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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중심지 레의 이슬람 사원에서 본 메인 바자르.
 라다크 중심지 레의 이슬람 사원에서 본 메인 바자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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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헤매던 내게 총을 겨눈 사내, 그리고 어둔 골목길을 피해 다시 버스터미널 근처로 나왔다. 택시 기사가 다가왔다.

"숙소를 찾고 있습니까? 괜찮은 곳이 있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11시가 넘은 이 늦은 밤에 택시를 잘못 탔다가는 낭패를 볼 것 같아 거짓말을 늘어놓고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때마침 붉은 승복의 라마승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자하게 생긴 라마승에게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있다고 했더니 상세하게 알려준다.

라마승이 알려준 곳은 터미널 뒤편이었다. 터미널 뒤편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은 내가 묵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보통 하루 묵는데 천 루피 가까이 했다. 그나마 저렴한 곳은 7백~8백 루피를 달라고 했다. 그동안 150~200루피 정도의 숙소에 머물곤 했기에 벅찬 방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30분 넘게 숙소를 찾아 헤매고 다녔더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식당조차 거의 다 문이 닫혀 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모터사이클 부속품을 취급하는 점포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루 밤은 비싼 숙소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티베트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나는 가난한 여행자입니다. 이곳은 숙박비가 너무 비싸네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알고 있나요?"
"여기는 대부분 비쌉니다. 나를 따라 오세요."

앞장 서 얼마쯤 걷던 티베트 사내는 문이 닫혀 있는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까지 불러낸다. '방이 허름해도 좋다. 누울 수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더니 매니저가 추레한 내 몰골을 슬쩍 훑어보더니 가장 싼 방이 있다며 삼백 루피 달라고 한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었는지 한 쪽 벽면이 빵 껍질처럼 부풀어 있었고 곰팡이 냄새가 풀풀 나는 방이었다. 2백 루피에 쓰자고 했더니 매니저가 주저 없이 그러라고 한다. 아마도 이곳 게스트하우스 밀집 지역에서 가장 싼 방일 것이었다.

한마디로 재수가 좋았다.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500~ 1000 루피의 다양한 방들을 소개해 준다던 택시 기사의 손길을 뿌리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내가 묵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역시 화장실이 딸린 방은 자그만치 1천 루피라고 한다.

창고처럼 허름한 공간에 낡은 침대하나 달랑 놓여 진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보니 마날리에서 오백 루피 주고 구입한 숄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늘 이 모양이다. 인도에 와서 모자며 염주를 어딘가에 흘리고 다녔다. 숄은 벌써 두 번째다. 그나마 버스 터미널은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었고 어디에 놓고 왔는지 알고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 불빛도 없는 칙칙한 골목길에 개 몇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녀석들 심기를 건드리면 왕왕 달려들 기세다. 개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후려칠 만한 그런 분위기다.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이 오히려 부랑인이나 다름없는 차림새로 흐느적흐느적 걷고 있는 나를 피해 가고 있다. 버스 터미널이 저만치 보였지만 내가 타고 온 버스가 어느 버스인지 가늠할 수 없어 운전기사로 보이는 몇몇 사람에게 물었다.

"한 시간 전쯤에 마날리에서 온 버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몇 시에 도착했습니까?"
"11시요."

자정이 넘었음에도 내가 타고 온 버스는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운전기사와 조수 둘이서 장거리 운행의 뒤풀이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반기며 잘 찾아보라고 한다. 헌데 내가 앉아 있던 맨 뒷자리에 숄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꼼꼼히 찾아보니 좌석 뒤편에 쳐 박혀 있다. 운전기사는 내가 숄을 찾은 것에 대해 기뻐하며 술 한 잔 하고 가란다.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술 보다는 기진맥진한 몸을 추슬러야 한다. 목이 마르다. 배도 고프다. 어딘가에서 물과 밥을 사먹어야 한다.

"술 좋아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술을 좋아 합니다. 밤새 마시고 또 마십니다."
"그런데 왜?"
"오늘은 몹시 피곤합니다."

숄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운전기사가 말했다.

"해브 어 굿 나잇."
"라마스테."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생수 하나를 사들고 어둔 골목길을 더듬어 한 차례 골목길을 헤맨 끝에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허기져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다친 무릎은 이미 감각이 없다. 벌컥벌컥 생수로 허기진 배 채우고 딱딱한 침대에 기진맥진한 몸뚱이를 누여 죽은 듯 잠들었다.

이렇다 할 여행 정보 하나 없이 배낭하나 짊어지고 우연찮게 찾아든 라다크 였지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통해 동경해 온 신비로운 땅, 라다크에서의 첫 날 밤을 그렇게 보냈다. 나에겐 신비로운 그 무엇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죽은 듯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 주변에 벗어 놓은 신발에서 구릿한 냄새가 났다. 어젯밤 숙소를 찾아 헤맸다가 가로등 없는 어둔 골목길에서 개똥을 밟았던 모양이다. 신발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도랑을 제대로 건너뛰지 못해 한쪽 발이 물에 빠졌던 것이다.

문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백 루피에 불과한 창고나 다름없는 내 방은 조선시대 대갓집 머슴방이 그러했듯 게스트하우스 대문간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뻣뻣해진 얼굴을 씻기 위해 공동 화장실을 찾아들어갔다. 세면대 거울 속에 낯선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삐쩍 마른 얼굴이 아니었다. 고산증세로 얼굴이 뚱뚱 부어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이곳 '레'가 해발 3500미터의 고지대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게스트 하우스에 딸려 있는 작은 베란다에 나와 보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삭막한 히말라야 산들이 도심을 둘레 싸고 있었다. 먼 산봉우리에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충전해 놓은 손전화기 밧데리를 갈아 끼워 넣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전원 장치가 말을 듣지 않는다. 겨우 전원장치에 연결된 손전화기의 시계를 보니 2000년 1월 1일로 찍혀 나온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인터넷을 하려면 이곳 라다크 지역에 맞는 심 카드를 갈아 끼워야 했다.

