 관광객들을 몰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배낭을 꾸렸다. 그제서 나는 상담소에서 알려준 시골 마을 이름을 떠올렸지만 도무지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숙소 매니저를 찾아가 숙소 앞으로 펼쳐진 멀리 산자락 아래 나무숲이 보이는 마을을 손짓하며 말했다.

"나는 저 시골 마을로 가고 싶습니다.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합니까?"
"지금은 버스가 없을 겁니다. 택시를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까지의 숙박비를 지불했으니 서두를 것 없습니다. 하루 더 자고 내일 아침 버스를 타세요."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망설였다. 저 마을에 가서 숙소를 잡지 못하면 낭패였다. 메인 바자르며 흙집 마을과 왕궁을 둘러보면서 몇 시간 내내 걸었기에 무릎 상태도 좋지 않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시골 마을을 둘러본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숙소 침대 위에 배낭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 2시, 시간은 충분했다. 시골 마을에 적당한 숙소를 잡아 놓고 다시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만약 머물만한 곳이 없으면 배낭은 더욱더 나를 압박할 것이었다.

가벼운 천 가방을 어께에 걸치고 버스 터미널 근처로 나왔다. 합승 택시를 잡아 손짓으로 저 멀리 나무숲이 있는 시골 마을로 가고 싶다고 했더니 택시 기사는 걱정 말라며 고개를 까닥거린다. 택시는 묵언승처럼 말이 없는 세 명의 승객을 더 태웠다. 도중에 내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가 저 마을로 간단 말인가. 의심스러워 다시 물었다.

"내가 조금 전에 말했던 시골 마을로 가고 있는 거죠?"
"No problem!(문제 없어요!)"

하지만 택시가 멈춘 곳은 한국으로 말하자면 면 단위 크기의 마을이었다. 거기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승객 모두가 내렸다. 나는 본래 가고자 했던 나무숲이 보이는 시골 마을의 이름을 알지 못해 함께 내린 티베트 청년에게 여기서 농촌으로 갈수 있냐고 물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농촌 마을이 나올 것입니다."
"택시가 왜 거기 까지 태워주지 않지요?"
"지금은 길이 막혀 갈수 없습니다."

자신이 그 길을 알려 주겠노라며 따라 오라고 했다. 그의 뒤를 따라 골목길을 벗어나 큰 길로 나서자마 내 입이 쩍 벌어졌다. 붉은 승복을 입은 라마승들과 함께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수만 명은 돼 보였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겠다고 무리해서 택시까지 잡아탔는데 오히려 택시기사는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엄청난 인파 속으로 나를 데려온 것이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티베트 승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칼라차크라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이곳에서 칼라차크라가 열리고 있단 말입니까?"
"모르셨습니까? 칼라차크라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나는 귀신에게 홀린 듯 현기증과 함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끝없이 몰려오고 있는 수만 명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더 이상 티베트 불교의 최대 법회, 칼라차크라를 피해 갈 수 없단 말인가.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 라 할 수 있는 파드마 삼바바의 수행지 리왈샤에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던 것이 아닐까.

본래 20만 명 이상이 몰린다는 칼라차크라 행사로 라다크가 혼잡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라다크를 피해 스피티로 가려 했다. 그러다가 스피티 가는 길이 막혀 우연찮게 히말라야 고지대를 넘고 넘어 라다크까지 왔다. 자본이 깊숙이 침투해 있는 레에서 벗어나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려 했다. 그런데 내 영어를 잘못 이해했는지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엄청난 인파와 함께 칼라차크라 법회가 열리고 있는 초크람사 라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20만 명 이상이 모인다는 티베트 불교 최대 법회 칼라차크라를 피해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려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칼라차크라 행사가 열리는 초크람사 마을이었다.
 20만 명 이상이 모인다는 티베트 불교 최대 법회 칼라차크라를 피해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려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칼라차크라 행사가 열리는 초크람사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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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라다크, #레 , #라다키, #칼라차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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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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