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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우연히 방송 현장을 구경하게 된 적이 있었다. 방송 현장을 구경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방송 작가의 존재였다. 시청자로서 TV를 볼 때는 방송 작가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지만, 현장에서 본 방송 작가들은 야전 사령관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송 작가들은 쉼 없이 무대 바깥에서 글을 써서 MC에게 보이고, 프로그램을 통해 대본을 띄워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방송 작가는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방송은 엄청나게 긴 촬영시간을 요구한다. 1시간짜리 방송을 위해서 6~7시간씩 촬영하는 경우도 흔하다. 일을 하다보면 어떤 부분을 편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많이 촬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게 길어진 분량의 대본을 다 작성하고, 촬영 내내 MC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한 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직업이었지만 내가 본 방송 작가들에게선 일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작가들이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는 것 외에 방송에도 참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직업 방송 작가
 나의 직업 방송 작가
ⓒ 푸른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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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 방송 작가>는 왜 방송작가가 선망의 대상인지,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얼마나 고달픈 삶이 있는지 설명해주는 책이다. 실제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해 온 저자가 방송 작가의 삶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안방에 찾아갈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땀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책에 따르면, 방송 작가라고해서 다 같은 작가는 아니고, 크게 드라마 작가와 구성 작가로 나뉜다고 한다. 드라마 작가들은 우리가 보는 대하 드라마, 미니 시리즈를 쓴다. 드라마 작가들은 몇 년에 걸쳐서 드라마 대본을 작성하는데, 워낙 긴 기간에 걸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성공하면 큰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크게 성공한 드라마 작가들은 방송사에서 모셔가기 위해 애를 쓰고, 협상도 유리하게 진행된다.

미니시리즈, 단막극 등을 쓰는 드라마 작가와 달리, 프로그램의 구성을 담당하는 이들은 구성 작가라고 한다. 이들은 매번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짜고 대본을 구성한다. 토크쇼나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들 작가도 구성 작가에 속한다. 집에서 보기엔 별 거 아닌 간단한 프로그램이어도 실제 방송을 애드리브로 진행할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영역에 작가가 참여하게 된다.

작가를 경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책은 크게 작가를 메인 작가, 서브 작가, 막내 작가로 나눈다. 메인 작가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다루는 전문적인 작가다. 상황에 따라 대본의 방향을 틀기도 하고, 기획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머릿속에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메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브 작가나 막내 작가로 오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서브 작가들은 이런 메인 작가를 보좌한다. 보통 작은 프로그램이어도 한 명의 작가가 다 맡는 일은 드물고, 서브 작가를 두어서 메인 작가를 보조한다. 이들은 메인 작가를 돕는 일 이외에도 프로그램의 한 꼭지를 맡아서 작은 분량을 스스로 처리하기도 한다.

가장 힘든 일은 막내 작가에게 돌아간다. 막내 작가들은 자료 조사를 위해 뛰어다니고, 이름이 아닌 'OO아'라고 불리는 일도 많다. 이들은 작가로서 일을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에 직접 프로그램을 맡기 보다는 주변에서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를 보조한다.

작가의 일이 고되지만,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직업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자신의 방송이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자부심이다. 힘들게 촬영하고, 비가 오면 장비를 가릴까봐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고, 편집하느라 밤을 위한 준비를 돕느라 밤을 새워가면서 만든 방송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면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헬스장, 식당, 찜질방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 황홀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견 방송작가는 일반 회사원 이상의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한 편의 방송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쓰고 열정을 쏟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한 번의 방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은 저녁 시간에 방송된다. 다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우리 프로그램을 보는 날도 있다. 그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흘깃 흘깃 TV에 눈길을 주고 식당 아주머니들도 음식을 나르는 사이사이 가끔 화면을 보며 한마디씩 하실 때면 온 몸이 짜릿해진다.' -190P

자신만의 글을 쓰고, 그 글이 입체화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방송 작가만의 큰 메리트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작가의 일은 방송 작가의 글은 글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말이다.

라디오 작가든 예능 작가든 자신의 글이 그대로 송출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입에 의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작가들은 최대한 글을 간결하게 쓰고, 라디오 작가의 경우 자신이 아닌 BJ의 어조나 목소리를 감안하여 글을 작성한다고 한다.

방송작가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있다. 우선, 방송작가는 조용히 집중할 공간이 없다. 방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방송 내내 그들을 지켜봐야 하고, 심한 경우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글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조용히 자신의 장소에서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방송작가는 맞지 않다.

또한 방송에 대해 다루는 일인 만큼, 평소에 방송을 주로 살펴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면 좋다. 물론 연극이나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방송작가가 된 사람도 있지만 TV를 보지 않는데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라디오작가처럼 사람을 보지 않고 사연만 관리하든, 예능작가나 드라마작가처럼 섭외를 위해 뛰어다니고 연예인들과 자주 만나야하는 작가든 방송작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뚜렷한 주관과 창의력이 있어야 글을 쓰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겁다고 하니, 시끄러운 공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사교적인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다.

방송 작가가 일을 잘못하면 모든 프로그램이 어그러지게 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악역 캐릭터를 욕했고, 나중에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를 욕했다면, 이제는 방송 작가도 욕을 먹는 시대라고 한다. 시청률이 낮아서 외부의 간섭이 심해지고 배우들이 열의를 잃으면 모든 화살이 방송 작가에게 돌아가는 점도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이유다.

<나의 직업 방송작가>는 진로 탐색의 일환으로 기획된 책이다.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현실에서 구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학생, 내가 보는 방송의 진행 과정이 궁금한 사람들이 작가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방송 작가가 되기 위해서 본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 보기만 했던 사람들의 실생활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TV 프로그램의 뒷면에는,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쓴 방송 작가들의 노고가 있었다. 화면 속에 보이지 않는 야전 사령관, 작가들의 땀이 깃든 책이다.


나의 직업 방송 작가 - 글 대신 말을 쓴다

임선경 지음, 푸른들녘(2017)


태그:#방송작가, #작가, #방송, #시청,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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