하지만 라다크에 머무는 기간 동안은 심 카드를 갈아 끼우지 않기로 했다. 손전화기는 사진과 메모용으로 쓰기로 했다. 오전 아홉시가 넘었다. 이 히말라야애서 시간과 날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국으로 돌아갈 출국 날짜와 비행기 출항 시간만 알면 그만 아닌가.

사흘 동안 과일 몇 개와 두 끼 식사가 전부였기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허기져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덜덜 떨려오고 온몸이 후들 후들 거린다. 배를 채우기 위해 얇은 우비를 걸치고 가랑비 내리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라다크 중심지 레의 메인바자르.
 라다크 중심지 레의 메인바자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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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메인바자르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야채를 팔고 있는 라다키 아줌마들
 레 메인바자르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야채를 팔고 있는 라다키 아줌마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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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물에 빠졌던 한쪽 신발이 여전히 축축했다. 배낭에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샌들로 갈아 싣고 나올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되돌아갈 힘이 없어 그냥 걸었다. 10 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다른 쪽 신발도 금세 축축해진다. 다람살라에서 나름 거금을 주고 구입한 신발인데 밑굽이 없다. 밑창이 평평하여 북인도 코사니 솔숲에 미끄러져 무릎을 다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거기다가 4개월 동안 주야장천 신고 다니다 보니 앞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숙소 매니저 말에 따라 식당이 많이 몰려 있다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2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온 몸의 기가 빠져 나가는 듯 감각이 없다. 그나마 비가 그쳤지만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식당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고급 게스트하우스 촌을 지나자 기념품 상점, 옷가게 등 온갖 상점들이 즐비한 제법 큰 도로가 나왔다.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뒤섞여 있는 그 혼잡한 거리에는 라다크 사람, 라다키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붉은 승복을 입은 라마승들이 뒤섞여 있다.

자동차 길을 벗어나자 도로 양옆으로 길게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이곳은 레의 메인 바자르였다. 한국의 오일장 풍경처럼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야채를 팔고 있는 라다키 아줌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국적은 인도지만 라다키 대부분은 인도 사람들과 다른 얼굴 생김새, 티베트 사람들이다. 아줌마들 앞에 놓인 좌판에는 작은 무우, 상추, 시금치 등을 몇 다발씩 놓여 있다. 시장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나온 싱싱한 채소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너머에서 공수해왔을 과일들이 가득하고 불교 관련 용품과 히말라야 지역의 특산품들이 보인다.

사람들로 혼잡한 시장 길을 따라 한창 공사중인 시장 맨 끝까지 걸어갔는데도 값이 저렴하고 내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할 수 있는 티베트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티베트 식당들은 대부분 이층이나 삼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래층 간판에만 시선을 훑고 다녔던 것이다.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레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조감도를 펼쳐놓고 대대적인 공사 준비를 하고 있다.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레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조감도를 펼쳐놓고 대대적인 공사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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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건물 앞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는 라다키.
 공사 중인 건물 앞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는 라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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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독일식 빵집이 보였다. 거기서 쿠키와 케이크 종류의 빵을 한 봉다리 샀다. 너무 배가 고파 거리의 부랑인처럼 시장바닥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빵 봉다리를 열었다. 봉두난발의 긴 머리채에 추레한 옷차림, 고산증으로 퉁퉁 부어오른 얼굴, 생존에 지쳐 쓰레기 통을 뒤져가며 뭔가를 먹고자 하는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다. 누가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 빵과 케이크를 맛나게 우적우적 먹어치웠다. 

허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힌두 라다키 언어로 상담'한다는 입간판이 보이는 작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인도 여성 둘과 라다키 여성 한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상담을 하고 있거나 힌두와 라다키 언어가 전혀 다르기에 어떤 언어상의 갈등이 생기면 해결해 주는 사회단체인 듯싶었다. 나는 상담 여성들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나는 라다크의 작은 농촌을 찾고 있습니다. 농사짓고 살아가는 라다키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라다크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예? 라다크요?"
"예 라다크로 가고 싶습니다."
"여기가 라다크입니다."
"여기는 레 아닙니까?"
"맞습니다. 레는 라다크의 중심지죠. 옛 왕궁도 여기 레에 있고요."
"아, 그렇지요."

나는 순간 레처럼 라다크 라는 지역이 따로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라다크에서 라다크가 어디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라다크 레 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 착각했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라다크에 대한 정보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10여 년 전에 읽은 것이었기에 가물가물했다. 다만 책 속에서 말하는 다라키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자리와 욕심 부리지 않는 소박한 삶, 법 없이도 살아가는 자비로운 삶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1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어가며 적게 벌고 적게 먹어가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라다키들의 삶을 동경해왔다. 하지만 하루 묵는데 인도 도시보다 비싼 보통 천 루피 정도하는 게스트하우스가 그러하듯 관광도시 '레'는 내가 동경하고 상상했던 '라다크'가 아니었다. 하여 레는 라다크가 아니고 또한 라다크는 따로 있을 것이라 순간 착각했던 것이다.

레는 큰 도시다. 나는 라다크의 작은 시골 마을 어딘가에 '오래된 미래 라다크' 속의 생활 방식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처럼 자연에 순응해 가며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 화내는 것을 죄악시 한다는 그들의 평화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무대책으로 라다크에 온 목적이기도 했다.


태그:#라다크 레, #메인 바자르, #오래된 미래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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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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