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런 개는 비싸지요? 한 삼백만 원 합니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물었다. 내 옆에 있는 개 초롱이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렇듯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초롱이와 같이 다니면 행인들로부터 종종 듣는 소리다. 한 마디로 몸값 비싼 개 같다는 것. "예쁘다" "귀엽다" 하는 외모 칭찬은 더욱 잦다.

개 '초롱'
 개 '초롱'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비싸 보인다'는 다른 표현으로 '무슨 종이에요?' 하고 묻는 이들도 있다. 흔히 동물의 족보, 혈통이라고 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게 초롱이는 그냥 초롱이다. 가격이 얼마건, 어떤 견종이든 그런 건 관심도 없고 사실은 모른다.

초롱이를 예뻐하는 한 책방 아주머니
 초롱이를 예뻐하는 한 책방 아주머니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초롱이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0월, 집 근처 '부산 터널' 위였다. 다소 지저분하고 피곤해 보이던 초롱이는 황망한 표정으로 아슬아슬 차들 곁을 계속 걸어 다녔다. '길을 잃었나?' 걱정이 됐지만 '아니겠지' 편할 대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이후 닷새 동안 늘 같은 장소에서 초롱이를 보았다. 차에 치일까 염려되기도 하고, 주인이 있는지도 궁금해서 녀석의 뒤를 밟아보니 초롱이는 5미터쯤 되는 일정한 거리 안에서 좌우 이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듯 주변을 살피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던 초롱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던 초롱이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초롱이를 집에 데려온 건 그렇게 닷새가 지나고 억수 같이 비가 내린 하루가 더 지나서였다. 복잡한 심정으로 늘 초롱이가 있던 장소로 갔는데 초롱이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 불길한 느낌과 진작 도와줬어야 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인근 주택가를 뒤졌다.

1시간 후, 마술처럼 초롱이가 눈에 들어왔다. 털이 흠뻑 젖어 거지꼴을 해선 한 아파트 앞 음식물 쓰레기통에 코를 박은 채로. 그간에 제법 서로 낯이 익은데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초롱이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되레 품에 안긴 초롱이가 내게 몸을 기대는 것 같았다.

집에 데려온 첫날 초롱이.
 집에 데려온 첫날 초롱이.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이후 행여나 초롱이를 찾고 있는 가족이 있을까 10일쯤 전단지를 돌렸고, 파출소와 구청에도 알리고, 인터넷에도 사연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동네 목욕탕 주인이 초롱이를 기억한다며, 내가 초롱이를 처음 발견한 그때 즈음, 바로 그 장소에서 낯선 남녀가 차를 향해 뛰어 가고 그런 그들을 쫓는 초롱이를 봤다고 했다.

개 초롱과 고양이 나무, 강호. 미호는 외출 중.
 개 초롱과 고양이 나무, 강호. 미호는 외출 중.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실은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마주치는 우연이 겹쳐 초롱과 나는 지금 같이 살고 있다. 세 마리 고양이 식구와도 함께. 걱정과 달리 초롱과 고양이들은 금세 서로에게 적응을 했다. 사이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무관심한 덕에 거의 갈등이 없다.

되레 어려웠던 건 나와 초롱 사이.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들 습성에 익숙한 내게 초롱의 적극적인 애정과 관심은 성가시고 불편했다. 무엇보다 녀석의 가족이나 새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을 시, 내가 초롱의 여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컸다. 생긴 것과 달리 초롱은 13살쯤 된 노견으로, 눈과 귀도 어둡고, 이런저런 잔병이 많다고 의사가 말했다.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다시 찾은 초롱이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다시 찾은 초롱이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최근 초롱이를 또 한 번 잃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집에 온 손님이 대문을 닫지 않아 초롱이 혼자 나갔고, 그렇게 한 주를 못 찾다가 극적으로(무려 전라도 완도 분이 제보를 해주었는데, 찾고 보니 바로 지척에 있었다) 재회를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마음에 초롱이가 이미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이런 개는 비싸지요? 한 삼백만 원 합니까?"
"얘 누가 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는 거예요."
"와 예쁘다. 무슨 개(종)예요?"
"저도 몰라요. 유기견이거든요."

나는 초롱이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에 늘 이렇게 답했다. 그럼 대부분은 할 말을 잃고 우리를 스쳐갔다.

아기처럼 예뻐 보이지만 초롱은 사실 13살 노견이다.
 아기처럼 예뻐 보이지만 초롱은 사실 13살 노견이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요즘도 역시 같은 질문, 같은 반응들을 듣고 본다. 그런데 내 마음이 달라졌다. 아직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하지만 초롱이 버려진 사실을 알릴 때, 행여 초롱이 그 말을 알아듣고 마음 상할까 눈치를 살피게 됐다. "같이 가" "하지 마" 하는 내 말을 단번에 알아듣는 초롱인지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알릴 생각이다.

"이렇게 비싸 보이고 예쁜 개가 버려졌다"고. 그러니 단지 비싸고 예쁘단 이유로 절대 개를 비롯해 다른 어떤 동물도 키우지 말라고. 찻길에 홀로 남겨져 며칠을 헤매던 초롱의 눈빛이 얼마나 슬펐었는 지, 얼마나 간절했었는지도 말하면서.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처음 초롱이 발견 당시.
 처음 초롱이 발견 당시.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노견이지만 여전히 예쁘고 무엇보다 사람 말을 무척 잘 따르는 영특하고 착한 초롱이인지라, 여전히 버림 받은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혹시 초롱이를 잃어버려 찾고 계신 가족이나 그 지인 분이 계시다면 곧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유기견, #버려진 , #노견, #반려동물, #동물가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